#1.

유명 인강 강사가 ‘남들이 사는 평균적인 인생을 따라가지 마라, 5등급의 잣대로 세상을 바라보지 마라’ 라는 논조의 말을 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맞는 말이라 생각했고 내가 평소에 종종 하는 생각이기도 했다. 그 영상의 댓글에 누군가가 이 책도 비슷한 주장을 한다고 하여 읽어보게 되었다.

책 자체는 조금 지루한 감이 있었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는 알겠으나 같은 얘기를 계속 반복하는 느낌. 여러 심리 실험이나 사례 등을 계속 제시하면서 얘기를 풀어가는데 보다보면 그게 그거같고 영 집중이 되진 않는다.


#2.

그래도 몇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들은 있었다. 1920년대에 미국 공군이 전투기를 새로 제작하면서 전체 조종사 4천여  명의 여러 신체 치수를 잰 다음 그 치수들의 평균 사이즈에 맞춰 조종석을 제작했다고 한다. 그런데 만들어놓고 보니 그 조종석에 몸이 딱 맞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이다. 말랐는데 손이 큰 사람이 있는가 하면 키가 작은데 팔이 긴 사람도 있고 뭐 그런 식. 무조건 적어도 사람마다 한두 가지의 치수는 평균 범위에서 벗어났다는 말이다.

그리고 사람의 성격 또한 IQ나 MBTI 검사 등으로 측정할 수 있는 어떤 하나의 고정된 것이 아니고, 맥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한다. 누군가와 함께 있는가, 기분은 어떤가, 학교인가 회사인가 집인가, 그런 것들에 따라서 말이다. 외향적/내향적 따위의 비교적 큰 범주라고 생각되는 성격 요소조차 맥락에 의해 달라질 수 있다고 한다.

뭐 아무튼 끝까지 읽으며 든 생각은, 너무 좋고 옳은 얘기지만 아직 이 사회는 이런 개개인의 다양하고 심오한 특성들을 고려해 상호평가를 할 준비가 안 된 것 같다는 거였다.


#3.

시험 성적이나 학위 등의 지표가 사람의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잣대가 아니란 것도 맞고, 전체적으로 평균에 가까워보이는 사람일지라도 특출난 뭔가가 있는 사람일 수 있다는 것도 맞는 얘기다. 그래서 개개인의 능력과 적성을 잘 파악하고 적재적소에 사람을 뽑고 쓰는 문화가 생기면 세상은 달라질까? 전혀, 사실은 곳곳에서 이미 그러고 있다. ‘관심과 적성’에 따라 학생들을 뽑는 학교들도 있지 않은가? 그런 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돈을 몇백 몇천씩 써서 생기부 코디를 받는 사람들이 있어서 문제지.

결국 ‘평균’ 이라는 하나의 measure가 갖는 의미가 어떤 것이고 얼마나 유용하냐 그런걸 다 떠나서 한국 사회의 더 큰 문제는 ‘남 눈치를 너무 많이 본다는 것’ 이다.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잠재적인 능력을 더욱 잘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나 도구가 생긴다고 해도, 한국의 고유한 '눈치' 문화가 그것들을 무용지물로 만들 것이다. 사사건건 남이 하는대로 안 하면 불안함을 느끼는, 그리고 남보다 뭔가 하나라도 못 한 것 같으면 자존심이 상하고 눈치가 보이는 한국 사람들. 몇 살 때 평균 연봉은 얼마더라, 누구는 얼마짜리 예식장에서 결혼을 했다더라, 나도 저 정도 안하면 속으로 누군가 내 흉을 보지 않을까? 하는 아주 천박하고 상호 불신에 가득찬 모습들. 참 서로를 불행하게 하는 안타까운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다. 그리고 그런 모습들에 어떤 '객관성'을 부여하고 꼭 따르지 않으면 곧 이상한 사람이 될 것만 같은 기분을 들게 하는 것이 바로 '평균'이라는 지표다.

이 책의 뒷표지에 있는 추천사에 적힌 구절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91점이 붙고 100점이 떨어지는 것을 불공정으로만 보는 프레임에 반격을 가하는 매우 의미 있는 책". 우리나라는 '객관성' 이라는 것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과 강박이 매우 심한 사회이다. 나는 한국 사회를 굳이 분류하자면 상호간에 신뢰가 부족한 '저신뢰 사회' 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분위기 속에 서로를 평가하고 감시하기 위해 조금 더 '객관적으로 보이는' 여러 지표와 도구들을 고안하고, 우리 모두가 그 굴레 속에 얽혀있는 것이다. 실제로 그런 지표와 도구들이 개개인의 진짜 능력과는 (이 책에 따르면) 별 상관이 없는데도 말이다. 이건 사회 전체적으로도 크나큰 비용의 낭비가 아닐 수 없다.

어쨌든, 이런 '눈치' 사회에서 모두가 남들보다 잘나가고 싶어하고 그래야 마음이 놓이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잘나가는 사람들은 웬만하면 사회의 시스템 안에 들어가 그 시스템이 요구하는 자격들을 가지고 있다. 좋은 학교 좋은 직장 그런 것들 말이다. 이 책은 그런 잣대 따위는 개인의 본질적이고 잠재적인 능력과는 아무 상관 없다 라고 말하지만, 그렇다고 일개 한 사람이 사회가 만든 시스템을 마음껏 거스르고 살 수가 있을까? 아무리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 사람이라도 어느 정도는 시스템에 종속될 수 밖에 없다. 결국 산업화 시절에 공장에 투입할 부속 쯤으로 생각되던 인간이라는 존재의 의의가 시스템 차원에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4.

그러나 그런 날이 언제쯤 올까 싶다. 내가 아는 한 사회의 큰 시스템이나 패러다임의 변화는 점진적이지 않고 억압된 불만과 변화의 내재적 열망이 쌓인 끝에 폭발적이고 후행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아직 우리 사회는 서로를 너무 쉽고 단순하게 평가하고 그런 평가들에 너무 큰 관심을 쏟으며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일에 집중하기보다 각종 지표들에서 더 나은 평가를 받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다. 살기가 팍팍하고 미래가 어두워서 그럴까? 자기 자신을 돌보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남들을 어떻게 한명 한명 다른 잣대로 평가하고 숨은 장점들을 발견해줄 수 있을까. 아직은 그런 변화는 먼 미래의 일일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래도, 스스로 그런 사회적인 규칙이나 위치 등에 큰 의미부여를 하지 않고 자기만의 무언가를 찾아나가며 사회적인 잣대로 상대방을 평가하지 않고 다각도로 사람을 관찰하고 대하고 이해하려 하는 노력들을 할 수는 있다. 그러면 시스템이 ‘평균에서 떨어지는 사람’ 들에게 주는 스트레스와 무력감은 쓰잘데기 없는 구시대의 산물이기 때문에 애초에 그런걸 느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다. 나도 그런 단계를 거치며 조금씩 사회가 주는 스트레스로부터 해방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 적도 있고 자존감도 오르는 것 같은 경험을 했다.

하지만 언젠가는 개개인이 구시대적 시스템 속에서 발버둥치며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러한 노력을 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개개인의 개성과 서로 다름을 너무 당연한 듯이 포용해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싶은 소망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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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학기에는 4과목을 들었는데 한 과목만 빼고 성적이 전부 나왔다. 이제 대학원에서의 첫 학기가 마무리 된 셈이다.

나의 부족함을 뼈저리게 절감한 시간이었다. 내 마음 속에 아직도 자그맣게 남아있는 알량한 자만심의 존재를 바로 마주했다. 더 좋은 학교의 대학원에 가겠다고 설쳤던 지난 시간들에 대한 부끄러움도 들었다. 솔직하 말하면 나는 아직도 내가 머리가 나쁜 축에 속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정도의 공부는 좋은 머리가 아닌 무거운 엉덩이로 하는 것이라는 사실도 다시 한 번 깨우쳤다. 내 엉덩이는 그렇게 무겁진 않은 것 같다.

나는 참 욕심도 딱히 없고 적당히 게으른 사람이다 (적어도 학문에 있어서는 말이다). 그런가 하면, 내 스스로에게 떳떳하고 싶은 마음, 남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 그리고 열심히 공부를 하지 않으면 나중에 현실적으로 힘들어 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도 있다. 게으른 나의 본성과 이러한 마음들이 지금은 적당히 힘을 겨루며 적어도 개판을 치지는 않을 정도로 학기를 보낸 것 같다.

참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기도 했다. 회사에서 인턴을 했을 때 느낀 것이지만 어느 조직에 가든 상사나 사수를 잘 만나야 한다. 이건 정말 큰 행운이다. 회사에 있을 때도 정말 좋은 분들을 만나 많은 도움을 얻었는데, 대학원에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학문을 하는 사람'으로서의 마음가짐이 잘 잡히지 않은 이 때에 교수님과 선배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어떻게 잘 헤쳐나올 수 있었을 지 생각만 해도 막막하다.

학기 초반에는 지금 수행하고 있는 연구과제에서, 연구와는 조금 거리가 먼 일을 맡았다. 한 한 달 조금 넘는 시간동안은 웹 개발만 했던 것 같다. 스스로 주체적으로 연구 주제를 정할 수 있는 지식도 없고, 그렇다고 이렇게 연구와 거리가 먼 것 같은 누가 시킨 일만 하고 있자니 허송세월을 보내는 건 아닌가 생각도 들었다. 되돌아보면 그러면서도 시간을 짬짬히 내서 논문을 읽는다던지 스스로 공부를 더 한다던지 그럴 수 있었는데, 결국 내 게으름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쓸 데 없어 보이는 일일지라도 언젠가는 그런 경험이 도움이 될 때가 온다. 어차피 하기 싫다고 안 하게 될 수도 없는 일이면 이렇게 생각하는 게 편하다. 실제로 그렇기도 하고.

아무튼 다음 학기는 조금 더 열심히 해 보고 싶다. 아쉬운 점이 많이 남는 2018년 후반기였지만 나머지 학기를 제대로 보낼 수 있도록 준비운동을 했다고 생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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