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어렸을 때 부터 죽음을 많이 보았다. 두 살배기 친척동생,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친할머니의 죽음부터 친구의 부모님들 (기억나는 것만 세어도 한 손으로 못 센다), 심지어 친구, 선배의 동생, 고등학교 동기 등등.

작년에 고등학교 동기가 세상을 떠났고, 올해 초에는 이름과 얼굴만 알던 고등학교 한 기수 아래 후배가, 며칠 전에는 고등학교 세 기수 아래 후배가 세상을 떠났다.

오늘 꿈엔 중학교 은사님이 나왔다. 선생님이 나에게 전화를 걸어 두 후배가 정말로 세상을 떠난 것이 맞냐고 물었다. 그래서 맞다고, 나도 왜 이런 일이 자꾸 일어나는지 모르겠다고 하며 둘이서 수화기 너머로 엉엉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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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9  (0) 2017.04.19

관심있는 분야(딥러닝)를 좀 공부할까 싶어 관련된 그룹 2개에 가입하고 페이지 몇 개도 팔로우를 눌러놓았다. 그랬더니 내 피드는 온통 딥러닝 얘기로 가득 차 버렸다. 심도 있게 공부를 한 것은 아니라 내가 이해를 못하는 글이 올라오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그래서 결국엔 딥러닝 공부를 한다기보다 그냥 '세상엔 정말 똑똑하고 딥러닝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구나' 라는 것을 느끼고 자괴감에 빠질 때가 많아지게 되었다. 자주 그 그룹들에 글을 올리고 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저 사람들 머리는 자나깨나 딥러닝으로 꽉 차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나도 딥러닝 공부를 하면 다행이지만 그 사람들과는 달리 요즘 내 머리를 지배하는 것은 '언제 블로그에 여행 글을 다 쓰고 책 출간을 시도라도 해 볼까' 인데 그것마저 거의 하지 않고 있다 (전자는 그냥 쓰기만 하면 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내가 글 쓰는 일을 꽤 좋아한다고 생각했지만 그것도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딥러닝 공부는 글 쓸 생각에 빠져서 안 하고 글 쓰는 것은 귀찮아서 안 한다. 난 뭘 해야 할까? 뭘 해야 귀찮음과 권태를 느끼지 않고 재미있게 할 수 있을까?

라는 글을 얼마 전에 페이스북에 쓴 적이 있다. 요즘 잠시 자괴감과 권태감을 느끼고 공부를 소홀히 하던 차였는데, "미치지 못해 죄송합니다" 라는 한 에세이 (https://univ20.com/63889) 를 읽고서 조금의 위안과 힌트를 얻었다.

그리고 다음 날 역시나 딥러닝 이야기로 가득한 피드를 둘러보고 있었다. 저 그룹들에서 정말 활발하게 활동하는 분이 한 분 있다 (이하 T씨). T씨는 요즘 한국에서 딥러닝을 하는 사람이라면 아마 누구나 한 번 쯤은 들어봤을 만큼 유명한 분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T씨는 딥러닝 그룹에 글을 쓰셨다. 매번 그냥 읽고 지나가다 오늘은 괜한 호기심에 처음으로 T씨의 타임라인에 들어가 보았다.

그런데 T씨의 피드 중 가장 최근에 올라온 글을 보고 잠시 충격을 받았다. 타인의 글이기에 복사해 올 수는 없지만, 요지는 대충 다음과 같았다.

매일 딥러닝 분야에서 셀 수도 없이 많은 훌륭한 논문들이 나오는데, 나의 연구는 잘 되지 않는다. 데이터는 형편없고 삽질은 거듭되어 슬럼프에 빠진다. 충분한 시간이 있었음에도 괄목할 만한 성과는 없었고, 학계의 발전을 따라잡기엔 정신적으로 지쳐간다. 오히려 학계에 좋은 논문이 얼마 나오지 않던 때가 삶의 질이 더 좋았던 것 같다.

나는 T씨가 연구자로서 얼마나 많은 업적을 이루었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T씨는 유튜브나 페이스북 등 많은 채널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딥러닝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돕고 있고, 꽤 커진 그룹의 운영진까지 맡으시며 활발히 활동하고 계신다. 자연스레 나는 무의식적으로 T씨를 '이 쪽 필드에서 그래도 성공하신 분, 적어도 한국에선 많이 유명하신 분, 정말 열정이 있으신 분, 닮고 싶은 분' 정도로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런 분도 나름의 고충이 있었다. 작은 고민도 아니고, 자신의 본업인 연구자로서의 일이 오랜 시간 잘 풀리지 않아 고민하고 계셨다. 그 분의 글에는 어떠한 기만도 없이, 거대하고 높은 학계의 파도 앞에서 순수하게 무력한 기운을 느끼는 한 연구자의 마음이 절실히 드러나 있었다. 그것은 내가 처음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쓰며 생각한 마음과 거의 비슷했다. 한국 딥러닝 계의 선봉장 격이 아닐까 생각했던 분도 나와 비슷한 무력감을 느낀다는 말이었다. 

T씨가 딥러닝 강의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딥러닝 그룹에서 활발히 활동한다고 해서, 그가 또한 훌륭한 논문을 슥슥 써 내는 연구자일 것이라고 시나브로 단정지은 나의 생각 자체가 틀렸을 수 있다. 하지만 초보자의 입장에서 T씨가 매우 고수처럼 보였던 것은 사실이고, 그 고수가 나같은 초보자와 같은 고민을 하고 같은 기분을 느낀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위안을 느꼈다. 학문이란 오르고 올라도 끝이 보이지 않는 산과 같다고. 문득 올려다 보았을 때 저만치 앞서가는 사람도 나와 같이 끝이 보이지 않아 헤매고 있다고. 그래서 이 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정상까지 등반하는 것' 대신에 '항상 어제의 나보다 한 발짝 더 가야 한다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미치지 못해 죄송하지" 않아도 된다고.

누구나 막막한 것이 있다. 그러기에 막막해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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