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18년 법정최저임금이 올해보다 16.4% 오른 7530원으로 결정되었다. 대한민국이 한 동안 시끌시끌했다. 최근 5년간 최저임금의 인상률 평균이 7.4%였는데, 그의 두 배를 넘는 폭으로 급작스럽게 인상되었으니 말이다.

최저임금을 주는 입장인 자영업자들과 받는 사람들인 알바생들을 주축으로 두 의견이 충돌했다. 내 주변 사람들도 의견이 나뉘어 이곳저곳에서 논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런 임금 가지고는 최소한의 생활도 보장이 안 된다고 하는 의견부터, 더 많이 받게 되는 만큼 일자리 감소와 물가 인상으로 인한 손해도 불가피할거다 라는 의견까지. TV고 SNS고 최저임금에 관한 토론을 안 하는 곳이 없었다.

나는 최저임금을 받고 일하는 아르바이트를 꽤 많이 해 보았다. 곱창가게에서 서빙도 해 봤고, 편의점 일은 다 합치면 1년 가까이 해 봤으며, 땡볕 아래에서 탑차에 실을 음료수 박스포장도 해 보고, 축구 경기장에서 안내원도 해 봤다. 내 주변의 친구들은 보통 과외나 학원 알바를 많이 하는데, 그에 비하면 나는 임금이 저렴하고 몸을 많이 쓰는 일을 자주 한 편에 속했다.

그랬던 경험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급작스러운 최저임금 인상이 과연 근로자들에게 좋은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선 쉽게 답을 내릴 수가 없었다. 편의점 알바를 할 때에 인건비 명세서에 한숨쉬는 사장님의 얼굴을 꽤 많이 봤기 때문이었다. '이러다간 알바도 못 쓰고 내가 매일 나와서 일해야겠어' 라는 말이 정말로 현실이 될 것 같아서.


#2.

지금은 내가 다니는 과의 행정실에서 알바를 하고 있다. 시급도 꽤 많이 쳐주고 일도 어렵지 않아서 기쁜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 온갖 취객을 상대하고, 바깥의 테이블에 흩뿌려진 막걸리와 만두 국물을 닦아가면서도 한 시간에 5천원 남짓밖에 벌지 못했던 시절을 생각하면 이렇게 좋은 알바 자리가 또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어느 날 여기서 새로 일 할 직원을 뽑으려고 구인 사이트에 공고를 냈다. 공고를 올린 지 며칠 되지 않아 지원자가 백 명을 넘었다. 옆의 선생님이 지원서를 검토하시길래 같이 봐도 되냐고 물었다. 그리고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제출한 이력서를 봤다.

지원자들의 나이도, 경력도, 학력도 나의 눈길을 끌진 못했다. 내가 충격을 받은 지점은 지원자들의 '직전연봉' 이었다. 이전 직장에서 연봉을 얼마나 받았는지를 기재하는 칸이었다. 대부분 지원자들의 직전연봉이 2천만원 대 초중반을 넘지 않았다. 20대 후반 사회 초년생만의 얘기가 아니었다. 결혼을 해서 아이까지 있는 30대 후반 남성부터, 꽤 많은 경력을 가진 50대 후반 남성, 미국의 유명한 대학을 졸업한 30대 중반 여성, 남녀노소 할 것 없이 3천만원을 넘는 연봉을 받고 일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심지어는 천만원 초중반 대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이것저것 계산 없이 나누기 12만 해도 한 달에 100만원을 조금 넘는 수준. 대체 이 돈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는 있을까 싶었다. 물론 각자의 사정은 나름 다들 있을 수 있겠지만, 하루 최소 8시간씩 5일 일하고도 이 정도의 돈을 받는데 정말 괜찮은건가. 특별한 기술이나 지식이 필요하지 않은 단순 사무직이라 해도 이건 좀 너무하다 싶었다.


#3.

나는 우리나라에서 그나마 평가가 좋은 대학교에 다니고 있으며, 전공도 컴퓨터공학이다. 4차산업혁명 소리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고 있는 요즘 시대에 취직을 못해 백수가 될 일은 없다고 봐도 될 듯 싶다. 취업을 한 선배들 대부분은 대졸 초임 기준 최소 3천만원 중후반 이상 받으며 일하고 있다.

그게 내가 보는 세상의 전부였다. 당연히 대학을 졸업하면 못 해도 한 두학기 준비를 거쳐 취업은 할 수 있겠다 싶었고, 그러면 입사하자마자 한 달에 2~300만원 씩은 통장에 꼬박꼬박 꽂힐 줄 알았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대부분의 대학 졸업자들도 비슷하겠다 싶었고, 최저임금은 알바생들과 자영업자들만의 문제인 줄 알았다. 

그런 내 생각은 완전히 틀렸었다. 한국의 인건비는 형편없이 낮고, 최저임금 인상이 됐건 뭐가 됐건 이 상황은 뭔가 조치가 필요하다. 무슨 일을 하건간에 말이다. 세상에 대한 오만함과 무지가 내 눈을 가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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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은 해안가라서 그런지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해산물이 맛있고 또 많이 먹는 편이다. 나는 비록 스시뷔페만 줄창 가긴 했지만, 스시 말고도 맛있는 음식들이 많다. 하지만 나는 거지라서 고급진 음식들을 먹을 수 없었다. 대신 내가 좋아하는 에그타르트는 정말 다양한 곳에서 많이 먹었다. 특히나 리스본 구시가 중심에 있던 이 곳은 에그타르트를 굽는 과정을 직접 지켜볼 수 있었다. 당장 에그타르트 3개와 에스프레소를 시켜서 먹었다. 역시나 리스본에서는 어디서 에그타르트를 먹든 결코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그렇게 에그타르트 맛집을 몇 군데 돌아보고서, 해가 채 지기도 전에 숙소로 돌아왔다. 내일이면 드디어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탄다. 숙소 리셉션에서 계산기를 빌려 그동안의 기록을 정리하고 쓴 돈을 정산했다. 교통, 숙박, 식비 등 모든 비용을 합쳐 총 550만원이 들었다. 3달 배낭여행에 550만원이라니, 나도 정말 미친놈이구나. 통장에는 딱 11000원의 돈이 남아있었다.

다음 날 공항으로 가는 지하철을 타야 했는데, 지하철 표를 살 동전이 하나도 없었다. 체크아웃을 하면서 숙소 주인 아저씨에게 지하철을 타야 하는데 1유로만 어떻게 줄 수 없겠냐고 최대한 불쌍한 척을 하며 부탁을 해 보았다. 너무나도 흔쾌히 1유로와 더불어 사용하지 않은 1회용 교통카드까지 주었다. 내가 답례로 지갑속에 있던 천 원짜리 지폐를 건네주니, 그 지폐를 이마에 붙였다가 두 손을 모으고 기도의 손짓을 하면서 너무나도 좋아했다. 정말 친절한 사람이었다. 마지막으로 받은 그 호의에 기쁜 마음으로 공항으로 가는 발걸음을 옮겼다.


비행기가 서서히 지면을 박차고 떠오르자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그런데 흐르지는 않았다. 내 마음을 울렸던 이 여행 중의 행복과 지치는 일들과 괴로움, 그리고 즐거움들. 여행을 마치고 돌아갈 때가 되면, 이런 감정들에 북받혀 울게 되지 않을까 했다. 그렇지만 그런 것들은 이 비행기가 뜨자마자 모두 아득한 과거의 일이 되었다. 마치 길고 긴 꿈에서 깬 듯이 말이다. 그리고 이제 내 인생에 다시 새로운 시작이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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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80.7€ (방값 62€)
8/5 17.46

8/6 40.46

8/7 14.41

8/8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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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ainy 2017.08.07 23:43 신고

    오...유라시아 일주였군요..멋집니다

    • jitwo 2017.08.07 23:46 신고

      넵, 한국에서 포르투갈까지 비행기 없이 횡단하는 일주였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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