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재작년에 갔던 여행을 다른 사람들에게 한 문장으로 소개해야 할 때면 "한국에서 포르투갈까지 비행기 안 타고 갔어요" 라고 말을 한다. 못 먹고 못 자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유별난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이 흔히 하는 여행은 아니니만큼 난 내가 갔던 여행의 컨셉이 꽤 독특하다는 점에선 나름의 자부심 비슷한 것을 가지고 있다.

이런 사실의 연장선상에서 만약에 내가 그 여행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엮어 책을 낸다고 하면, 이 독특한 컨셉을 잘 살려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했다. 평범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쓰는 능력까지는 없는 것 같으니, 애초에 독창적인 소재를 평범하게 쓴다면 그래도 나름 눈에 띄고 봐줄 만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랄까.

그래서 항상 나랑 비슷한 여행을 다녀온 사람은 없는지, 비슷한 컨셉의 여행에세이는 없는지 검색도 하고 서점에서 책을 찾아보기도 했다. 유라시아 대륙을 오토바이로 횡단한 사람의 이야기는 있었지만, 그건 나와는 너무 다른 차원의 이야기니 제외하고.. 그렇게 몇 달을 찾아도 나와 비슷한 여행을 다녀온 사람의 얘기는 없는 것 같아 왠지 안심이 되었다. 여행 컨셉이 새롭다고 여행기가 잘 팔린다는 게 보장되는 것도 아닌데도 블루오션을 찾은 사업가의 마음이 이럴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나름의 시장조사를 짬짬이 몇 달 째 하다 들른 반디앤루니스의 서가에서 찾은 책이 바로 이 책이었다. 아 세상에, 유라시아 횡단을 자전거로 한 사람들이 있단 말이야? 책을 펴서 몇 페이지 들춰보니 중간에 힘들어서 비행기를 탔다는 내용이 있었다. 다행이다.. 이 분들은 비행기를 탔다! 하며 별 것 아닌데도 초딩같이 괜시리 내가 이긴 것 같고 안도감이 들었더랬다. 그리고 나랑 비슷한 평범한 대학생들이구나 하는 친근함이 들어서 한 권 남은 책을 바로 사서 들고 왔다.

일단은 제목과 표지가 마음에 들었다. 제목을 왜 이렇게 지었는지 그 이유를 알았을 때에는 저절로 머리를 끄덕이게 되었다. 이야기도 잘 풀어갔다는 느낌이 들었다. 적당한 유머와 함께 진지할 땐 진지했고, 책의 어디서든 뭔가 과하거나 저자의 감성을 강요하는 지점도 없어서 편히 읽을 수 있었다. 여행을 다 마치고 호카곶에 다다랐을 때 저자가 느꼈던 기분은 내가 느낀 것과 비슷했다. 여행 중에 들르는 다양한 이름난 여행지 중 하나가 아닌, 그 길다란 여정의 종착점으로서 그 곳에 다다른 느낌 말이다. 동지를 만난 것 같이 반가웠다.

다만 책이 교정교열을 제대로 안 거친 건지 오탈자가 정말 많이 보였던 건 흠이었다. 출판사를 찾아보니 자비출판을 전문으로 하는 곳 같았다. 좋은 여행기임에도 그 뒤를 받혀주는 기본을 잘 챙기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까웠다.


실패한 여행기
국내도서
저자 : 최윤석
출판 : 휴앤스토리 2016.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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