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학기에는 4과목을 들었는데 한 과목만 빼고 성적이 전부 나왔다. 이제 대학원에서의 첫 학기가 마무리 된 셈이다.

나의 부족함을 뼈저리게 절감한 시간이었다. 내 마음 속에 아직도 자그맣게 남아있는 알량한 자만심의 존재를 바로 마주했다. 더 좋은 학교의 대학원에 가겠다고 설쳤던 지난 시간들에 대한 부끄러움도 들었다. 솔직하 말하면 나는 아직도 내가 머리가 나쁜 축에 속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정도의 공부는 좋은 머리가 아닌 무거운 엉덩이로 하는 것이라는 사실도 다시 한 번 깨우쳤다. 내 엉덩이는 그렇게 무겁진 않은 것 같다.

나는 참 욕심도 딱히 없고 적당히 게으른 사람이다 (적어도 학문에 있어서는 말이다). 그런가 하면, 내 스스로에게 떳떳하고 싶은 마음, 남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 그리고 열심히 공부를 하지 않으면 나중에 현실적으로 힘들어 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도 있다. 게으른 나의 본성과 이러한 마음들이 지금은 적당히 힘을 겨루며 적어도 개판을 치지는 않을 정도로 학기를 보낸 것 같다.

참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기도 했다. 회사에서 인턴을 했을 때 느낀 것이지만 어느 조직에 가든 상사나 사수를 잘 만나야 한다. 이건 정말 큰 행운이다. 회사에 있을 때도 정말 좋은 분들을 만나 많은 도움을 얻었는데, 대학원에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학문을 하는 사람'으로서의 마음가짐이 잘 잡히지 않은 이 때에 교수님과 선배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어떻게 잘 헤쳐나올 수 있었을 지 생각만 해도 막막하다.

학기 초반에는 지금 수행하고 있는 연구과제에서, 연구와는 조금 거리가 먼 일을 맡았다. 한 한 달 조금 넘는 시간동안은 웹 개발만 했던 것 같다. 스스로 주체적으로 연구 주제를 정할 수 있는 지식도 없고, 그렇다고 이렇게 연구와 거리가 먼 것 같은 누가 시킨 일만 하고 있자니 허송세월을 보내는 건 아닌가 생각도 들었다. 되돌아보면 그러면서도 시간을 짬짬히 내서 논문을 읽는다던지 스스로 공부를 더 한다던지 그럴 수 있었는데, 결국 내 게으름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쓸 데 없어 보이는 일일지라도 언젠가는 그런 경험이 도움이 될 때가 온다. 어차피 하기 싫다고 안 하게 될 수도 없는 일이면 이렇게 생각하는 게 편하다. 실제로 그렇기도 하고.

아무튼 다음 학기는 조금 더 열심히 해 보고 싶다. 아쉬운 점이 많이 남는 2018년 후반기였지만 나머지 학기를 제대로 보낼 수 있도록 준비운동을 했다고 생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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