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공연을 보고 나서 숙소에서 캔맥주 한 잔까지 하고 2시가 넘어서야 잠에 들었었다. 다음 날은 서울로 돌아가는 날... 하네다 공항에 시간 맞춰 가려면 시내에서 1시 정도에는 출발해야 했었다. 그래서 그냥 체크아웃 시간까지 퍼질러 자다가 느즈막히 일어나서 점심 한 끼 먹고 편하게 공항으로 갈지,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미술관 한 곳을 더 들렀다 갈지 한참을 고민했다.

결국 나답지 않게 10시에 오픈하는 '모리 미술관' 이라는 곳에 가 보기로 결정했다. 너무 피곤했지만 악착같이 일어나서 준비하고 나가서 역 코인락커에 캐리어를 맡기고 10시가 되기 전 줄을 섰다가 시간 맞춰 입장하기로 했다.

일본을 돌아다니다 보면 꼭 한 번은 볼 수 있는 저 택배 회사의 고양이 마크가 난 너무 좋다. 넘 귀여운 나머지 폰케이스도 저 마크가 들어간 걸로 맞췄다..

롯폰기 역에서 모리 미술관 가는 길에 있었던 작품? 벽화? 뭐라고 해야 할까. 쨍한 색감이 장난 아니다.

모리 미술관은 저 높은 건물 '모리 타워'의 52층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미술관'이라는 별명이 있기도...

아니 그리고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진짜 도착한 다음날부터 비가 계에에에속 내리고 흐린 날 뿐이더니 가는 날 되니까 해가 쨍쨍 비치는 것 좀 보세요 진짜...

엘리베이터를 타고 52층으로 직행한다.

어제 체득한 '아이폰 카메라 번역'을 이용해서 놓치는 내용 없이 둘러보았다. 좋은 세상이야 진짜루

작품을 잘 구경하다가 놀라운 광경을 마주했다

모리 미술관에 유일하게 통창이 있는 방이 하나 있는데, 날씨가 좋은 날에 그 방에서 보는 경관이 장난 아니라서 멍하니 보고 있다가 저 높이 멀리 희끗하게 솟은 산이 보였다. 후지산?!?!?!

여기서 후지산을 보게 될 줄 생각도 못 했다. 후지산을 이렇게 멀리에서나마 실제로 보는 것이 처음이라서 정말 너무나 신기했다. 옆에 어떤 노부부가 이거에 대해서 얘기를 하시는 것 같길래 말을 걸어서 "저거 후지산 맞죠?" 라고 여쭤봤더니 맞다고 하신다. 이렇게까지 잘 보이는 날이 일년에 며칠 없는데, 운이 참 좋다고. 그 동안 날씨가 구렸던 설움을 여기에서 다 푸나 싶었다.

모리 미술관을 소개하는 어느 유튜브 영상에선가 본 것 같은 기시감이 드는 파란 공간 속 하얀 공

어떤 공장에 있던 그을린 부품을 미술관 벽에다가 문대는 것도 작품이 된다

어느 죽은 사람이 죽기 전까지 세웠던 자잘한 인생 기록과 그 사람의 유골

아침잠 줄여가며 온 보람이 있었다. 역시 부지런히 살아야 한다...

나가려다가 같은 층에 어떤 카페가 있어서 봤는데 한 쪽 벽이 통창으로 되어서 뷰가 멋있을 것 같아 들어가보았다. 마침 남은 자리가 있어서 창 앞의 자리로 안내받았는데,,, 진짜 이런 말도 안 되게 멋있는 도쿄타워 뷰도 보고.. 날씨 때문에 억울했던 마음이 다 풀리면서 왜 갈 때가 다 되어서야 이렇게 되는지 새로운 억울함이 들기도 하고.

돌아가자, 우중충한 날씨 속 그래도 많은 것을 즐긴 보람찬 여행이었다

활주로 뷰 라운지에서 비행기들을 실컷 구경하며 배를 채우다가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역시나 도쿄는 도쿄에서 즐기고자 하는 어떤 특정한 콘텐츠 등 목적성이 없으면 참 애매한 여행지인 것 같다. 너무 서울같은 대도시 느낌이 낭낭하다. 반대로 말하면 '어느 미술관에 가고 싶다' 라든가 '어느 공연을 보고 싶다' 라는 목적이 있다면 참 즐겁게 여행할 수 있는 곳이다. 서울보다 인구도 많고 예술의 다양성도 존중되는 느낌이 있어서 마음 먹고 찾아보면 도쿄에서 내 취향에 잘 맞는 즐길만한 거리가 꼭 하나는 있을 것이다. 그런 걸 잘 찾아서 앞으로도 다양한 도쿄를 느껴보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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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도쿄에 가면 미술관에 꼭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미술에 크게 관심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가끔 국현미 같은 곳에서 재미있는 전시를 하면 가 보기도 하고, 인상파 그림도 좋아하는 편이라 내 취향에 맞을 만한 곳을 좀 찾아보았다. 일본 특히 도쿄에 있는 미술관의 컬렉션이나 공간 자체가 되게 좋은 곳이 많다길래... 그래서 국립서양미술관이란 곳을 가 보기로 했다.

진짜 속상해 죽겠다. 어떻게 도착한 다음날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서울로 돌아가는 전날까지도 계속 비가 온다. 심지어 이 날은 추적추적 수준이 아니라 말도 안 되게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산도 없어서 호텔에서 빌려갈까 했는데 이미 대여용 우산은 다 나가버리고... 호텔에서 나올 때만 해도 이 정도로 많이 오지는 않아서 우산을 안 샀었는데 지하철 타고 미술관 앞에 내리니 눈 앞이 캄캄해질 정도로 비가 왔다.

미술관 안에는 카메라를 안 들고 갔다. 이미 비 때문에 지칠대로 지쳐서 짐 하나도 없이 편한 마음으로 둘러보고 싶었다. 

상설전은 15~16세기 고전 작품들부터 인상파 작품까지 주욱 있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인상파 그림을 위주로 슥 둘러보고 나왔다. 사실 특별전이 진짜 기대가 됐었다.

이 특별전... 너무나도 기억에 남고 인상적인 전시였다. 기억을 위해 이 특별전에 관련된 정보를 이 곳에 좀 남겨보자면 -

Does the Future Sleep Here?
——Revisiting the museum’s response to contemporary art after 65 years
국립서양미술관(NMWA)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현대미술의 주요 전시인 이번 전시에서는 오늘날 일본에서 실험적인 예술 활동을 펼치고 있는 다양한 연령대의 작가 20여 명의 작품을 소개합니다.

국립서양미술관은 주로 20세기 중반까지의 서양 미술을 수집, 보존, 전시해 왔기 때문에 현대 미술은 소장하고 있지 않습니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먼 옛날 먼 나라에 살았던 죽은 사람들의 작품만을 모아놓은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1959년 개관 당시 NMWA의 핵심 컬렉션으로 자리 잡기까지 마쓰카타 컬렉션의 전반적인 역사를 돌아보면, 사실 이 미술관은 미래 미술의 창작을 자극하는 장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건립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지금까지 NMWA는 미래의 예술을 일으키고 육성하는 장소가 되지 못했습니다.

실제 '미술관' 시스템은 18세기 후반 서유럽에서 생겨났습니다. 당시 독일 작가 노발리스는 이렇게 썼습니다,
"갤러리는 미래 세계의 잠자는 방이다. 미래 세계의 역사가, 철학자, 예술가는 이곳에서 자신을 발전시키고 이 세계를 위해 살아간다"라고 말했습니다.

NMWA는 '미래 세계가 잠든 방'이 되었을까요? 우리는 이 다양한 예술가들에게 이 질문을 던졌고, 이번 전시에 전시된 그들의 작품이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할 것입니다.

이 특별전의 이름과 개요를 번역기 돌려 붙여보았다. 이 특별전이 기획된 계기 자체가, 이 미술관이 그저 '그 동안 모인 컬렉션을 전시' 하는 기능을 넘어 미래의 미술을 위한 요람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지 반추하고 반성하는 의미에서 출발했다는 사실 자체가 정말 좋았다. 이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던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이 지진으로 인하여 망가진 장면 그대로를 연출해 놓은 작품이나, 미술관 주변 공원의 노숙자들의 삶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라든가, 하나하나 눈여겨보며 너무 즐거운 경험을 했다.

여담으로 요즘에는 따로 한국어 해설이나 오디오 가이드가 없어도 작품들을 감상하는 데 별로 지장이 없다. 아이폰에 기본 내장된 번역 기능만 사용해도 이렇게나 퀄리티 나쁘지 않게 번역 결과를 확인할 수가 있다. 코로나 이후로 외국의 미술관에 가 보는 것이 처음인데 카메라로 찍기만 해도 바로바로 이렇게 결과가 나오니 참 좋은 세상이다,,

우산을 안 사고 버티고 버티다가 결국에는 편의점에서 우산을 사고 나서,, 배가 고파서 스시로에 가서 회전초밥 좀 위에 넣어주고.

내가 예전에 잠깐 듣던 밴드가 시부야에서 공연을 한다는 소식을 알게 되어서 이 날 저녁에는 시부야의 한 라이브하우스에 가서 공연을 봤다. 콘서트도 페스티벌도 좋지만 역시 라이브하우스에서 꽉 찬 사운드와 현장감을 느끼는 게 너무너무 좋다. 첫 타임으로 나온 밴드는 원래 몰랐던 밴드였는데 공연도 너무 재밌게 잘 하고.. 끝나고 티도 한 장 샀다. 자기네들 티가 한국에 처음으로 수출된다고 자기들끼리 신나서 얘기하는 데 어찌나 귀엽고 나까지 행복해지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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