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일정의 여행을 한번 갔다오고 나니까 유랑이나 스투비플래너 등 여행정보 사이트에 가서 오지랖질을 가끔 한다.

초보 여행자들이 하는 고민들에 대한 답은 이제 나도 얼추 꽤 괜찮게 적을 줄 안다.

하지만 몇몇 질문을 보다 보면 참 답이 안 나오는 상황이 많은데, 몇 가지를 뽑아보면


1. 유럽 xx일 가려는데, 어디어디 가 봐야 하나요?

2. 항공권이 런던 IN 파리 OUT인데, 동선을 어떻게 짜야 하죠?

3. 이 도시에 가려는데, 뭐 하면 좋을지 좀 알려주세요!


아... 여행(준비)덕후인 나로서는 답답하여 참을 수가 없지만 모든 것이 처음인 초보자 입장에서 하나도 감이 안 잡히는 막막한 상황도 이해가 간다.

그래서 내가 여행 계획을 짤 때는 어떤 순서로 하는지 대충 적어보고자 한다.


1. 가이드북을 읽자


이것만 잘 해도 반절은 끝난다. 위의 3가지 질문은 모두 해결할 수 있다!

국가별로 나온 가이드북 말고 유럽 전체를 다루는 가이드북이 있다.


< 프렌즈 유럽 - Best City 42. 내가 아주 유용하게 썼던 책이다. 유럽의 대표 도시 42개를 모아놓음! >


이런 책들은 각 나라의 대표 도시들 한 두개만을 소개하고 있으니 여행을 처음 가 보는 사람들에게 제격이다.

각 나라마다, 도시마다 특색이 있다. 야경이 멋있는 도시, 자연경관이 웅장한 나라, 건축으로 유명한 도시.. 하여튼 많다.

모든 나라를 대충 주욱 훑어보면 자신의 취향에 맞는 곳이 어디인지 대충 알 수 있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든, 사서 읽든 가이드북 한권은 꼭 읽어보도록 하자.

(TIP. 여행을 이미 갔다 와서 가이드북이 필요 없어진 사람들이 중고로 가이드북을 많이 판다. 알라딘 중고서점에 가면 싸면서 볼만한 가이드북이 꽤 많다.)


2. 공부하자


놀자고 가는 여행인데 웬 공부? 하겠지만 정말 알찬 여행이 되기 위해서는 공부해야한다. 무조건!

1단계에서 골라낸 후보 나라, 도시들에 대해서, 할 것 볼 것 먹을 것 등은 뭐가 있는지 찾아보자.

그리고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해 본다. 아침에 이런걸 하고 이거 먹고 오후에 어디 가고.. 이런 식으로.

그러면 내가 한 도시에서 얼마만큼의 날짜가 필요한 지 대충 감이 온다.


가장 유명한 파리로 예를 들어보자!

" 음.. 파리 시내에는 루브르 박물관, 샹젤리제 거리, 에펠탑, 몽마르뜨, ... 이런 것들이 있네? 이 중 내가 가고 싶은 곳은 루브르 박물관과 어디어디...

루브르 박물관에선 보고싶은 게 많으니까 거의 하루를 다 쓴다고 하면... 다 보고 나머지 저녁시간에 잠깐 에펠탑 다녀오고..

또 하루는 시내 다른 곳 구경하고.. 하루는 쉬면서 쇼핑하고.. 오 찾아보니 근교에 몽생미셸이라는 곳이 있네! 다녀오려면 하루를 꼬박 써야한다고??

그래도... 예쁘니깐 가자. 그러면 다른 도시 이동하는 시간 고려하면 파리는 4~5일 정도로 잡으면 되겠다! "


이렇게 되면 이 단계에선 대성공이다. 어려울지 모르겠지만 막상 여행지에 있는 자신을 상상하면 또 그렇게 재미있을 수 없다.


3. 동선을 정하자


이 단계에서는 얼만큼의 기간동안 여행을 할 수 있는지, 쓸 수 있는 예산은 얼마인지 확정을 지어야 한다.

사실 이 단계에서 제일 중요한 게 있는데, 바로

'욕심을 부리면 안 된다'는 것이다.


자, 총 20일 동안 여행을 할 수 있고, 예산은 조금 부족해서 헝그리한 여행을 해야 한다고 치자.

그런데 내가 가고 싶은 도시는 총 10개이다. 게다가 그 중 하나가 스웨덴의 스톡홀름이라면?

스웨덴은 북유럽 국가로, 유럽 본토의 북쪽에서 페리를 타고 가는 것이 아니라면 항공밖에 답이 없는 먼 곳이다.

게다가 물가도 많이 비싸다. 이런 상황이라면 스톡홀름은 다음을 기약하는 것이 낫다.

이렇게 각 도시마다 거리가 멀면 이동시간이 길어 효율성도 떨어지고 교통비도 많이 들고 여러모로 피곤해진다.

그러므로 서유럽이면 서유럽, 동유럽이면 동유럽 이렇게 테마를 잡아 가는 것도 매우 괜찮은 방법이다.

저번에 서유럽 갔다왔으니까 나중에 동유럽, 북유럽 갈까? 이런 식으로. 여행을 좋아한다면 앞으로 다시 갈 기회는 많다.


그리고 굳이 물가가 비싸거나 거리가 먼 것이 아니라도, 일정은 조금 여유롭게 잡는 것이 좋다.

설렘으로 가득찬 초보 여행자들은 가고싶은 곳이 너무 많은 나머지 도시 하나에 하루씩 우겨넣어 매우 빡빡한 계획을 짜는 경우가 많다.

체력적으로도 매우 힘들고, 설령 강철 체력을 자랑한다 하더라도 하루만에 대체 뭘 볼 수 있을까.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고 하다 보면 나중에 기억 아무것도 안 난다.

하루를 잡아도 도시 이동 시간을 고려하면 구경할 수 있는 시간은 하루가 채 되지 않는다.

그러니 아무리 가 보고 싶은 곳이 많아도, 적어도 도시 하나당 이틀은 잡도록 하는 것을 강력 추천한다. (굳이 하루만 보겠다면 뭐...)


이렇게 해서 최종적으로 내 일정과 예산 하에서 어느어느 도시를 들르면 적당할 지 감을 잡았다면, 동선을 확정하도록 하자.

지도를 펴 놓고 내가 가고 싶은 도시들을 표시한다. 양 끝 점을 잡고, (런던, 로마, 마드리드, 프라하 등등이 대표적인 끝 점이겠다.) 그 사이에 있는 도시들을 연결하면 된다.

이때 효율적인 이동을 위해 한 도시에서 가까운 도시를 선택하자.

(런던에서 가까운 도시 파리, 그 다음 파리에서 가까운 도시 브뤼셀, 그 다음 브뤼셀에서 가까운 ...)

이런 식으로 하면 동선이 나온다. 어떤 동선으로 이동할 지 정했다면, 대륙의 위부터 아래로 (혹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갈 지, 아래부터 위로 (혹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갈 지 정하면 된다.


2편에 이어서...


<대충 짜 본 루트. 실제로 몽골과 카자흐스탄을 지나진 않는다.>


내년 8월 9일에 리스본에서 인천으로 돌아오는 편도 티켓을 끊었다. 5월 중순으로 예정된 출발도 아직 반 년 넘게 남았지만, 어쨌든 티켓같은 건 빨리빨리 끊어놔야 설레는 게 좀 있다.

이런 무지막지한 여행을 계획하게 된 건 지난 8월 말이었다. 친구들과 속초에 여행을 갔었는데, 이정표마다 웬 키릴문자(러시아어에서 쓰는)가 있더라. 일본어 중국어 같은 건 흔하게 봤어도, 이정표에서 키릴문자를 본 건 난생 처음이었다. 궁금해서 네이버를 뒤져보니 이유를 금방 알 수 있었다. 속초항에서 러시아 블라디보스톡까지 가는 배가 다닌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블라디보스톡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시작한다는 것은 전에 어디선가 주워들어서 알고 있었다.

블라디보스톡까지 배가 다녀?? -> 거기서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시작해???? -> 모스크바까지 육로로??? -> 내친김에 서쪽 끝까지????

대충 이런 무모한 흐름으로...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한국에서 배로 블라디보스톡까지 간 후,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지나고 유럽 대륙 북동쪽부터 지그재그로 훑고 내려와 유라시아대륙의 최서단인 포르투갈의 호카 곶까지 장장 80일의 여정을 계획하게 되었다.

유럽 안에서 저가항공은 이용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러니까 한국 땅에서부터 호카 곶까지 육지(혹은 바다)로부터 내 몸이 1m 이상 떨어지는 일 없이 지구 표면을 주욱 긁는 것이다.

마음에 두고 있던 북유럽은 나중에 돈 많이 벌면 가야겠다. 이런 미친 짓은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을 것 같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