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깊은 상념에 빠져 번화가를 걷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이 많은 사람들은 지금 이 길에 서있기 전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떻게 지금 나와 같은 장소에 있을까

좋고 나쁜 사건을 겪으며 그리고 깊은 고민을 이겨내며 만들어진 제각기 다른 삶들

일면식도 없는 그냥 같은 시간에 같은 곳을 지나갈 뿐인 사람들이지만

짧게는 십몇 년 길게는 육칠십 년 그 이상을 살아온 이 사람들의 생각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그 많은 역사들이 뒤섞여 걸어가는 거리에 서 있다는 걸 느낄 때면 쉽사리 느낄 수 없는 중압감에 빠진다.

우두커니 서 있는 나의 윗통수를 커다란 지미짚 카메라로 한 시간 동안 찍어 빨리감기하면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광고나 영화에 흔히 나올 법 한 '난 누구 여긴 어디' 효과.

그걸 실제로 느낀다면 그런 감정이려나.


모르는 사람들 속에 섞여 있어도 가끔씩 그런 생각이 드는데

하물며 내 앞에 마주앉아 나와 눈을 마주치며 얘기하는 사람의 뒤편에

얼마나 많은 사건과 이야기가 숨어있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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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의 영주인 하루노부가 오다이하라의 전투에서 완승을 거두고, 군사(軍師)인 간스케가 잠시 가이를 떠난 사이 하루노부가 적의 도발에 분노해 무리한 전투를 치러 우에다하라에서 참패를 거두고 난 후)


(상략)...


"나는 왜 요시키요에게 졌느냐?"

눈을 뜨더니 하루노부는 전혀 엉뚱한 말을 꺼냈다.

"서언 때문은 아닐 게야."

"물론 그러하옵니다."

간스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무엇 때문에?"

"오다이하라의 전투에서 10할의 승리를 얻었기 때문이나이다."

간스케의 말에 하루노부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10할의 승리가 좋지 않다는 말이냐?"

"예."


하루노부는 납득할 수 없었다. 완전한 승리가 왜 안 된단 밀인가.

"10할의 승리는 10할의 패배를 부르는 법. 오다이하라와 우에다하라. 그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나이까?"

"그건 그렇고, 왜냐고 물었다."

"사나다 유키타카에게 말해두었나이다."

"그건 또 무슨 말이냐?"

하루노부의 목소리에는 가시가 돋쳐 있었다.


"만일의 경우, 주군을 구하라 하였나이다."

"내게 직접 말하면 되지 않느냐?"

"아니옵니다. 그때의 주군은 소인의 말을 들을 귀가 없었사옵니다."

간스케는 그렇게 단언했다.

"왜 10할의 승리는 10할의 패배를 부르는가?"

하루노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10할의 승리는 인간의 지혜를 넘어선 일, 모든 것이 나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때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이옵니다."

"행운이라는 거냐?"

"그것도 있사옵니다. 기상, 시기, 적의 강약, 아군의 강약, 대장의 기량, 모든 것이 하나가 되어야만 10할의 승리를 얻을 수 있는 것이옵니다. 인간의 힘으로 거둘 수 있는 승리란 고작 7할, 나머지 3할은 인간의 힘이 아닌 줄 아옵니다."

"......"

"그러나 인간이란 10할의 승리를 얻는 순간, 모든 것을 스스로의 힘으로 얻었다고 착각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것이 교만을 낳고, 적에 대한 멸시를 낳아 다음 전투에 영향을 끼치는 법이옵니다."

"그럼 빨리 그런 말을 해주어야 하지 않느냐? 왜 나에게 말을 하지 않았어!"

하루노부는 화가 치밀었다.

간스케가 담담한 목소리로 되받았다.

"주군은 무라카미 요시키요에게 완벽하게 당하셨나이다. 그러기에 소인의 말이 귀에 들어오는 것이옵니다. 만일 그때, 오다이하라의 승전 직후에 소인이 이런 말을 했더라면 주군은 결코 듣지 않으셨을 것이외다. 오히려 전장을 확대했을 테지요."


하루노부는 할말이 없었다. 아마도 간스케의 말이 맞을 것이다.

"패전은 고통스럽나이다. 그러나 왜 졌는지, 어디를 다시 고쳐야 하는지, 스스로를 반성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줄 아옵니다. 이에 심사숙고를......"

간스케는 다시 머리를 숙였다.


... (하략)




무사 2 (제 1부 풍림화산의 깃발), 이자와 모토히코 지음, 양억관 옮김, p253-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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