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라나 여유로움을 굳이 찾자면 이런 장면들을 보지 못하진 않겠지만은, 그래도 포르투갈에선 온 주변에 여유가 흐르는 것이 더욱 잘 느껴진다. 시간과 공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다고나 할까. 고양이는 풀밭 위에 누워서 사람이 지나가든 말든 털을 정리하느라 여념이 없다. 우리나라에선 이미 볼 수도 없는 빨간 공중전화 박스도 포르투갈에선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어제는 동 루이스 다리의 아래쪽 교량을 걸어서 건너갔었다. 그래서 오늘은 그 위쪽으로 한 번 가 볼까 했다. 위쪽 교량은 도보도 있지만 주로 전철이 지나다니는 선로로 이용된다. 어제는 성당 쪽 언덕에서 점점 내려가면서 전경을 봤기에 한 눈에 탁 트이는 뷰는 아니었지만, 오늘은 정말 높은 다리를 건너면서 포르토의 전경을 제대로 보았다. 바로 옆으로 노란 전철이 지나다니는데 아무런 가림막도 없다. 물론 전철의 속도가 그리 빠르지는 않아서 엄청 위험하진 않지만 그래도 거대한 전철이 바로 1m 옆으로 스으으윽 지나가니 무서우면서도 색다른 경험이었다.


가족들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는 모습. 저 놀이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구나. 아이가 4명이나 되는 가족이 모여서, 여행지에서 저렇게 행복한 모습을 보니 나도 덩달아 행복해질 수 밖에 없었다. 멀찍이서 그들이 놀이를 마치고 떠날 때 까지 지켜보았다.


도루 강 주변의 관광지들은 많이 둘러보았고, 포르토 대학 주변의 중심가를 둘러볼까 했다. 지도는 펴지 않고 그냥 발길 가는 대로 골목들을 걸었다. 분위기가 좋아보이는 상점들이 많았는데, 이런 헌책방을 파는 서점도 있었고 중고 카메라와 렌즈를 파는 가게도 있었다. 헌책방의 분위기는 너무 좋아서 직접 주인에게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양해를 구하고 한 컷 담았다. 오래된 물건을 파는 곳 뿐만 아니라, 특색있는 디자인의 물건들을 파는 상점도 많아서 구경할 게 꽤 많았다.


여기는 해리포터 영화에 나오는 도서관이 촬영된 서점이라고 한다. 예전엔 입장료가 없었는데, 해리포터에 나오는 서점이라는 입소문이 너무 많이 퍼져서 그런지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인해 영업에 지장이 생길 지경이 되었고, 결국 3유로의 입장료를 내야 들어갈 수 있는 곳이 되었다. 내 처지에 서점 한 번 보자고 어떻게 3유로를 입장료로 쓰겠는가. 결국 앞에서 북적대는 인파만을 사진으로 담은 채 쓸쓸히 걸음을 돌려야 했다. 아 처량하다.

지금까지 이야기엔 없었지만, 슈퍼에서 에그타르트를 사 먹었는데 의외로 정말 맛있었다. 포르토에 있던 마지막 날에는 에그타르트를 열 개도 넘게 먹었다. 이렇게 많이 먹는 게 가능했던 이유는 역시나 싸서가 아니겠는가. 슈퍼에서 파는 에그타르트는 하나에 0.19유로, 단 200원 정도였다. 그런데도 한국에서 파는 웬만한 에그타르트보다 맛이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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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52.1 (방값 30€, 유심 15€)
8/2 11.65

8/3 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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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도날드와 상벤투 역이 있던 광장에서 오르막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포르토 대성당이 있다. 아마도 여기가 포르토 중심가에서 제일 지대가 높은 곳에 있지 않나 싶었다. 건물 정문을 등지고 서면 포르토의 전경이 보이고, 건물 뒤로 돌아나가면 동 루이스 다리와 함께 포르토 중심을 가로지르는 도루 강이 한 눈에 들어온다. 빨간 벽돌 지붕과 파란 하늘의 조화가 너무 멋있지 않은가? 건물 발코니에 걸린 빨래와 파란색 아줄레주 그리고 빨간 지붕은 어딘가 촌스러우면서도 촌스럽지 않은, 포르투갈 나름의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성당 오른쪽에 보면 샛길이 있는데, 거기로 내려갔더니 우연히 포르토의 뒷골목을 만나게 되었다. 사실 어떻게 보면 아무것도 아닌 뒷골목인데, 의외로 정말 기억에 많이 남는 곳이다. 포르토든 그 전에 들렀던 그 어떤 도시든, 어쨌든 길어도 일주일 안에 한 도시에서의 일정이 끝났기 때문에 주로 관광지를 중심으로 둘러보는 여행을 해 왔었다. 하지만 포르토의 이 뒷골목에서는 정말로 포르토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어려있는 그런 곳이었달까. 빨래가 주렁주렁 널려있고, 아이들은 계단에서 장난을 치고, 벽에는 온갖 그래피티와 낙서가 그려져 있는 이 낡디 낡은 골목에서 나는 진짜 살아있는 포르토를 만난 느낌이었다.


골목길을 어느정도 내려오자 건물들에 가려졌던 시야가 점점 트이기 시작하면서 도루 강과 동 루이스 다리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한강만큼은 되지 않지만 그래도 꽤 큰 강이었다. 아무튼 이 다리는 정말 특이한 구조인데, 서울의 잠수교 같다고나 할까? 2층 교량으로 되어 있고 위층 교량을 아치가 받치고 있다. 위의 다리는 지하철과 사람이, 밑의 다리는 차와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는데, 유명하고 특이한 다리라서 그런지 이 곳을 걸어 지나가는 관광객이 정말 많았다. 나도 그들을 따라 밑의 교량의 도보를 따라 강의 건너편까지 걸어가 보았다.



???????

그러니까 난 이 도루 강을 서울의 한강과 비슷한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여기서 뛰어내리는 사람을 보니까 잠깐 어안이 벙벙했다. '하필이면 내가 포르투에 있을 때 자살 소동이 벌어진건가?' 한강을 생각해보라. 다리에서 뛰어내리는 사람 막겠다고 글귀까지 써 놓지 않던가. 물론 저기는 다이빙을 해도 다치지 않을 정도의 높이긴 하지만, 어쨌든 내가 생각하던 도루 강의 이미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던 모습이었다.

어쨌든 다이빙을 하는 저 다리 건너편으로 가 보니 저렇게 젊은 애들이 수영복만 입고 다이빙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앞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그 인파 사이로 다이빙 청년들의 친구들이 '이건 내 친구들의 직업입니다! 사진 찍고 구경을 하셨다면 돈을 주세요!' 라면서 돈통을 들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런 ㅋㅋㅋ 재밌는 구경을 했지만 돈을 줄 생각은 없다.

사실은 아까 성당 밑에 있는 골목길에서부터 소변이 엄청 마렵기 시작했었다. 어디 화장실이 없나 계속 찾다가 다리 주변에 화장실이 없길래 그냥 '다리를 건너면 어딘가엔 화장실이 있겠지' 라는 생각으로 건넌건데, 다리 건너에 전혀 화장실이 없었다. 바르셀로나에서 카드가 정지된 것, 그리고 피렌체에서 그림을 밟은 이후로 최대의 위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광의 탄성한계는 점점 다가오고, 나는 기꺼이 화장실에 1유로 정도를 쓸 준비가 되었는데도 공중화장실은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어떻게 해결했는지는 기억도 안 나지만 어쨌든 바지에 싸진 않았다. 아무튼 유럽에서는 정말 기회가 될 때마다 화장실을 다녀오는 게 상책이다.


이렇게 낮은 곳에서 본 도루 강과 포르토의 풍경을 찍을 때도 내 다리는 후들거리고 있었다.


그날 저녁에 다시 성당이 있는 언덕에 올라가서 본 야경. 환상적이었다. 많은 생각을 했다. 이젠 정말 딱 일주일 남았구나, 그 동안 있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아니 저기 흘러가는 도루 강의 강물처럼 스쳐갔다. 도수가 높은 포르토 와인을 한 잔 마셔서 그런지 불빛들도 유난히 넘실거렸다. 내 마음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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