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타고 그라나다로 왔다. 바르셀로나, 말라가 모두 버스터미널과 시내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서 숙소까지 걸어갈 수 있었는데 그라나다는 터미널과 시내가 걸어서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결국 버스를 타고 숙소까지 갔다. 작년의 넉넉한 여행에서는 당연한 일이었는데, 이번엔 그 1유로의 버스비도 왠지 아까운 느낌이 들었다. 곰곰히 되짚어 보니 정말 시내에서 버스나 지하철을 탄 적이 거의 없었다.

알함브라 예매를 하려고 온갖 방법을 다 써봤다. ATM에서도 예매가 된다고 해서 몇 군데 가보고, 인터넷으로 예매도 해 보려고 했다. 사실 지금 카드가 안 되는 상태라 좀 어려워서 한국에 있는 지인들에게도 부탁을 해 보았는데 결국 예매를 실패하고 말았다. 알함브라는 예매가 안 되면 못 간다고 해서 다음날이나 모레를 기약하고 알바이신 언덕으로 향했다.


길을 가다가 잠시 출출해져서 밥을 먹을까 했다. 남부에서는 아직 제대로 된 식당에서 밥을 먹어본 적이 없어서, 조금 돈을 주더라도 식당에 가서 밥을 먹고 싶었다. 마침 큼지막한 새우가 들어간 먹물 빠에야를 파는 곳이 있어서 샹그리아와 함께 주문했다. 엄청 맛있었는데 내가 좀 맛없게 찍은 것 같다. 샹그리아는 쓸데없는 장식을 해놓고 가격을 좀 올려받은 느낌이 없잖아 있었지만 그래도 맛있었다. 14유로라는 거금을 썼지만 그래도 행복했다.


알바이신 지구도 버스를 타고 가는 사람이 많은 것 같던데 역시나 나는 걸어서 갔다. 어느 정도 언덕을 올라가니 골목이 엄청 꼬불꼬불하고 복잡했다. 길을 잃어도 괜찮아서 이곳저곳 발길 가는 대로 걷다가 언덕으로 보이는 곳으로 올라갔다. 선인장 같은 것이 엄청 많이 보이는 게 역시 남부다 싶었다. 점점 높이 올라가면서 그라나다의 전경도 보이기 시작했다.


언덕을 올라가는 길에 동물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 말도 몇 마리 있고, 개도 막 풀어져 있고 고양이도 엄청 많았다. 아래 사진 왼쪽 위 고양이는 한 쪽 눈이 좀 불편한 듯이 보였고, 다른 곳에서 만난 개도 어딘가 좀 많이 아파보였다. 주인이 있는 아이들 같지는 않아보였는데 그래도 사람 손을 많이 탔는지 손을 내밀면 조금 머뭇거리다가 오기는 하더라.


얘는 사람이 키우는 고양이인지 엄청 털도 깨끗하고 발도 통통했다. 서두를 일도 없고, 말도 구경하고 개랑 고양이랑도 놀고 하느라 한 시간은 보낸 것 같았다.


다 올라오니까 도시 전체가 한 눈에 들어왔다. 건물이 없는 평원과 산도 저 멀리 보이기 시작했으니. 바람도 선선하게 불고 햇살도 적당히 따사로워서 구석에 걸터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보냈다. 주변엔 사람이 몇몇 있었는데 모두 관광객같지는 않았고 현지에 사는 사람들 같았다. 삼삼오오 와서 모두 어딘가에 걸터앉아 맥주 한 잔씩 하면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가만히 바라보자니 맥주도 그리웠지만 얼굴을 마주보고 같이 이야기 할 사람이 너무나도 그리웠다.


저녁 6시에 올라왔을 땐 하늘이 정말 파랬는데 점점 해가 빠르게 넘어가더니 한 시간 남짓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해가 지려고 하고 있었다. 언덕 위에서 핸드폰으로 알함브라 궁전에 대해서 찾아봤는데 유적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블로거가 알함브라에 가서 실망했다는 포스트를 보았다. 나도 사실 유적지 구경하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언덕 위에서는 알함브라 궁전도 한 눈에 보였는데, 석양에 물든 궁전이 정말 예쁘고 어딘가 신비로운 느낌이 들어서 가보고 싶은 마음이 잠깐 들기는 했다. 하지만 '남이 다 가는 곳이라도 내가 마음에 안 들면 가지 않는다' 라는 나의 신조를 지키기로 했다. 어차피 예매도 못 해서 이번 3일간의 그라나다 여행에서 가기는 무리였다고 합리화를 했다.

어쨌든 그라나다도 왠지 모르게 정감이 가는 도시다. 언덕에 올랐을 때 아직 다 지지 않은 해가 비추는 도시의 모습이 그렇게 따뜻할 수가 없었다. 모래빛 건물들이 붉은 석양에 물드는 장관은 스페인 남부의 모든 도시가 보여주는 모습인 것 같다. 강렬한 태양은 질 때마저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진다.


해가 다 져서 시내로 내려왔다. 그라나다는 여기저기 늦은 시간까지 영업을 하는 술집들이 꽤 있었고 사람들도 많이 돌아다녔다. 버스킹을 하는 사람도 많았는데 이렇게 제대로 된 사운드를 내는 버스킹 공연은 오랜만이라 동영상으로 담아보았다.


'여행 > 2016 유라시아 일주' 카테고리의 다른 글

[D+73] 세비야 여행 1  (0) 2017.05.07
[D+71] 그라나다 여행 2 - 타파스 투어  (0) 2017.05.07
[D+68] 말라가 여행  (0) 2017.05.07
[D+66] 바르셀로나 여행 2  (0) 2017.05.07
[D+66] 바르셀로나 여행 1  (0) 2017.05.06

말라가로 향하는 기차를 탔다. 그 동안 여행하면서 이용했던 그 어떤 교통수단보다도 좋았다. 기차 한 열에 네 자리가 아니라 세 자리였는데, 자리가 정말 널찍하고 푹신해서 기분이 좋게 잠이 들었다.

안 그래도 덥기로 유명한 스페인 남부를 가장 더워지는 7월 말에 왔으니 역에서 나오자마자 엄청 더울거라고 예상했지만 생각만큼 그렇게 뜨겁지는 않았다. 사실 한국에서도 유럽의 여름은 아무리 기온이 높아도 습하지 않기 때문에 체감온도는 그렇게 높지 않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것이 무슨 느낌인지 단번에 알았다. 햇빛 아래에서는 햇살이 따갑지만 그늘 안으로만 들어가면 그렇게 덥지 않다. 땀이 나도 습하지 않아서 금방 마르고 불쾌하지 않다. 이런 더위라면 괜찮다.

숙소는 매우 깨끗한데다가 각 침대마다 커튼이 달려있고, 저녁엔 전망 좋은 옥상에서 프리 샹그리아 파티까지 있었다. 게다가 횡단보도만 건너면 바로 앞에 시장이 있었다. 그 동안 엄청나게 많은 게스트하우스를 갔지만 손에 꼽을만큼 좋은 곳이었다.


체크인을 하고 짐을 정리하고 나왔는데 시장이 아직 닫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냉큼 달려갔다. 내가 관심있는 곳은 역시 타파스와 함께 술을 파는 가게들이었다. 남부 해안가에 위치한 도시답게 해산물을 사용한 타파스 메뉴가 가득했다. 공용 테이블은 꽉 차있어서 한 가게에 서서 맥주와 새우 요리 타파스를 시켜 먹었다. 칠리 양념이 된 새우 구이를 마요네즈 비슷한 소스에다가 찍어먹는 타파스였는데 맥주 안주로 이보다 좋을 순 없었다.


조금 쉬다가 지도를 봤더니 동네에 퐁피두 센터가 있는 것을 보았다. 파리에 있던 그것과는 분명 다르겠지만 이름이 똑같아서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주로 현대 미술을 전시하는 곳이었다. 철조망으로 된 훌라후프를 알몸으로 돌리는 여자의 동영상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그 외에 그렇게 크게 인상깊은 것은 없었지만, 사람도 많이 없어 쾌적하고 입장료도 저렴해서 한적하게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기엔 꽤 좋은 곳이었다.


말라게타 해변으로 가는 길에는 야자수가 양쪽에 펼쳐진 공원이 있었다. 해가 중천에 뜬 시간이라 어디에 있어도 그늘이 많지 않아 살이 타는 느낌을 좀 받았는데 야자수 밑으로 걸어가니 역시 시원했다. 해변 앞에는 모래로 만든 '말라게타' 가 있었다. 끝을 모르고 펼쳐진 지중해가 정말 멋있었다. 들어가보고 싶었는데 짐도 있고 옷차림도 그렇고 많이 망설여졌다. 결국 내일 들어가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숙소에 다시 와서 쉬다가 프리 샹그리아를 주는 시간에 올라갔더니 카드 게임을 하던 무리가 나보고 같이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한 게임을 즐겁게 하고 한참 기다려 숙소에서 파는 빠에야를 사 먹었다. 왠지 모르게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일면식도 없는 옥상 테라스의 이 외국인들도 왠지 정겹고, 옥상에서 보이는 석양빛에 물든 도시도 따뜻하고. 이제 정말 이 여정이 얼마 남지 않아서인 걸까? 아무튼 좋은 징조같다. 그리고 지도 앱을 열어 스페인 남부에 GPS 표시가 뜬 걸 보니 내가 그동안 얼마나 정신나간 짓을 했는지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사실 말라가에 대한 첫인상은 '정말 깔끔한' 도시라는 것이었다. 해변으로 유명한 도시이기에 그저 '해변만 멋있고 나머지는 그저 그렇겠지' 하는 막연한 편견이 있었는데, 그런 생각은 보기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어딜 가도 깔끔하고 깨끗하고 세련되고 '디자인적'이었다. 왠지 돈 많은 유럽 사람들이 쇼핑과 해수욕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고-급 종합 휴양도시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마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화가이지 않을까 하는 피카소의 고향답다는 느낌이 들었다. 피카소 박물관에 한 번쯤 들러보고 싶은 생각은 있었지만 역시나 그놈의 입장료가 문제였다. 아~ 비참해라.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과 적절히 포인트를 살린 도시의 곳곳 요소들이 어우러져 말라가에서만 느낄 수 있는 분위기를 내뿜고 있었다.

아무튼 도시 구경을 짤막하게 하고 어제 찾은 말라게타 해변으로 다시 갔다. 오늘은 해수욕을 할 만반의 채비를 갖추고 왔다. 그래봤자 잘 때 입는 반바지를 입고 온 것이지만. 역시나 어제와 같이 많은 사람이 해수욕을 즐기고 있었다. 동양인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사실 그럴 이유는 하나도 없는데 이게 은근 좀 눈치가 보인다. 여럿이서 온 것도 아니고, 서양인들 사이에 낀 홀로 온 남자 동양인이라니. 윗옷을 벗기도 전에 또 다시 쫄보본능이 발동했다. 하지만 눈을 꽉 감고 상의탈의한 후 바다에 몸을 던졌다. 망설임은 괜한 것이었다. 언제 또 이 드넓은 지중해에 몸을 맡길 수 있을까. 물을 조금 먹긴 했지만 맑은 바다에서 둥둥 떠다니면서 타인의 시선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자유를 만끽했다. 동양인이면 뭐 어때? 혼자 왔으면 뭐 어때? 좋은 몸이 아니면 뭐 어때? 조까!


-----------

7/21 61.3€ (방값 40€)
7/22 20.29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