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에서 말라가로 갈 때 탔던 그 편한 열차를 마드리드로 갈 때 다시 타고 왔다. 코르도바같은 남부 흙빛의 한산한 도시에서 복작복작한 수도로 다시 돌아오니 아예 다른 나라로 온 것 같았다.

마드리드는 2015년 나의 첫 유럽 여행에서 처음으로 온 도시였다. 마드리드를 다시 온 이유는 사실 바르셀로나를 다시 찾은 이유와 비슷하다. 여행을 리스본에서 마쳐야 하고, 포르투갈 포르토까지 가고 싶은데 남부에서 포르토까지 한 번에 가기에는 너무 멀어서 중간에 들를 도시가 필요했던 것 뿐이다. 마드리드는 할 게 많은 도시는 아니었지만 인상이 그렇게 나빴던 도시도 아니어서 그냥 숙소 2박 잡아놓고 별 거 안하고 쉬기로 했다.

작년에 묵었던 숙소를 또 예약했다. 그 때의 리셉션 직원은 정말 친절했는데, 이번엔 내가 들어와도 본체만체, 체크인하러 왔다고 말을 거니까 그제야 체크인을 해 준다. 그리고 숙소를 예약하는 과정에서 결제에 뭔가 잘못된 것이 있어서 체크인을 할 때 10유로 정도의 돈을 돌려받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체크인을 하는 중에 환불과 관련된 아무런 말도 없었다. '내가 말을 안 하고 까먹은 것 같으면 자기가 먹으려고 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체크인을 마칠 때 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아봤다. 역시나 환불받을 돈 받아가라고는 한 마디도 안 해준다. 방에 짐을 놓고 나와서 그냥 내가 '나 환불받을 돈 있었던 것 같은데?' 라고 말 하니 그제야 돈을 준다. 분명히 내 예약 정보에 뭔가 써 있었을 텐데 괘씸한.

게다가 방 안에는 에어컨이 없었다. 내가 예약할 당시에는 가을, 겨울철이라 에어컨이 없어서 불쾌했단 리뷰는 확인을 못 했었다. 그리고 내가 이 숙소에 왔었던 것도 겨울이었어서 에어컨이 없는 것 때문에 불편한 것도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그거에 대한 생각은 하나도 못 하고 있었는데, 찜통같은 숙소에 달랑 싸구려 선풍기만 방 중간에서 털레털레 돌고 있었던 것이다. 안 그래도 요즘 기분도 안 좋은데 숙소마저 날 괴롭히는구나.

안에 있으나 밖에 있으나 더운건 매한가지니 그냥 나가서 걷자는 심정으로 나갔다. 1년 반 만에 왔지만 숙소가 워낙 중심에 있었고 큰 길은 대충 기억이 다 나기 때문에 지도 하나 안 보고 그랑비아 거리부터 솔 광장까지 갔다. 솔 광장에서 산 미구엘 시장으로 가는 길에 유명한 츄러스집이 있다. 한국인한테 유명한 집이어서 앉아서 먹다 보면 주변에 한국말도 종종 들린다. 산 미구엘 시장에서는 말라가의 시장에서 먹었던 것 처럼 샹그리아 한 잔에 타파스를 시켜서 먹는다.

이 날은 더 이상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서 스페인 광장으로 갔다가 다시 숙소가 있는 그랑비아 거리로 돌아왔다. 숙소 바로 앞에 있는 백화점 식품코너에 가서 물과 납작복숭아를 사고 음반 코너에서 음반 구경을 하다가 버거킹에서 저녁을 먹고 잤다. 아~ 정말 보람차다.


다음 날은 아침부터 일어나서 미술관을 돌기로 했다. 프라도 미술관은 혜자롭게도 국제학생증만 제시하면 입장료가 공짜였다. 다만 신기했던 것은, 분명히 작년에 와서 프라도 미술관을 구경했을 때는 꽤 괜찮았었다고 기억하고 있어서 이번에 두 번째로 가면 더 좋겠지? 생각했었는데 정말 생각보다 별로였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작년까지는 미술에 관해서 거의 아는 게 없는 일자무식의 상태였다. 하지만 러시아에서 에르미타주 박물관, 트레챠코프 미술관 등등을 돌아보면서 그림의 아름다움에 대해 조금 눈을 뜨게 되었고 내 취향이라고 할 만한 것이 조금 생긴 것 같았다. 그래서 그 뒤에 방문한 미술관에서도 내 취향인 그림과 아닌 그림을 확실히 나눌 수 있었고, 아무리 유명한 미술관이라도 내 취향이 아닌 그림들이 주로 전시되는 미술관은 가지 않았다. 프라도 미술관은 세계 3대 미술관이라고 불릴 정도로 규모가 큰 미술관이고 또 입장료도 공짜였기 때문에 그냥 별 의심 없이 들렀는데, 고야 정도의 그림 말고는 내 눈길을 끄는 작품이 아무것도 없었다. 바람처럼 휙 둘러보고서 한 시간도 안 되어 밖으로 나왔다.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은 그보다는 조금 더 괜찮았다. 훨씬 더 최근의 작품들이 있었고 유명하지는 않아도 참신한 작품들이 많아 오랫동안 주의깊게 관람을 하고 나왔다. 역시 유명세와 감동은 무조건 비례하지 않으며 어떤 경험들에 따르면 심지어 반비례하는 경우도 종종 있는 것 같다.

마드리드 곳곳을 돌아다니다 앞뒤로 간판을 메고 'All You Can Eat'이라는 이름의 뷔페를 홍보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전단지도 몇 번 받았고, 작년에 갔던 뷔페에서 꽤 훌륭한 식사를 했던 기억이 나서 마드리드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그 뷔페에서 하기로 했다. 구글 지도에 검색을 해 보니 지점에 몇 개가 있는 것 같길래 그랑비아 거리에 있는 지점으로 갔다. 아무래도 명품 가게가 즐비한 화려한 거리이다 보니 다른 지점보다 퀄리티도 조금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전혀 논리적이지 않은 생각이었다.

논리적이지 않은 생각은 결국 나를 폭발하게 만들었다. 맨날 돈 없다 어쩐다 징징대면서 한 끼를 제대로 배부르게 해결하는 경우도 잘 쳐줘야 며칠에 한 번 있는 일인데, 이렇게 한번 마음 굳게 먹고 뷔페를 간 날에는 무조건 식사를 성공해야 했다. 내가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도 아니고, 항상 배고픈 상태이니 정말 못 먹을 것만 주는 거 아니면 웬만하면 맛있게 잘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이건 너무 심했다. 뷔페에서 한 접시 담아다가 먹었는데 반 접시도 채 못 비웠다. 내가 이 정도 반응을 보였다면 맛이 어땠을지 상상이 가는가? 치킨에는 무슨 털같은 게 붙어있고 초파리는 왱왱 날아다니다 과일에 덕지덕지 붙어있고 콜라까지 뭔가 느끼한.. 도저히 이건 10유로짜리 뷔페에서 팔 만한 음식이 아니었다. 토가 나오려고 하는 걸 부여잡고 (진심으로 토하고 싶었다) 오염되고 더러워진 입을 청소하기 위해 버거킹으로 달려갔다. 와퍼에 너겟에 콜라에 미친듯이 시켜대고 입이 비는 대로 쑤셔넣었다. 배불러서 감자튀김은 반이나 버렸지만 그나마 살 것 같았다. 순식간에 20유로를 버렸다.

그러고 나서 '유랑' 카페에다가 그랑비아 거리에 있는 'All You Can Eat' 은 절대 가지 말라고 피 토하는 심정으로 글을 올렸다. 이 글을 보시는 님들도 절대 거기는 가지 마세요. 뷔페에 가고 싶다면 차라리 'Topolino'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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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0 35.8 € (방값 28 €)
7/31 22.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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