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발트3국의 마지막 나라인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에 왔다.

숙소에서 구시가로 가는 길에 이런 깜찍한 벽화가 있었다. 아무래도 전체적으로 리가보다는 뭔가 익살스럽고 편안한 분위기가 감도는 듯한 느낌이었다.

사실 이젠 구시가에 질려버렸다. 발트3국 수도의 구시가 모두 조금씩 다른 면이 있긴 하지만 거의 비슷하다. 돌바닥 거리에 중심가에 늘어선 노점상과 똑같은 건물들.. 단 하나 빌뉴스의 구시가가 조금 다른 면이 있다면 구시가와 구시가가 아닌 곳의 경계가 조금 불분명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체감상 돌아다닌 면적이 제일 넓었던 것 같다.

역시나 성당들도 많았다. 아 그런데 마지막에 있는 저 빨간 성당에서 꽤 감동적인 일을 겪었다.

저 성당은 그렇게 유명한 성당도 아니고 그냥 무작정 걷다가 발견한 성당이다. 사진을 찍고 나서 잠깐 구경이나 할까 싶어 안으로 들어갔는데, 성가 소리가 들렸다. 외국에서 미사 드리는 것을 꼭 한번 구경해보고 싶었던 나는 신자들이 안으로 들어가는 와중에 유리문 밖에서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구경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할머니가 들어오면서 나를 힐끗힐끗 쳐다보시더니, 나중에는 나를 향해 들어오라고 손짓을 하시더라. 놀란 나는 내가 들어가도 되냐고 바디랭귀지로 말을 했다. 그러더니 할머니는 나한테 다가오셔서 두 팔로 나를 안아주시고서 미소를 지으면서 알 수 없는 말을 늘어놓으셨다. 아마도 '여기 온 것을 환영하고, 밖에 있지 않아도 된다, 들어와서 같이 미사를 드려도 된다' 이런 의미일 것이리라.

나는 따라 웃으면서 성호를 긋고 안으로 들어갔다. 할머니는 너무나 좋아하시면서 빈 자리를 가리키고 앉으라고 하셨다. 덕분에 나는 편히 앉아서 성당 안에서 미사 드리는 것을 지켜볼 수 있었다. 완벽히 낯선 사람이 나를 두 팔로 안아주고 조건없는 사랑으로 가득 찬 말을 (내가 느끼기엔 그랬다) 나에게 해 주었다. 기분 좋은 먹먹함, 스며들듯 적셔오는 잔잔한 감동이었다. 행복했다.

성당에서 나와서 'Energy and Technology museum' 에 갔다. 이름만 보고서는 독일 뮌헨의 독일박물관처럼 온갖 기술과 과학 관련된 것들이 가득할 줄 알았지만 규모는 정말 작고 볼 것도 그리 많진 않았다. 입장료는 싸서 다행이었다. 여기 말고도 지도에 관심이 가는 박물관 이름이 많아서 한번씩 가 봤지만, 다들 규모가 너무 작다. 빌뉴스에서 박물관은 별로 가볼만한 곳이 못 되는 것 같다.

박물관에서 나와서 바로 강 건너편에 있는 언덕 위의 '게디미나스 탑'을 갔다. 올라가는 길이 정말 큰 돌로 만들어져 있어 운동화가 아니면 절대 걸어 올라가지 못할 것 같다. 운동화를 신어도 돌이 워낙에 크고 둥글어서 발이 이리저리 움직여 애좀 썼다. 게다가 경사도 워낙 크다.

그래도 언덕 위에서 바라본 풍경은 꽤 좋았다. 빨간 지붕으로 색깔이 통일되어 있어 더욱 아기자기하고 고풍스런 멋이 있었다. 저 깃발이 걸려있는 탑 위에도 올라갈 수 있는데, 학생 입장료가 2유로라서 그냥 포기했다. 언덕 위에서 바라보는 거나 별 차이가 없을 것 같았다.

다음으로는 우주피스 공화국에 갔다. 우주피스라 그래서 나는 뭐 처음에 이름을 듣고 'peace of universe?' 이런 건 줄 알았는데 그냥 지명이 Uzupis 였다.

여기는 4월 1일 만우절에만 나타나는 나라인데, 이 날 만큼은 입구에서 여권에 도장도 찍어준다고 한다. 그런 특이한 예술가 마을이라고 해서 기대를 많이 하고 갔는데 정말 별거 없었다. 정말이다. 자꾸 내가 여행기마다 '생각보다 별로였다, 별거 없다' 이런 얘기를 늘어놓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해지지만, 여긴 정말 이런 얘기를 할 수 밖에 없다.

그래도 이걸 실제로 보게 된 것은 신기하고 좋았다. 우주피스 공화국의 헌법이라는데, 벽에 각 나라 말로 쭉 적혀있다. 10개가 넘는 언어로 적혀 있는데, 한국어도 없고 심지어 일본어도 없더라. 히브리어, 조지아어, 노르웨이어 등 까지도 적혀있던데 말이다.

우주피스에서 나오면서 본 미니 도서관이다. 자유롭게 가져가서 읽고 자유롭게 갖다놓으라고 적혀 있다. 정말 귀엽다. 동시에 우리나라에 저런게 있으면 어떻게 될 지 상상해 본다. 실제로 어느 지하철역에 시범적으로 저런걸 만들었다고 한 얘기를 예전에 들은 것 같은데, 그 때 결과를 내가 기억하기로는..... 음....... 읍읍!

이 모든 것들을 하루만에 둘러봤다. 빌뉴스에서의 일정은 6일 저녁에 도착해 9일 밤에 나가니까 총 3일 정도가 되었는데, 하루만에 빌뉴스를 다 보고 하루는 트라카이를 갔다 오니 마지막 날에는 정말 할 만한 것이 없었다. 그냥 쉬는 날이라 생각하고서 느즈막히 일어나 카페에 가서 한국에 보낼 엽서를 썼다. 그리고 조금 먼 국립미술관에 다녀오고 끝.

왜 자꾸 여행기에 할 게 없다, 별로다, 심심하다, 이런 얘기를 쓰게 되는지는 모르겠다. 정말 별로이고 할 게 없어서 그런가? 아니면 마음이 울적해서 그런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유가 어떻던간에 그렇다고 해서 후회하진 않는다. 성당의 친절한 할머니와의 조우나, 한적한 호숫가에서 오리와 논 것, 나를 보고 활짝 웃는 아기, 꽃집에서 흘러나오는 꽃향기 등 내가 할 게 없고 별로라고 느끼는 이 생활 속에서도 점점이 행복한 순간들을 마주하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을 더욱 소중하게 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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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41.94€ (방값 포함)
6/7 14€
6/8 11.49€
6/9 23.98€


지금까지의 발트 3국 여행에서, 수도보다는 근교 여행이 훨씬 좋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트라카이도 당연히 기대가 되었다. 빌뉴스에 도착한 다다음날에 트라카이로 향했다.

빌뉴스 버스정류장에서 트라카이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으며 표는 매표소에서 사는게 아닌 버스기사에게 직접 돈을 낸다. ISIC 소지자인 학생들은 50% 할인을 받을 수 있으니 꼭 학생이라고 말할 것. 작은 돈이지만 한푼이라도 아낄 수 있으면 좋지 않은가. 할인을 받아서 왕복 1.8유로에 다녀올 수 있었다.

트라카이 주변에는 크고 작은 호수가 약 1000여개가 있다고 한다. 그걸 증명하듯 트라카이 버스정류장에서 내리자마자 잔잔한 호수가 눈에 들어왔다. 한 5분간 걸어가니 이렇게 예쁜 호수가 있어 잠깐 앉아서 호수를 바라보았다.

트라카이 성은 버스정류장에서부터 1.9km를 걸어가면 나온다. 저 멀리 빨간 지붕의 아담한 성이 보였다. 리투아니아는 빌뉴스의 구시가 건물들도 그렇고 오래된 건물은 죄다 빨간색 벽돌을 이용해 지붕을 올렸다. 호수 풍경과 정말 잘 어울리는 색깔이다.

성 안에 들어가려면 입장료를 내야 하는데 학생 할인을 받아도 3유로였다. 딱히 보고싶은 것도 없는데 꽤 비싼 돈 같아서 그냥 다시 성을 나와 성 주변을 걸으며 한적한 시간을 보냈다.

이렇게 주변엔 오리들도 놀고있다. 사람을 별로 무서워하지 않는지 사람이 있는 뭍에도 가까이 잘 올라온다.

물도 정말 맑다.

트라카이 성 말고는 볼게 없는 곳이다. 시굴다만큼 시간이 많이 필요한 곳은 아니고, (사실 시굴다도 버스를 타고 성에 올라가면 후딱 볼 수 있지만 ;;) 그냥 반나절 정도 여유롭게 쉬면서 물 구경하기에는 좋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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