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트 3국을 벗어나 폴란드로 향했다. 처음으로 야간 버스를 타고 이동을 했다. 바르샤바에는 아침 6시에 도착했는다. 버스에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기에 좀 쉴 생각으로 숙소를 열심히 찾아갔다. 그런데 숙소 문에는 아침 8시에 리셉션을 연다는 말 밖에 없었다.

결국 8시까지 문 밖에서 꼼짝없이 한 시간을 넘게 기다려야 했다. 숙소 와이파이는 잡히는데 비밀번호를 모르고.. 이것저것 찍어보았는데 정답은 없었다. 인터넷도 안 된 채로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런데 나중에 숙소에 들어가 보니 내가 찍은 비밀번호중에 앞에 #만 붙이면 됐었다.)

그리하여 직원이 오고 겨우 숙소에 들어갔는데 체크인은 한시부터 된다고 한다. 거 좀 빈 침대 하나만 미리 내주면 안되나.. 생각했지만 안되는 걸 뭐 어쩌겠나. 결국 라운지 소파 구석에 자리를 잡고 벽에 머리를 기댄 채 열두시까지 선잠을 잤다. 배가 고프길래 파스타를 해 먹고 체크인을 한 뒤 침대에 들어가 또 세시까지 내리 잤다.

그렇게 푹 쉬고 난 뒤 바르샤바에서 처음 간 곳은 쇼팽박물관이었다. 나에게 바르샤바는 쇼팽의 흔적을 찾으러 간 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클래식 작곡가 중 유난히 쇼팽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쇼팽탐지견이 된 심정으로 바르샤바를 돌아다닐 수 밖에 없었다.

쇼팽의 생가이자 쇼팽박물관 건물. 후! 이 건물에 다다르자 가슴이 뛰었다. 여기가 쇼팽이 살던 곳이라니. 이렇게 옛날에 살던 어떤 사람의 흔적이 묻은 것을 볼 때, 오랜 시간의 간격을 넘어서 마치 그와 내가 만난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의 짜릿함이 정말 중독성있다. 미술관에서 그림을 볼 때도 그렇고, 이렇게 누군가 살던 집에 가도 마찬가지이다.

저기 꽂혀있는 악보들 중 하나를 꺼내 피아노 앞에 있는 보면대에 올려놓으면 그 곡이 연주가 되었다. 표 값도 얼마 하지도 않는 주제에 정말 관람하기 재밌게 구성되어 있다.

이렇게 서랍을 꺼내면 악보가 나오는데 그 곡이 연주되기도 하고,

이런 책의 책장을 넘기면 위의 바코드를 인식해서 내용이 달라진다. 저 글자나 악보가 잉크로 인쇄된 게 아니라 위에서 빛으로 쏴주는 거다. 곡에 대한 이야기와 악보, 유명한 피아니스트들의 연주를 책장을 넘기면서 볼 수 있다.

쇼팽이 쓴 편지와 손글씨 연습하던 책도 있고,

쇼팽이 쓰던 피아노도 있다.

쇼팽이 만난 사람들과 방문했던 도시들의 음악가들에 대한 이야기.

그래, 쇼팽은 이제 없다.

하지만 그런 그의 숨결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어서 나같은 빠돌이는 너무나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딱히 쇼팽에 관심 없는 사람들도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는 곳인 것 같다.

폴리니가 연주한 에튀드를 제일 좋아하는데, 구하고 싶어도 좀처럼 한국에서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뮤지엄 샵에 익숙한 앨범 커버가 있었다. 바로 이 앨범! 바로 지르고 말았다. 앞으로 이보다 더 비싼 기념품을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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