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가에는 3일 저녁에 도착해서 6일 아침에 떠나는 일정이었다. 총 이틀 반의 시간이 있었던 셈이다. 그래서 하루 반은 리가를 둘러보고 하루는 리가 근교의 시굴다를 가보자고 계획을 했었다.

하지만 4일날 아침에 나와서 구시가를 조금 둘러보고 점심을 먹고 나오니, 지금 시간이 12시인데 오늘 하루 종일 이 구시가를 둘러보며 시간을 보낼 자신이 없었다. '구시가가 커봤자 뭐 얼마나 크다고, 기껏해야 서너시간이면 구석구석 다 둘러볼 수 있는데.' 이런 생각이었다. 그래서 나는 다음날 시굴다를 가기로 한 계획을 앞당겨서, 현자타임이 온 그 순간 바로 기차역으로 직행했다.

시굴다로 가는 방법에는 기차와 버스 두 가지가 있었는데, 기차를 타고 가고 싶어 버스는 아예 배제했다. 그동안 너무 버스를 많이 탄 탓도 있었지만, 기차를 타야만 느낄 수 있는 어떤 설렘같은 것이 분명히 있다. 작은 마을로 떠나는 여행에는 이 네 량 짜리 지역 기차가 제격이지 싶었다.

노란색과 파란색이 섞여서 아기자기한 장난감 기차같이 생긴 주제에 와이파이는 겁나 빵빵히 터진다. 표값은 겨우 편도 1.9유로, 한시간 조금 넘게 걸리며 기차편도 꽤 자주 있다.

시굴다에 가기로 한 결정은 정말 충동적이었지만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자연자연 조용조용한 분위기를 마음껏 뽐내는 시굴다! 시굴다 근처에 있는 투라이다 성까지 5km 정도의 거리가 있는데, 성까지 걸어가면서 단 한번도 지루한 적이 없었다. 여행을 시작하고 나서 처음으로 진정한 산책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간간히 보이는 연못 하며 울창한 풀과 숲, 그리고 곳곳에 피어 있는 후라이꽃과 노란 들꽃까지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 풍경이었다. 공기도 너무 맑고, 사람도 많지 않아 정말 좋았다.

사진은 찍지 못했지만 곳곳에서 웨딩촬영을 하는 커플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이 날만 네 커플은 본 것 같다. 어느 커플이 좁은 다리 위에서 촬영을 하고 있었는데, 나도 그 다리를 건너가야 했지만 멀리서 그 모습을 보고 촬영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면서 들꽃을 보며 노닥거리고 있었다. 그러다 사진사와 커플이 나를 발견하곤 건너가라며 손짓하길래, 비켜선 커플 옆을 지나가면서 축하한다는 말을 건넸다. 웃으며 고맙다고 하는 커플의 표정이 얼마나 사랑스럽던지. 아무리 꽃이 예뻐도 역시 사람 표정을 이길 순 없다.


길을 잃어가면서까지 꾸역꾸역 올라간 투라이다 성 전망대에서 본 경치는 생각보다 그렇게 훌륭하진 않았다. 아마도 다른 블로그에서 본 사진들 때문에 너무 기대를 많이 해서 그런 것 같다. 그래도 저 멀리까지 뻗은 숲과 하늘, 굽이 흐르는 강을 보니 가슴이 탁 트인다. 시굴다 역에서 여기까지 드디어 걸어 올라왔다는 뿌듯함도 든다.

시간도 늦었고 이 길을 다시 걸어갈 자신이 없어 다시 시굴다로 돌아갈 때는 버스를 탔다. (이름은 버스지만 무슨 승합차 같은 차였는데, 그 봉고차 앞문같이 생긴 문을 열면 안에는 버스 좌석같이 되어 있다. 짱신기) 시간이 된다면 시굴다에서 투라이다 성까지는 꼭 걸어서 가는 걸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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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린 다음으로 도착한 곳은 에스토니아 밑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였다. 탈린에서 리가로 가는 버스 표를 Lux Express에서 5유로에 끊었는데, 버스 안에는 각종 최신 영화와 드라마가 가득한 개인 모니터부터 커피, 차 등을 무료로 마실 수 있는 자판기까지 존재했다. 대체 5유로에 티켓을 팔아서 뭘 남기는지 모르겠다.

리가는 탈린과 좀 많이 다른 듯 싶었다. 좀 더 낙후되고 정비가 덜 되었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그런 면에서 오는 어지러움과 무질서함이 여행자 입장에선 더 반가운 것 같기도 하다. 정갈하게 잘 정돈된 도시와, 씀씀이 큰 여행자들을 반기기 위해서 마련된 것 같은 깔끔한 가게들에서는 거기 사는 사람들의 진짜 삶의 냄새가 잘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리가는 탈린보다는 조금 더 정다운 도시였다.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숙소 주변에 있는 리가 중앙시장이었다. 건물 안에는 각종 식재료를 주로 팔고, 건물 밖에서도 이렇게 장이 서서 꽃과 체리, 딸기 등을 팔고 있었다. 꽃가게 좌판을 지나갈 때는 흐드러지는 꽃 냄새에, 과일 좌판을 지나갈 때는 달콤한 딸기 냄새에 행복한 미소를 감출 수가 없었다.

구시가는 탈린의 그것과 비슷했지만 깔끔한 이미지보다는 조금 더 화려한 이미지가 강해졌다. 그리고 야외 테이블이 있는 식당들의 크기가 더 커져서, 테이블들의 중간에 밴드들이 음악을 연주하고 있는 것도 매우 자주 볼 수 있었다.

구시가에서 유명한 삼형제 건물이다. 오른쪽 건물부터 15, 17, 18세기에 각각 지어졌는데, 모두 다른 파스텔톤의 예쁜 색깔을 머금고 있었다. 오른쪽의 하얀 건물은 특이하리만큼 창문이 작은데, 15세기에는 건물 창문의 크기에 따라 소유세를 매겼다는 웃지 못할 이유 때문이라고 한다.

구시가 옆을 빙 둘러 흐르고 있는 하천이 있는데, 여기를 따라 만들어진 공원이 참 예뻤다. 작은 배를 타고 투어를 하는 사람들도 보이고, 풀밭에 누워 쉬는 사람들도 보이고 참 여유로운 곳. 페트병이 둥둥 떠내려가는 걸 보며 담배를 태웠다. 

그 외에 미술관도 잠깐 들러서 구경하고, 구시가를 빙 둘러싼 성벽과 화약탑, 전쟁 박물관도 들렀다.

어느 블로그에서 찾은 팬케익 집인데, 정말 괜찮았다. 내가 팬케익 덕후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가격도 정말 싸고 양도 꽤 푸짐하고 맛도 괜찮았다. 이름은 Šefpavārs Vilhelms. 구시가 중앙에 있다. 팬케익 3개에 사워크림까지 담아도 3유로를 넘기가 힘들다. 리가에서 점심은 모두 이곳에서 배불리 먹었다.

구시가에 대한 정보를 많이 찾아보지 않고 가서 눈에 보이는 것들이 많이 없었다. 나중에 다른 블로그들을 찾아 보니 내가 보지 못한 것이 좀 되는 것 같다. 사실 탈린에서도 구시가를 실컷 보다 왔기 때문에 구시가를 돌아다니는 것에 흥미가 좀 떨어지기도 했다. 워킹 투어를 그냥 신청할 걸 그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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