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라노와 비에이를 다녀온 날 저녁, 하루종일 자전거 타고 걷고 돌아다녀 지친 몸을 야키니쿠로 달래기로 했다. 일본에 그래도 꽤 많이 가 봤고 야키니쿠 얘기도 많이 들어봤지만 실제로 먹어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우설과 갈비인데 한점한점 나오는 퀄리티가 장난이 아니다. 굽기 전부터도 이건 무조건 맛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녹는다 녹아.

어떤 직원의 아버지가 직접 잡아서 보내주신 가리비라고 손님들에게 서비스를 주시는데 우리 자리에도 두 개를 놔 주셨다. 아 정말 지금 생각해도 군침돈다. 가격 생각하지 않고 술이며 고기며 실컷 먹었더니 생각보다 가격이 좀 나오기는 했지만 너무너무 맛있었고 직원분들도 친절했다. 계산하고 나오며 생각해 보니 여긴 아무래도 또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발길을 돌려서 귀국 전날 저녁으로 예약을 하고 나왔다. 결국 하루 더 가서 먹었고 사장님과 같이 사진까지 찍었다는.

평소에는 잘 먹지도 않는 술을 이자카야나 식당에서 잔뜩 먹고 취기가 올라 신나게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 참 좋다.

다음 날 아침에는 그 유명한 스프카레를 먹었다. 원래 삿포로에서 스프카레로 유명한 가게 중 하나를 가려고 했는데 영업 개시 시간보다 약간 늦게 갔더니 이미 줄이 장사진이다. 사실 어디서 먹든 그렇게 많이 차이가 날까 싶어서 구글맵에서 많이 유명해보이진 않지만 리뷰가 괜찮은 곳을 찾아서 들어갔다. 정말 생각보다 맛있었다. 야채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데도 모든 야채를 다 흡입하고 국물도 남김없이 마시고 나왔다.

오늘의 근교 여행지는 오타루. 미나미오타루 역에서 내려서 슬슬 걸어가 쭉 구경하고 오타루 역에서 다시 돌아오는 계획을 짰다.

그 유명한 오타루 오르골당. 웬만하면 정말 다 예쁜데 그렇다고 집에 두면 예쁜 애물단지가 될 것 같아서 뭐 하나라도 사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참았다.

그건 그렇고 정말이지 한국어, 중국어밖에 들리지 않았다. 어제까지 여행하면서는 사실 한국인을 그렇게 많이 볼 수가 없었는데 (하코다테에서는 정말 한국인을 찾기가 힘들었고, 후라노 비에이에서도 생각보다 한국인을 별로 만나지 않았다) 여기는 진짜 이태원 느낌이었다. 단체관광 온 아주머니들이 여기저기 소리를 질러대는 탓에 귀가 아파서 얼른 나왔다.

그래도 예쁘다.

내가 좋아하는 르타오 본점에도 갔다. 대기가 생각보다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여러 케익을 팔고 있었는데 사실 맛이 없는 건 아니고 물론 맛있지만 그렇다고 '본점'이라는 단어의 위엄에서 느껴지는 눈물감동실화의 맛까지는 아니었다.

아무튼 그렇게 르타오 본점과 오르골당 쪽에서 오타루 역 방면으로 쭉 올라가는 거리에는 각종 기념품과 해산물 등 여러 가게들이 줄지어있다. 마치 경주의 황리단길 같은 느낌.

예쁜 유럽풍의 건물들도 꽤 많았다. 다만 사람이 정말 많아도 너무나 많았다.

드디어 도착한 오타루 운하.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한다. 일단 밥을 먹고 다시 돌아오기로.

요즘 즐겨보는 일본 여행 유튜버가 추천한 징기스칸 맛집으로 간다. 오타루 역 앞의 골목 사이에 있는 작은 가게인데 아마도 우리가 첫 손님인 것 같았다. 보통 징기스칸 가게는 야키니쿠처럼 손님이 직접 화로에다 구워먹어야 하는 곳이 대부분인데 여기는 주인장이 직접 구워주는 것도 장점이다. 보통의 징기스칸 고기와 함께 양념한 양고기가 같이 나오는 세트를 시켰다. 맛은 기가 막힐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충분히 맛있었다.

저녁을 먹고 다시 오타루 운하로 돌아간다. 음... 뭐랄까. 낮부터 너무 많은 관광객 인파에 치여서 그런지 오타루에 대한 첫인상은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런가 오타루 운하도 보통 다들 '정말 운치있다' '낭만 죽인다' 이런 말들을 하는데 나한텐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아님 체력이 떨어져서 그랬나... 그래도 예쁘기는 예쁘다.

사실 난 그런것보다도 그냥 숙소 들어가기 전 야키토리야, 이자카야에서 간단한 안주와 먹는 술이 제일 좋다. ㅠㅠ

다음날엔 삿포로 시내 잠깐 구경하고 온종일 쇼핑몰 돌아다니면서 쇼핑을 했다. 저녁엔 아까 그 야키니쿠 집에 다시 가서 저녁도 먹고. 쇼핑을 하면서 일본어를 좀 하니까 점원이 말을 걸어서 간단한 스몰톡도 했다. 드라마 얘기도 하고 그러면서 일본어 정말 잘하시네요 라는 말도 듣고... 내가 먼저 말을 거는 스타일은 아니라 이렇게 누군가 일본어 할 줄 아냐면서 말을 걸어주고 대화가 핑퐁이 좀 되면 기분이 참 좋다. 그러면서 더 많이 공부해야겠다는 의욕도 생기는데 잘 하지는 않는다...

이렇게 나의 첫 홋카이도 여행은 끝이 났다. 오타루를 제외하면 이번에 갔던 근교 여행지들 모두 다 마음에 들었고, 하코다테도 너무 조용하니 예뻤고, 삿포로에서도 맛있는 야키니쿠와 스프카레같은 음식을 잔뜩 먹어서 기분이 좋았다. 그렇기에 다음에는 홋카이도의 다른 도시들을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어딜 가든 고유의 매력으로 즐겁게 여행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최북단인 왓카나이나 홋카이도 동쪽의 도시들도 좋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기대가 된다. 아! 야키니쿠 또 먹고싶다.

기차로 3시간 반을 달려 도착한 삿포로.

첫 끼니로 먹은 것은 현지인들이 많이 찾는 회전초밥 집이었다. 네무로 하나마루라는 곳인데 삿포로 역 근처에 두 개가 있다. 하나는 삿포로 역사 쇼핑몰 안에 있는 지점인데 가자마자 어마어마하게 많은 대기줄에 기겁을 하며 빠져나왔다. 다른 하나는 삿포로 역에서 남쪽으로 조금 걸어 내려오면 있는 지점인데, 여기는 그나마 대기가 덜 했다. 대기를 걸어놓고 주변 상점들을 구경하다 보니 대기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이상하게 난 회전초밥집에 가면 맛난 생선 스시를 먹기보다는 유부초밥이나 고기를 올린 스시가 그렇게 땡긴다. 저 유부초밥은 이름부터가 특이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대충 '미친듯이 즙이 나오는 유부초밥' 약간 이런 느낌이었다. 너무 궁금해서 시켜봤는데 실제로 유부 반 물 반이었던 느낌이다. 아래는 웬 대하가 통째로 들어가 있는 충격적인 비주얼의 스시.. 꽤 맛있었다 가격도 나쁘지 않았고. 입맛이 그렇게 고급이 아니라서 이런 대중적인 곳에서도 난 충분히 만족을 느낀다. 결국 떠나기 전에 한번 더 찾았다는...

다음날은 기차를 타고 후라노와 비에이 지역으로 간다.

중간에 한 량짜리 귀여운 열차로 갈아탄다. 비에이 역의 역사 크기는 한국 사람들에게 알려진 그 명성에 비해서 꽤 작다. 한국인들은 대부분 버스투어를 이용하거나 차를 렌트해서 돌아다니거나 해서 아마 여기에 올 일은 별로 없을 것이다. 

놀랄만큼 사람을 찾아보기가 힘든 한적한 시골동네를 지나 그 유명한 비에이 맛집 준페이에 왔다. 아마 저 때 시간이 12시가 조금 안 되었을텐데, 생각과는 다르게 대기도 없었고 바로 자리에 앉아 주문을 할 수 있었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후라노와 비에이 지역을 어떻게 여행해야 하는지 고민하다가 버스 투어도 많이 알아봤는데, 그 투어들이 장점으로 내세우는 것 중 하나가 준페이에서 대기 없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예약도 해 준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시시하게 먹게 될 줄은 몰랐지만, 맛만큼은 전혀 시시하지 않았다. 게눈 감추듯 흡입했다.

홋카이도 여행 유튜브를 보다가 발견한 것은 비에이 주변을 자전거를 타고 돌아보는 자전거 투어였다. 비에이 역 바로 옆에 자전거 대여점이 있는데, 거기서 전기자전거를 빌릴 수 있다. 가격도 2시간에 몇 천원 정도로 비싸지 않고, 주인장 할아버지가 친절하게 지도를 건네면서 코스도 알려주신다.

날이 흐리지만, 시내를 빠져나오니 펼쳐지는 넓은 초원의 풍경에 넋을 잃고 구경하다 또 자전거 페달을 밟고.

유명한 나무도 보고. 옆에는 관광객들이 줄을 서서 기념사진을 찍으려고 난리였다. 어떤 나무인지 이름은 기억이 안 나지만... 그래도 멋있고.

가슴이 탁 트이는 풍경에 저절로 자전거를 세울 수밖에 없었다. 아마 버스를 타고 다니거나 차를 렌트했다면 그 감동이 조금 덜했을 것 같다. 바람을 가르면서 달리다가 갑자기 이런 풍경 속에 놓여지면... 뭐랄까. 갑자기 벌거벗은 것 같은 자유로움이 내 몸을 온통 감싸는 기분이 든다.

보잘것 없어보여도 나름 모터 성능이 좋아서 별로 힘들지가 않다.

그렇게 신나게 페달을 밟는다.

유명한 나무 (2) 도 만나고,

유명한 나무 (3) 도 만난다. 이 앞에서 웨딩 스냅을 찍고 있는 커플도 보았는데 이렇게 행복할 때 그런 커플을 마주하면 축하한다고 소리치고 싶은 이상한 오지랖을 꾹꾹 눌러 담는게 곤욕이다.

다시 비에이 시내로 돌아와서 자전거 반납 시간이 좀 남았길래 어느 신사에 들렀다.

자전거를 반납하고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잠깐 땀 식히러 커피도 한 잔 하고.

비에이 역으로 돌아가 아주 특별한 열차를 기다린다.

바로 라벤더가 피는 철에만 한정으로 운행하는 노롯코 열차. 비에이와 후라노를 잇는 관광열차인데 이렇게 객차 양 옆이 아예 창문도 없이 뻥 뚤려있고 좌석 방향도 기차 밖을 정자세로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운행하는 기간이더라도 열차편이 그렇게 자주 있지 않아서 시간을 잘 맞춰야 하는데 운이 좋게 타이밍 맞춰 탈 수 있었다.

느릿느릿하게, 덜컹대는 소리를 내며 달리는 열차에서 가만히 바깥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보면 어느새 후라노의 라벤더밭 역에 도착한다.

열차를 떠나보내고 나서 아마 이 지역에서 제일 유명한 곳인 토미타 팜으로 간다.

라벤더 아이스크림부터 하나 물고서 구경을 시작한다. 

아직 시기가 6월 말이라서 라벤더가 만개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아예 보랏빛을 보기 힘든 건 아니었다. 꽃도 그렇게 많이 활짝 피어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히 예쁘다.

라벤더 향도 가만히 코를 킁킁 하다보면 살살 느껴진다.

일본에서는 어딘가 관광지를 가면 그 곳을 대표하는 색깔로 온갖 물건, 건물, 음식을 뒤덮는 게 참 재밌으면서도 대단한 것 같다. 보라색 물감을 뒤집어쓴 것 같은 스쿠터와 우체통이 참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싶으면서도... 이런 사소한 것들이 모여 그 곳에 대한 이미지를 강하게 만들어내는 것 같아서 대단하기도 하다. 참 이런 디테일을 너무 잘 챙기는 나라같다.

토미타 팜에서 후라노역까지는 거리가 꽤 있지만 걸어서 돌아갔다. 여유롭게 동네 구경도 할 겸.

관광지를 조금만 벗어나도 인적 자체를 찾기가 힘든 작은 시골마을. 큰 도시로 젊은 사람과 자본과 인프라가 갈수록 몰려드는 것은 비단 우리나라의 일만은 아닐 것이다. 언젠가 라벤더가 만개하는 날 다시 찾을 때까지 무사히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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