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에 처음으로 일본 여행을 간 이후로 여행지로서의 일본이 너무 마음에 들어 매년 자주 가고있다. 보통 일본 중 많이 여행을 가는 곳이 오사카, 후쿠오카, 도쿄일 것이고 나도 그 도시들을 중심으로만 여행을 가 보았었다. 그리고 아마 그 다음으로 많이 가는 곳이 삿포로나 오키나와일 것이다. 삿포로도 언젠가는 꼭 가 보고 싶었는데 이번에 기회가 되어서 일주일동안 홋카이도로 여행을 가게 되었다.

홋카이도는 보통 눈이 부실듯한 설경을 보러 가는 겨울 여행지의 이미지가 크지만 여름의 홋카이도도 그에 못지 않게 매력적이라고 한다. 특히나 위의 언급한 도시들이 웬만해선 한국보다 위도가 훨씬 낮고 여름에 습도도 높은 편이라 무더운 날씨에 여행하기 힘든 곳이 많은데, 홋카이도는 북한보다도 높은 위도에 위치해 있고 습하지도 않아서 여름에 여행하기 비교적 쾌적한 편이라고 한다. 특히 넓게 펼쳐진 라벤더밭과 초원이 아주 매력적이라는 평.

다만 삿포로와 그 주변 지역인 오타루, 후라노, 비에이 등만 돌아보기에는 일주일이라는 기간이 조금 길 것 같아서 하코다테라는 홋카이도 남부의 도시를 먼저 갔다가 삿포로 쪽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하코다테에는 직항편이 없어서 먼저 삿포로 신치토세 공항으로 간 다음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하코다테로 가기로 했다. 외국인을 대상으로 전일본공수에서 국내선 비행기를 10만원에 팔고 있어 가격도 그리 비싸지 않고, 무엇보다 일본에서 국내선 비행기를 한 번도 타 본 적이 없어서 경험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기무라 타쿠야가 나온 2003년 드라마 '굿 럭!!' 을 얼마 전에 재밌게 봤던지라 전일본공수 비행기를 타 보고 싶었는데... 사실 국내선 중에서도 마이너 노선이고 비행시간도 고작해야 35분 짜리라 별 서비스는 없었다. 하지만 난생 처음 타 보는 2X2 배열 봄바르디어 터보프롭 비행기가 너무 신기해서 재미있었다. 자리도 앞쪽으로 잡은 탓에 프로펠러도 너무 잘 보이고... 착륙할 때 프로펠러가 돌아가는 모습과 창 밖의 소박한 도시와 바다의 모습이 너무 잘 어울려서 여행을 시작하는 설렘이 배가 되었다.

잘 보면 수하물 찾는 곳의 편명 안내판이 디지털이 아니라 플립식으로 되어있다. 감성 보소...

공항버스를 타고 해안가를 지나 시내로 들어간다. 아침 일찍 출발했는데 벌써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려고 한다.

호텔에 짐을 풀고 하코다테 역 근처에 위치한 다이몬 요코쵸에 가서 첫 끼니 겸 술을 먹는다. 작은 이자카야들이 모여있는 골목인데 여기저기 문을 활짝 열어놓고 다찌석에 둘러앉아 주인장과 얘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도 길거리에 펼쳐놓은 테이블에 앉아 맥주와 니혼슈를 먹는다. 정신없이 먹느라 빈 그릇만 찍어버렸다. 맛이 막 그렇게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런 곳은 원래 분위기를 보고 가는 곳 아니겠는가.

다음 날 아침에는 하코다테 시내 구경을 나간다. 일본 어디를 가나 볼 수 있는 야마토운수라는 택배회사의 마크는 볼 때마다 너무 귀엽다.

오징어가 유명한 하코다테. 이것 말고도 하코다테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귀여운 디자인의 맨홀뚜껑을 여러 가지 발견할 수 있다.

'붉은 벽돌 창고'라는 뜻의 아카렌가 창고군이 하코다테에도 있다. 1887년 무렵 지어져 무역 활동에 활용되는 창고로 사용되었지만 현재는 내부를 모두 리모델링하고 여러 기념품 숍과 음식점 등등이 들어와 있는 쇼핑몰로 변모했다.

푸른 바다 앞에 새빨간 창고 건물의 색이 대비되어서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하코다테 근처에만 있다는 패스트푸드 체인점인 럭키삐에로. 

유명한 차이니스 치킨버거와 밀크셰이크를 시켰다. 요즘 한국에서 햄버거 하나 시키면 양상추를 거의 구경도 못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큼지막한 양상추를 자르지도 않고 그대로 들어가 있는 것이 흡족하다. 패티도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둥그렇고 넓은 한 장의 패티가 아니라 여러 개의 큼직한 다리살 조각을 그대로 넣어주는 식이다. 맛도 괜찮고 식감도 재미있었다.

내부 디자인도 정신없는 복고풍으로 되어 있다.

든든히 배를 채우고 본격적으로 시내 구경하러 산책길에 오른다.

하코다테에서 제일 유명한 사진 스팟 중 하나인 하치만자카 언덕 위. 경사로를 따라 쭉 뻗어있는 가로수와 그 너머에 보이는 바다의 모습이 신기하다. 생각해 보면 해변가 주변에서 이런 뷰를 보여줄 수 있는 곳이 흔치 않은 것 같다.

보통은 하치만자카에서 사진을 찍고 내려가서 다른 곳을 많이들 돌아다니겠지만 나는 그냥 언덕 위를 가로지르는 길을 쭉 따라 걸어보기로 했다. 월요일이라서 그런건지 사람이 없어도 정말 없고 한적하기 그지없다.

아직 쓰이는 것일까.

가다가 메론빵 안에 아이스크림을 넣어주는 가게를 발견했다. 까마귀를 조심하라는 안내판이 귀여운데 실제로 뭔가 먹을 것을 들고 있으면 까마귀한테 얻어맞고 강탈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현지인들은 걸어가면서 뭘 먹는 일을 최대한 삼간다고... 여담으로 이 가게의 이름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맛있는 아이스크림 메론빵 집'인데 그럼 첫 번째는 어디냐고 정말 물어보고 싶었지만 부끄러워서 참았다. 구글맵 리뷰에서 정답을 알 수 있었는데 첫 번째는 자기에게 이 음식을 알려준 스승의 가게라고 한다...

하코다테가 나름 홋카이도 최대의 항구도시이고 인구수 기준으로 세 번째로 큰 도시이지만, 주택가라고 해도 지나다니는 사람이 너무 없어 그냥 시골같은 느낌이다. 사실 이 하코다테 남쪽 반도 지역은 관광지로서의 역할이 크고 실제 도시 기능은 북쪽에 다 하고 있지만...

돌아다니다 보면 어쩜 그렇게 집 앞에 식물들을 잘 꾸며놨는지 놀라울 지경이다. 엄마가 좋아할 것 같다

칭명사라는 사찰을 지나면

반도의 서쪽 끝에는 여러 공동묘지가 모여 있는 지역들이 있다. 

고개를 돌려 바닷가쪽을 보면 말도 안 되는 해무가 보이는 장관이 펼쳐진다.

웬만해서 관광객들은 안 오는 이 공동묘지 지역에 온 이유는 바닷가가 보이는 이 찻집에 오기 위해서였다. 커피류는 없고 오로지 차만 파는 가게다. 해가 쨍쨍해서 지친 몸을 바다를 보며 마시는 차가운 말차 한 잔으로 달랜다. 너무 차분하고 조용한 분위기가 참 좋았다.

하코다테에서 유명한 시오라멘 한 그릇. 이 곳이 그렇게 맛있는 곳이 아니어서 그런지 뭔지는 몰라도 내 입맛에 그렇게 잘 맞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다 비웠다.

저녁에는 유명한 하코다테의 야경을 보러 하코다테 로프웨이로 간다. 이 곳에서 하코다테를 내려다 보면 중간이 바다로 오목하게 파여있는 형태라서 특이한 뷰를 자아낸다.

어디갔나 했던 하코다테의 관광객이 여기 다 있었다. 올라가자마자 왁자지껄하게 여기저기서 들리는 영어와 일본어 중국어... 한국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재빠르게 앞자리 빈 틈을 선점하고 하염없이 기다린다. 한 시간쯤 기다렸을까, 점점 어둑어둑해지는 하늘과 하나둘씩 켜지는 불빛에 마음이 설렌다.

일몰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은 점점 많아지고 바람은 차가워져서 완전히 깜깜해질 때까지는 기다리지 못 했다. 그래도 너무 예쁜 풍경이었다. 일본의 3대 야경이라고들 하던데 조금 더 어둑해지고 불이 더 많이 켜졌으면 그야말로 장관이었을 것 같다.

하루종일 돌아다니느라 지친 몸을 달래는 데 최고는 역시 이자카야에서 마시는 생맥주. 야키토리와 쟝기라는 음식도 시켰다. 쟝기는 홋카이도 지역에만 있는 음식인데, 가라아게 같은 느낌이지만 조금 더 양념이 세고 뭐랄까, 짜파게티 범벅같은 맛이 섞여있다. 갓 나와 따끈하고 맛도 짭짤하니 맥주가 계속 들어갔다. 지금도 생각나는 그 맛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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