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일정은 보홀 육상투어였다. 이 투어는 첫 날 저녁에 반딧불 투어를 진행해 주었던 그 가이드님한테 예약을 했다. 4인 2500페소. 아침 9시에 시작해서 저녁 즈음에야 끝나는 일정인데 이 가격인게 진짜 말이 안 된다.

처음으로 간 곳은 각종 열대지방 동물들이 사는 동물원 같은 곳인데 시설은 동물원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민망할 만큼 좀 열악하다

손을 대기만 해도 파상풍이 걸릴 것 같은 낡은 케이지 안에 각종 새 같은 동물들이 있고 나비 농장같은 곳도 있었다. 악어랑 뱀도 있다. 뱀은 직접 만져볼 수도 있었는데 난 굳이 그러진 않았다. 살면서 뱀 만져본 일이 없다

이런 곳도 내 취향은 아니다. 돌아다니다 보면 뭔가 마음만 아프다

다음으로는 엄청나게 높게 자란 나무가 빼곡한 숲 같은 곳을 갔다. 따로 뭔가 관광지화 되어있는 곳은 아니고 그냥 도로를 따라가다 멈춰서서 사진을 찍는 포토 스팟같은 곳인 듯

진짜 일조량의 힘인지 엄청나게 울창하고 좋긴 하다

그 다음으로는 짚라인을 타러 갔나? 따로 사진이 없어서 순서는 기억이 안 나는데 짚라인은 진짜 재밌다. 고소공포증 없으신 분들은 무조건 타 보시길. 그리고 ATV는 코스에서 뺐다.

다음으로는 안경원숭이를 보러 갔다. 좁은 길을 따라 사람들이 끝없이 꼬리를 물며 이동한다

신기하기는 하나 나는 역시 큰 감흥은 없다. 그냥 손바닥보다도 작은 생명체가 지근거리에서 하루에 수천 장의 사진을 찍히는 모습이 먼저 보인다. 이런 곳에 와서 느끼는 감정이랑 어제 마사지샵에서 상전 대접을 받으며 느끼는 감정이랑 뭔가 비슷한 결이다

다음은 보홀에서 거의 제일 유명하다시피 한 초콜릿 힐이다

이런 계단을 따라 주욱 올라가야 한다.

암암

멋있다. 

이렇게 투어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기 전에 쇼핑몰에 잠깐 들러서 엄마가 회사에다 나눠줄 건망고 같은 기념품을 좀 사고 졸리비에서 치킨을 먹었다.

이 날은 차를 많이 타고 다녀서 가이드와도 얘기를 꽤 나눴다. 이틀이나 투어를 진행하고 그 새 낯이 익어서인지 투어를 마치고 내려줄 때 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참 착하고 성실한 분이다. 워낙 투어 가격도 쌌던 탓에 팁도 좀 두둑하게 챙겨드리고 인사를 나눴다.

숙소로 돌아와서 엄마 아빠는 또 인피니티 풀에 가시고 나는 동생을 데리고 나와서 툭툭이를 타고 석양을 보러 나갔다.

여기 안 왔다면 정말 두고두고 후회했을 듯. 보홀 와서 갔던 곳 중 거의 가장 마음에 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 너무 좋았다 그냥.

마지막 저녁식사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킹크랩 집으로 갔다. 여기는 카톡 플친에서 찾아서 예약했는데 숙소랑 식당 간에 노란 버스로 픽업까지 해 준다. 역시나 부모님이 좋아하신다

현금 결제만 돼서 좀 괘씸하긴 했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이렇게 여행은 끝이 났다. 음... 전체적으로 가족들이 다 만족스러워하고 특히 숙소(아모리타 리조트)를 부모님이 정말 마음에 들어하셔서 기분이 좋았다. 분명 싼 가격은 아니다. 3박 트윈룸 2실에 160만원 정도였으니까... 근데 안 가보고 후기만 보고 말하는 거긴 하지만 한국인에게 유명한 '그 리조트' 처럼 한국인지 필리핀인지 모를만큼 한국말이 들리고 북적대는 곳보다는 훨씬 만족스럽지 않나 싶다. 거기와 가격 차이가 두세배 나는 것도 아니고 1박당 몇 만원 차이인데 소중한 여행이라면 충분히 더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강추! 크기도 큰 편이 아니라 리셉션을 가든 식당에 가든 인피니티풀에 가든 금방 닿고 직원들도 어찌나 친절하던지... 

계속 무슨 일이 벌어지지 않을지 걱정하고, 다음 스케줄은 뭐고 언제 어떻게 출발해야 하는지 되뇌이고, 가족들이 뭐 필요하지는 않아하는지 눈치를 살피고, 어디를 갈 땐 지도와 앞만 보며 이끄느라 피곤했지만... 무뚝뚝한 장남이 그래도 이번 기회에 가족들과 더 많은 얘기를 나누고 가족들에게 행복을 선사할 수 있어서 뿌듯했던 여행이었다. 돈 쓰고 여행 잘 짜고 하는 것도 좋지만 마음을 더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여행 > 2023 필리핀 보홀'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311 필리핀 보홀 (1)  (1) 2024.01.29

2023년에 나는 한국 나이로 29살이 되었고, 부모님이 결혼하신 지 30주년이 되었다. 그동안은 내가 엄마를 모시고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간 적이 한 번 있고, 부모님이 패키지로 동남아를 몇 번 다녀오시고, 동생과 엄마도 해외여행을 간 적은 있지만 가족 전체가 해외여행을 가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30주년에 맞춰 이번에는 가족 모두 함께 해외여행을 가 보자는 의지를 부모님이 강하게 가지고 계셔서 결혼기념일 주간에 맞춰 필리핀 보홀에 가게 되었다.

패키지여행은 애초에 내가 싫어하기도 하고, 패키지는 나중에라도 부모님이 또 따로 예약해서 갈 수 있기에 자유여행의 맛을 좀 보여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비행기 예매부터 숙소를 찾아보고 예약하기, 투어 비교하고 예약하기, 동선 짜기, 맛집 찾기, 필리핀 입국 절차 챙기기, 환전 등등 모든 사전 과제를 내가 챙겨야 했다. 동생과 일을 분담할 수도 있었지만 누구와 여행을 가든 차라리 내가 귀찮더라도 내가 다 챙기는 게 마음이 편한 성격이라... 현지에 가서도 내가 계속 정보를 찾아보고 길을 찾고 모시고 다녀야 하는 입장이었기에 사실 나에게는 여행하는 느낌 반 가이드로 고용된 느낌 반 정도였다. 아니 그냥 가이드였나 싶기도 하다.. 그래도 첫 가족여행인데 이정도야 뭐. 부모님이 잘 키워주신 덕분에 혼자 돈 잘 벌어서 잘 놀러다니고 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이렇게 작은 국제공항은 되게 오랜만에 와 본다. 아주 예전에 갔던 오슬로 근처 산데피오르 공항이 생각났다. 공항에서 오슬로 시내까지 야간 밴만 70만원이 나왔던 추억... 거기가 처음 발을 디뎠던 국제공항이었는데 거기도 참 작았었다

클룩에서 미리 예약해 둔 밴을 타고 숙소로 갔다. 뭐 툭툭이나 택시를 타고 갈 수도 있는데 막 도착해서 현금도 없을거고 가족여행인데 일행을 주렁주렁 달고서 여행 시작하자마자 흥정하고 그러기도 싫어서 그냥 돈 좀 더 주고 픽업을 예약했다. 결과적으론 후회하지 않았다

숙소를 어디로 할지 고민을 좀 많이 했었는데, 한국인들이 많이 가는 ㅎㄴ리조트가 있고 다른 몇몇 리조트도 후보군에 있었다. 블로그 글도 유튜브 영상도 엄청 찾아보고 고민한 결과 돈 좀 더 쓰더라도 좋은 곳에 모시는 게 맞다고 생각해서 알로나 비치 끝쪽에 붙어있는 아모리타 리조트를 예약했다.

아모리타 리조트 내부는 이렇게 숲 속을 테마로 한 것 같이 잘 꾸며져 있다. 곳곳에 독채 숙소도 있고, 여러 방이 모여있는 빌라 건물도 있다. 독채는 너무 비싸서 빌라로 2실을 예약했는데 엄마가 처음에 리셉션에서 우리 방으로 가는 길에 이런 숲같은 길을 지나면서 참 좋아하셨다. 마음이 뿌듯해지는 순간!

그리고 예약을 할 때 숙소에 전하는 메시지에다가 "이번 여행은 우리 부모님의 결혼 30주년을 기념하는 여행이니 방에 뭔가 데코레이션이 되어있으면 정말 기쁠 것 같다, 가능하다면 부탁드린다" 라고 써 놓았었다. 블로그를 보니 그런 사연을 남겨놓으면 뭔가 해 놓는 경우도 많아보이길래... 그래서 뭐 침대에 장미 꽃잎을 좀 뿌려놓는다든가, 수건으로 원앙을 접어놓는다든가 그런 걸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너무 깜찍한 케이크와 풍선 꽃다발이! 게다가 짧은 손편지까지 있었다. 식상하지도 않고 정성이 가득 들어간 것이 잘 느껴지는 이벤트였다. 좋아하시는 부모님을 보면서 또 다시 뿌듯.

조금 쉬고 근처 식당에 가서 밥을 먹었다. 나는 시내 은행에 가서 환전을 해 온 다음 낮잠을 잤고 부모님과 동생은 숙소 안에 있는 인피니티풀에 가서 수영을 했다. 수영 좋아하는 아빠가 너무 만족하셨다.

저녁에는 미리 예약해둔 반딧불 투어를 갔다. 한국인이 보홀을 하도 많이 가다보니 현지인 가이드와 카톡으로 예약을 잡을 수 있는데 필리핀 커뮤니티나 블로그를 보면 그 중에도 신뢰도가 좀 있는 가이드가 몇 있는 것 같았다. 그런 가이드들은 한두달 치 예약이 잡혀있다고 그러던데 어떻게 운 좋게 투어를 잘 잡았다.

본인 소유 승용차를 가져와서 반딧불 투어 장소까지 데려다주고 기다려주고 다시 숙소로 데려다주고 그러는 건데 한국인이 운영하는 투어 업체보다는 확실히 가격이 저렴했다. 4명이서 1800페소에 반딧불 보트 승선권은 별도. 차를 타고 한시간 반? 정도는 가야 하는 거리였는데 왕복 서너시간 차를 타는데 이 정도면 개꿀이다. 필리핀이라고 기름값이 특별히 싸 보이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반딧불을 살면서 본 적이 있었나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이렇게 많은 반딧불을 본 적은 확실히 없다. 너무 신기하고 예뻤다!

첫 날은 이렇게 일정 끝. 고된 하루였다. 투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엄마가 망고를 너무 드시고 싶다고 하셨다. 그래서 숙소 근처 과일을 파는 가게에 가이드님이 잠깐 차를 세워주셨다. 가이드님이 직접 꼼꼼하게 냄새도 맡고 상태를 확인하며 좋은 걸로 골라주셨는데 숙소에 가져와서 까 먹으니 진짜 달고 맛있었다. 가게에서 산 망고를 몇 개 가이드님한테도 드렸다. 가져가서 가족끼리 드시라고... 물론 팁도 따로 챙겨드렸다

다음날의 주요 일정은 스노클링과 돌핀 와칭, 섬 투어가 포함된 호핑 투어였다. 호핑 투어도 다른 현지인 가이드와 미리 카톡으로 예약을 했다. 4인 프라이빗 보트가 3000페소, 발리카삭 티켓 4인 1200페소, 버진 아일랜드 티켓 4인 400페소 총 4600페소였다. 여기에 고프로 렌트 1000페소에 스노클링 장비 대여료 별도. 후기들과 비교해 보니 더 싸게 한 분들도 있었지만 이 정도면 만족이다

아침 6시 반에 출발하는 투어라 조식도 못 먹고 서둘러 준비해서 나왔다. 이른 시간임에도 벌써 대낮같이 밝고 더웠다

이렇게 날개가 달린 것 같은 배를 타고 간다.

아침 일찍 나온 이유는 바로 돌고래를 보기 위해서. 이 시간에 돌고래가 활발하게 활동한다고 한다. 근데 잘 알아보지 못 해서 이런 분위기일줄 생각을 못 했는데, 우리 말고도 호핑 투어를 하는 사람이 워낙 많다보니 어디서 돌고래가 나타났다고 하면 주변의 수십 대의 보트들이 굉음같은 엔진 소리를 내면서 돌고래 쪽으로 질주를 한다. 뭐랄까... 돌고래를 보긴 봤지만 인간으로서 못 할 짓을 한 것 같아서 기분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다음 코스는 발리카삭 섬에서의 스노클링이었다

고프로 대여+고프로로 찍어주는 가이드까지 1000페소를 냈다. 그러면 이렇게 바다거북이와 같이 사진을 잘 찍어준다. 아 그런데 여기도 사람이 무지하게 많다. 대충 스무 대는 되어보이는 배가 따닥따닥 붙어서 거기에서 내린 수십명의 사람들과 함께 좁은 구역에서 스노클링을 한다. 조금 자맥질을 하다 보면 다른 사람 머리를 발로 찰 때도 있고... 뭔가 평화롭기보다는 정신이 없었던. 하지만 그래도 인생 첫 스노클링이었는데 자유롭게 다니는 느낌도 좋고 물고기 구경도 재밌었다. 이건 집에서 열대어를 키우는 아빠가 너무 좋아하셨다.

수영을 초등학생 때 좀 배운 적이 있어서 몸이 기억하는지 구명조끼를 입으니까 꽤 빠른 속도로 수영을 하고 다녔다. 그러고선 괜한 자만심이 들었는지 "나 구명조끼 벗고 아래까지 들어가보고 싶다" 라고 가이드에게 말하고 구명조끼를 벗으니까 좀 괜찮다가 바로 호흡이 한 번 흐트러지니까 놀라서 꼴사납게 허우적대면서 어푸어푸를 시전해 버렸다... 그러고 나선 수영이나 다이빙을 제대로 배워보면 진짜 재밌겠다 싶어서 한국에 돌아와서 다이빙이나 수영 강습을 막 찾아보고 그랬었는데 다녀온 지 두 달이 지난 지금은 흥미가 다 식어버렸다. 그래도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꼭 배워보고는 싶다

다음 코스는 원래 버진 아일랜드에 가는 거였는데, 보트 기사가 버진 아일랜드에 배랑 사람이 너무 많아서 가도 엄청 북적이고 사진찍을 각도 잘 안 나오고 그럴 것이다, 대신 옆에 다른 섬이 있고 거기도 예쁜데 거기로 가는 건 어떻겠냐 해서 그러자고 했다.

모래도 깨끗하고 바다 색도 아름다웠지만 해초같은 것이 좀 많았다.

그래도 가족들은 만족하고 여기저기 앉아서 즐겁게 사진을 찍었다. 좋았으면 됐지! 사람도 많지 않아서 여유롭고 괜찮았다. 가이드분이 익살도 있고 사진이랑 동영상도 계속 찍어주시려고 해서 참 좋았다. 온갖 한국인 관광객을 상대하다 보니 동영상도 되게 릴스 찍는 것 마냥 특이하고 재밌게 찍고 한국말도 좀 하고 그래서 부모님도 좋아하셨다. 이 정도면 성공적인 투어였다. 또 다른 퀘스트 하나를 마쳤다...

투어를 마치고 좀 휴식을 한 다음 점심을 먹으러 리조트 내의 식당에 갔다. 식당도 따로 벽과 문이 없이 탁 트인 구조에 바로 앞에 바다가 펼쳐져 있어서 개방감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나는 무슨 필리핀의 족발같은 느낌이라는 음식을 시켰는데 음... 껍질이 좀 딱딱해서 내 입맛에 그리 맞지는 않았지만 다른 음식들은 모두 맛있는 편이었다. 쌀국수랑 또 다른 고기 메뉴랑 이것저것 시켰는데 당연히 리조트 내 식당이라 가격대는 약간 있었지만 그만큼 양도 많이 나오고 정말 배부르게 먹었다.

밥을 먹고 좀 쉬다 나와서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마사지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업체였는데 구글 지도에서 검색하고 바로 거기서 채팅이 가능했다. 인테리어도 너무 깔끔하고 뭐 한국에서 제작해 가져온 호호바 오일을 사용한다는데 남은 오일은 챙겨주니까 가져가서 쓰라고도 하고... 가격은 좀 됐지만 만족스러웠다.

근데 마사지를 시작하기 전에 발을 씻겨주는데, 우리 가족이 일렬로 쭉 앉아있고 각자 담당인 직원이 한 명씩 와서 발을 씻겨주기 전 우리를 직시하고 필리핀어로 뭐라뭐라 말을 하면서 손을 가져가 본인의 머리에 터치하는 뭐 그런 의식을 했다. 그냥 난 이런 상전 대접 받는게 뭔지 모르게 불편하다. 돈 몇만원 쓰는 게 뭐 대수라고... 마사지나 시원하게 잘 해주면 그걸로 장땡이다

마사지 받고 나와서 다운타운도 좀 돌아다녔다. 사실 너무 작아서 별로 볼 것도 없다

돌아오는 길에 미친 맛의 망고 아이스크림까지 먹으니까 고단한 하루 피로가 싹 풀린다

식당을 찾기가 귀찮아서 이 날 저녁도 리조트 식당에서 먹었다. 전부 한국인 입맛에 잘 맞고 진짜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이 때까지 행복하고 순탄하게 흘러갔던 우리 여행에 작은 소동이 생겼다. 아빠가 술을 좋아하시는 편이라 한국에서 올 때 그 작은 플라스틱 통 소주를 좀 챙겨오셨는데 이 날도 기분도 좋고 술이 좀 들어가다 보니 술버릇이 좀 나오셨다. 남에게 뭐 민폐를 끼치고 그런 건 아니지만 했던 말씀을 또 하신다거나 얼굴이 빨개져서 목소리가 약간 커진다거나 등등... 암튼 그래서 대화를 하다 보니까 서로 감정이 조금 올라왔다. 엄마도 그 동안 반주를 자주 드시는 아빠에 대한 걱정과 아쉬움이 섞여 이런저런 얘기를 하셨고 동생도 거들었는데 서로의 감정이 좀 올라오다보니 언성이 높아지는...

자취를 해서 나와 사는 나는 최대한 중간자적 입장에서 중재를 해 보려고 했으나 나도 결국 감정 컨트롤에 실패해 실수를 하게 되었다. 아빠는 자리를 비웠고 엄마와 동생, 내가 남아 셋이서 얘기를 나눴다. 우리가 내린 결론은 아빠도 외로웠을 수 있겠다는 거였다. 아빠와는 달리 술을 그렇게 즐기지 않는 나머지 셋은 아빠와 같이 술을 즐겨주는 일도 거의 없었고 언제나 술 그만 마시라며 타박만 하는 사람으로 비춰질 수 있겠다는 거였다. 그리고 대부분의 집이 그렇듯이 자식들이 아빠보다는 엄마와 더 친하고 대화를 많이 하는 것도 그렇고.

엄마에게는 자리를 떠버린 아빠를 찾아서 두 분이 얘기하시라고 하고 나는 동생과 리조트를 나와서 알로나 비치 술집에 가서 둘이 얘기를 나눴다. 사실 동생과 나도 그렇게 친한 편이 아니다.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지만 여기에서 풀 내용은 아닌 것 같고... 아무튼 동생과 그렇게 둘이 오래 얘기를 나눠 본 적이 성인이 되어서 처음이다 싶을 정도.

엄마도 아빠를 찾아 두 분이 얘기를 나누시고 감정을 푸셨다. 소동은 났었지만 결론적으로 그 날 다 서운했던 감정을 풀고 오히려 좋은 쪽으로 일이 흘러가서 다행이었다. 여행을 아무리 잘 짜고 가이드를 잘 하면 뭐 하나. 무뚝뚝한 장남인데 그러지 않기가 쉬운 일도 아니다. 이런 기회로 좀 더 좋은 아들이 되어야겠다는 마음을 먹는다

'여행 > 2023 필리핀 보홀'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311 필리핀 보홀 (2)  (1) 2024.01.29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