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로 3시간 반을 달려 도착한 삿포로.

첫 끼니로 먹은 것은 현지인들이 많이 찾는 회전초밥 집이었다. 네무로 하나마루라는 곳인데 삿포로 역 근처에 두 개가 있다. 하나는 삿포로 역사 쇼핑몰 안에 있는 지점인데 가자마자 어마어마하게 많은 대기줄에 기겁을 하며 빠져나왔다. 다른 하나는 삿포로 역에서 남쪽으로 조금 걸어 내려오면 있는 지점인데, 여기는 그나마 대기가 덜 했다. 대기를 걸어놓고 주변 상점들을 구경하다 보니 대기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이상하게 난 회전초밥집에 가면 맛난 생선 스시를 먹기보다는 유부초밥이나 고기를 올린 스시가 그렇게 땡긴다. 저 유부초밥은 이름부터가 특이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대충 '미친듯이 즙이 나오는 유부초밥' 약간 이런 느낌이었다. 너무 궁금해서 시켜봤는데 실제로 유부 반 물 반이었던 느낌이다. 아래는 웬 대하가 통째로 들어가 있는 충격적인 비주얼의 스시.. 꽤 맛있었다 가격도 나쁘지 않았고. 입맛이 그렇게 고급이 아니라서 이런 대중적인 곳에서도 난 충분히 만족을 느낀다. 결국 떠나기 전에 한번 더 찾았다는...

다음날은 기차를 타고 후라노와 비에이 지역으로 간다.

중간에 한 량짜리 귀여운 열차로 갈아탄다. 비에이 역의 역사 크기는 한국 사람들에게 알려진 그 명성에 비해서 꽤 작다. 한국인들은 대부분 버스투어를 이용하거나 차를 렌트해서 돌아다니거나 해서 아마 여기에 올 일은 별로 없을 것이다. 

놀랄만큼 사람을 찾아보기가 힘든 한적한 시골동네를 지나 그 유명한 비에이 맛집 준페이에 왔다. 아마 저 때 시간이 12시가 조금 안 되었을텐데, 생각과는 다르게 대기도 없었고 바로 자리에 앉아 주문을 할 수 있었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후라노와 비에이 지역을 어떻게 여행해야 하는지 고민하다가 버스 투어도 많이 알아봤는데, 그 투어들이 장점으로 내세우는 것 중 하나가 준페이에서 대기 없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예약도 해 준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시시하게 먹게 될 줄은 몰랐지만, 맛만큼은 전혀 시시하지 않았다. 게눈 감추듯 흡입했다.

홋카이도 여행 유튜브를 보다가 발견한 것은 비에이 주변을 자전거를 타고 돌아보는 자전거 투어였다. 비에이 역 바로 옆에 자전거 대여점이 있는데, 거기서 전기자전거를 빌릴 수 있다. 가격도 2시간에 몇 천원 정도로 비싸지 않고, 주인장 할아버지가 친절하게 지도를 건네면서 코스도 알려주신다.

날이 흐리지만, 시내를 빠져나오니 펼쳐지는 넓은 초원의 풍경에 넋을 잃고 구경하다 또 자전거 페달을 밟고.

유명한 나무도 보고. 옆에는 관광객들이 줄을 서서 기념사진을 찍으려고 난리였다. 어떤 나무인지 이름은 기억이 안 나지만... 그래도 멋있고.

가슴이 탁 트이는 풍경에 저절로 자전거를 세울 수밖에 없었다. 아마 버스를 타고 다니거나 차를 렌트했다면 그 감동이 조금 덜했을 것 같다. 바람을 가르면서 달리다가 갑자기 이런 풍경 속에 놓여지면... 뭐랄까. 갑자기 벌거벗은 것 같은 자유로움이 내 몸을 온통 감싸는 기분이 든다.

보잘것 없어보여도 나름 모터 성능이 좋아서 별로 힘들지가 않다.

그렇게 신나게 페달을 밟는다.

유명한 나무 (2) 도 만나고,

유명한 나무 (3) 도 만난다. 이 앞에서 웨딩 스냅을 찍고 있는 커플도 보았는데 이렇게 행복할 때 그런 커플을 마주하면 축하한다고 소리치고 싶은 이상한 오지랖을 꾹꾹 눌러 담는게 곤욕이다.

다시 비에이 시내로 돌아와서 자전거 반납 시간이 좀 남았길래 어느 신사에 들렀다.

자전거를 반납하고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잠깐 땀 식히러 커피도 한 잔 하고.

비에이 역으로 돌아가 아주 특별한 열차를 기다린다.

바로 라벤더가 피는 철에만 한정으로 운행하는 노롯코 열차. 비에이와 후라노를 잇는 관광열차인데 이렇게 객차 양 옆이 아예 창문도 없이 뻥 뚤려있고 좌석 방향도 기차 밖을 정자세로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운행하는 기간이더라도 열차편이 그렇게 자주 있지 않아서 시간을 잘 맞춰야 하는데 운이 좋게 타이밍 맞춰 탈 수 있었다.

느릿느릿하게, 덜컹대는 소리를 내며 달리는 열차에서 가만히 바깥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보면 어느새 후라노의 라벤더밭 역에 도착한다.

열차를 떠나보내고 나서 아마 이 지역에서 제일 유명한 곳인 토미타 팜으로 간다.

라벤더 아이스크림부터 하나 물고서 구경을 시작한다. 

아직 시기가 6월 말이라서 라벤더가 만개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아예 보랏빛을 보기 힘든 건 아니었다. 꽃도 그렇게 많이 활짝 피어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히 예쁘다.

라벤더 향도 가만히 코를 킁킁 하다보면 살살 느껴진다.

일본에서는 어딘가 관광지를 가면 그 곳을 대표하는 색깔로 온갖 물건, 건물, 음식을 뒤덮는 게 참 재밌으면서도 대단한 것 같다. 보라색 물감을 뒤집어쓴 것 같은 스쿠터와 우체통이 참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싶으면서도... 이런 사소한 것들이 모여 그 곳에 대한 이미지를 강하게 만들어내는 것 같아서 대단하기도 하다. 참 이런 디테일을 너무 잘 챙기는 나라같다.

토미타 팜에서 후라노역까지는 거리가 꽤 있지만 걸어서 돌아갔다. 여유롭게 동네 구경도 할 겸.

관광지를 조금만 벗어나도 인적 자체를 찾기가 힘든 작은 시골마을. 큰 도시로 젊은 사람과 자본과 인프라가 갈수록 몰려드는 것은 비단 우리나라의 일만은 아닐 것이다. 언젠가 라벤더가 만개하는 날 다시 찾을 때까지 무사히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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