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에 입학한 것이 2013년이고 같은 학교에서 석사를 끝낸 지금이 2020년 6월이니, 학부 입학 후로 무려 7년 반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자주 가던 흡연구역에서 마지막으로 담배를 태우고, 그간 항상 눈에 익어 마치 우리 집처럼 익숙하게 느껴졌던 풍경을 새삼 새로이 바라보며 무언가 먹먹하면서도 시원한 모순적인 감정이 들었다. 아직 미필이지만 이러한 감정은 말년병장이 전역하는 길에 느껴지는 것과 같다는 군필자 연구실 친구의 인증을 받았다. 아아, 이런 느낌이었구나. 내가 몸 담고 있던 이 곳을 사랑하든 그렇지 않든, 몇 달 간을 벗어나지 못하든 혹은 잠시 떠나있든간에 언제나 '소속'이라는 것으로 날 안심시켜 주던 그 곳을 떠나는 느낌. 마치 하룻밤 새 망망대해에 버려진 듯한 기분이다. 난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간간히 다른 호칭으로 불린 적도 있었지만 나의 본분은 십수년 간 언제나 학생이었다. 이제 인생에서 더 이상 학생이라 불릴 일은 없으니('그 길'만은 결단코 없을 것이다) 비로소 내 인생의 한 막이 내렸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술도 마음대로 먹지 못하는 미성년자의 신분으로 학교에 입학해 곧 20대 후반을 바라보는 지금까지 정말이지 별별 일이 많았다. 행복한 일, 슬픈 일, 괴로운 일, 그리고 수많은 인연들과 경험들을 만나며 7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특히 석사 과정을 밟으며 스스로 여러 방면에서 많이 성장했음을 느꼈다. 내가 연구와 잘 맞는지, 연구를 좋아하고 끈기있게 잘할 수 있는지 그런 것들은 차치하더라도 말이다. 굳이 말하자면 석사 과정은 스트레스의 연속이었다. 좋아하는 것은 끝까지 물고 늘어지고 사소한 것 하나까지 알아야 직성이 풀리고 이것저것 자료를 찾고 읽느라 밤을 샜던 적도 있는 나지만 말이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대학원생이 이 세상에 어디 있겠냐만은. 원인은 잘 모르겠다. 연구 분야에 그다지 흥미를 못 느꼈던지, 혹은 학문적인 연구와 나는 맞지 않았던 것인지, 아니면 다른 어떤 이유인지. 사실 학문적 연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일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맡게 되었고 그것에 대한 사명감에 그 일을 하는 데 너무 많은 힘을 썼던 탓도 있다. 그러나 이제 와서 석사생으로서 스스로 만족할 만큼 연구를 열심히 하지 못했다는 사실 앞에 그런 핑계를 대고 싶지는 않다. 또 대학원생의 삶을 직접 겪기 전에 상상한 대학원생의 모습이 애초에 틀려서 그런 것일수도 있겠다 싶다. 다만 내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방법, 어렴풋한 아이디어를 구체화시키는 방법, 실제적인 구현을 위한 설계 방법 등은 학부 시절의 내가 가진 실력과 비교해 완전히 다른 수준이 되었다. 만약 기업에서 학사 대신 석사를 뽑는다면 이러한 능력을 보고 뽑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은 나를 보고 아무 걱정 없이 태평하게 사는 것 같아 참 부럽다고 말하지만 뒤돌아보면 나는 뭐 하나를 하든간에 생각보다 스스로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는 것 같다. 그것도 깊이 생각해봐야 별로 변하지 않는, 혹은 겁이 나 변화를 줄 깡도 없는 그런 것들을 위해 말이다. 많이 지치고 힘들어서, 그래서 잠시 쉬려고 한다. 사실은 쉬러 간다고 말 하고선 망망대해에서 얼른 벗어나 직장을 잡기 위해 나름의 준비를 하러 간다. 그래도 그 곳이 서울이 아니라 바다가 보이는 곳이라면 좋을 것 같아 내일부터 부산과 제주도에서 한 달 여의 시간을 보낼 예정이다. 막이 끝났다면 응당 인터미션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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