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파리를 떠나는 날 당일에 오베르 쉬르 우아즈(Auvers-Sur-Oise)를 가야 했다. 파리에서 바르셀로나로 가는 버스는 밤 9시 30분에 떠나는 야간버스였기 때문에 시간은 충분했다.

기차는 북역에서 타야 했다. 북쪽으로 가는 기차를 한번 타고 다시 더 작은 기차로 갈아타야 했는데, 첫 번째 탄 기차는 외곽 사람들이 통근 목적으로 좀 타고 다니는 것 같았지만 두 번째 작은 기차는 정말이지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월요일 아침이라 그럴 수도 있지만 노선 자체가 사람이 없는 한적한 마을만 지나다녔다. 칸 하나를 전세내고 창 밖을 바라보면서 천천히 오베르 쉬르 우아즈로 갔다.

관광과는 거리가 먼, 이런 소박하고 딱히 멋 없는 풍경들이 사랑스러울 때가 있다.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 도착했더니 역시나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지도라도 얻을 수 있을까 싶어 관광 안내 센터를 찾아갔더니 하필 오늘 문도 안 열었다. 문을 연 가게들도 보이지 않았고 사람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아마 현지 주민들은 거의 한 명도 못 본 것 같고, 관광객들만 이따금씩 눈에 띌 뿐이었다. 월요일 아침이라 그런거라 위안삼고 마을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오베르 쉬르 우아즈는 고흐가 살기 직전에 머물며 수 많은 걸작을 그려낸 마을이다. 고흐는 이 마을에 있는 많은 건물들도 그려서 작품으로 남겼는데, 이제는 이렇게 건물 앞에 고흐가 그린 그림을 세워 두었다. 건물과 그림을 가만히 번갈아 보고 있자니, 어떻게 이런 건물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동시에 그의 불안했던 정서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햇살이 정말로 따사로웠다. 오늘 파리를 떠나는 날이었기에 숙소의 짐을 다 정리하고 나왔는데, 어제 빨아놓은 수건을 침대에 걸어 하룻밤 사이 말렸는데도 마르지 않고 그대로였다. 그 수건을 비닐봉지에 싸서 가방에 넣고 다니면 다시 열었을 때 기분이 심히 불쾌해지는 썩은내가 날 것이 분명하기에, 그 수건을 여기 올 때 들고 나왔었다. 이 교회 앞의 벤치에서 좀 쉴 겸 수건을 벤치에 펴놓고 그늘에서 한 시간쯤 여유부리고 나니 수건이 빠싹 말라 있었다. 뿌듯했다.

저 그림 표지판에 써 있는 번호가 마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작품 번호같긴 한데, 지도도 없고 힘도 빠지고 그래서 고흐가 권총 자살로 생을 끝낸 들판과 그의 묘지로 가 보기로 했다.

숲길을 5분정도 걷자 나무가 사라지고 드넓은 들판과 하늘이 나타났다. 한 쪽에는 농기구가 널려있고 거대한 스프링클러가 내 키의 몇 배만한 높이로 물을 뿌려대고 있었다. 위대한 화가가 그의 생의 마지막 순간에 서 있었던 이 들판은 이제 그냥 어디에나 있는 농지나 다름없었다. 서울 촌놈이라 정확히 모르겠지만 아마 밀밭이 아닐까 싶었다. 들판의 초입에 서 있었던 저 그림 표지판 하나만이, 이 들판이 한 때는 고흐가 즐겨 찾던 곳이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들판을 찬찬히 둘러보며, 대체 고흐가 자살할 때에 서 있었던 곳은 어디일까 그려보며, 혼자만의 시계를 돌려 고흐와 같이 있는 것 같은 묘한 감정을 느끼려고 했다.

옆에는 공동묘지가 있고, 이 곳에 고흐와 그의 동생도 안장되어 있다. 보다시피 다른 묘의 비석들은 내 가슴팍 정도도 넘을 만큼 커다란 것들이었다. 하지만 고흐와 그의 동생의 묘는 특이하리만치 소박했다. 나는 여기에 오기 전 미리 알았으니 망정이지, 만약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그냥 못 본 채 지나가도 모를만큼 작았다. 무언가 울타리가 쳐져있지도 않고, 양 옆의 다른 묘비 사이에 작게 자리잡고 있다. 고흐에 대해 많이 아는 것은 아니지만, 이 마을에 들른 오늘만큼은 고흐에 대한 것들을 보고 느꼈기 때문에 묘지를 보고는 괜시리 울적한 마음이 들었다. 잠시 묵념을 하고 돌아갔다.

그렇게 다시 마을로 내려와 파리로 돌아가는 기차를 탔다.

고흐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꼭 들러야 할 곳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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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4 144.76€ (방값 137€)
7/15 13.1€
7/16 27.3€
7/17 31.04

7/18 16.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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