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내 인생이 어떻게 흘러왔는지를 가만히 생각해 본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중요한 기로에 여러 갈림길이 있었다. 그때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 영향을 주고받고 여러 선택지 중 무언가를 고르며 살아왔다. 그러한 선택들 중 당시에는 큰일처럼 느껴졌던 것이 지금 내 인생에 별 영향을 끼치지 않은 선택도 있고, 반대로 그때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의 내 인생을 만드는 데 크게 일조한 선택도 있다.

그런 수많은 선택의 순간들 중 가장 중요한 분기점을 만든 것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의외로 생각나는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다녔던 학원에서 보았던 학년말 레벨테스트였다. 그리고 이제 성함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당당한 풍채와 인자함을 자랑했던 그 학원의 한 수학 선생님도 함께 생각이 난다.

엄마가 책 읽는 습관을 잘 들여주셔서 그런지 초등학생 때부터 공부는 곧잘 했었다. 학원에서도 영어 수학 모두 가장 높은 반에 일 년 동안 꾸준히 있었던 몇 안 되는 학생이었다. 중학교 진학을 앞둘 무렵에 중등부에서 어떤 반에 갈지 결정하게 되는 레벨테스트를 보았는데, 그때만 해도 나는 친척 누나가 준비한다는 외고에 가고 싶어서 외고반을 희망하고 시험을 치게 되었다. 외고가 뭔지도 잘 모르고, 장래에 되고 싶은 것도 명확히 없던 시절이었다. 그냥, 좋다니까. 아마 좋은 고등학교에 가면 엄마 아빠가 좋아하실 것 같아서.

레벨테스트를 보고 나서 며칠 후에 중등부 수학 담당인 선생님한테서 집으로 전화가 왔다. 요지는 이랬다. 영어와 수학 둘 다 잘 봐서 외고반에 들어가는 것은 무리가 없는데, 수학을 그중에서도 잘 봐서 외고반에 보내기에는 조금 아까운 점수 같다, 과학고반을 염두에 두고 다시 한번 시험을 치르는 것은 어떻겠냐는 말이었다. 그전까지는 과학고라는 것에 대해서 전혀 들어본 바가 없었지만, 그 선생님 말씀으로는 외고보다는 아무래도 과학고가 입시 난이도도 더 높지만 그만큼 입학한다면 더 좋은 대학에 들어갈 확률도 더 높으며 학비도 공립고와 같아 부담이 없고 어쩌구저쩌구...

아무튼 그래서 과학고반 시험을 치러 들어가게 되었다. 그 후에는? 나름 열심히 해서 운이 좋게도 서울의 한 과학고에 입학했고, 거기서는 힘들었지만 어찌어찌 해서 서울의 한 대학교의 컴퓨터공학과에 들어갔다. 컴퓨터가 좋아서도 있었지만 다른 과학 분야가 별로 하기 싫어서도 컸다. 그러고 나서 자연스럽게 개발자가 되었고, 지금까지 개발자로 살면서 컴퓨터로 밥 벌어먹고 사는 사람이 되었다.

아마도 레벨테스트를 보고 난 후 결과를 취합하고 어떤 반에 보낼지 결정하는 분이 그 수학선생님이 아니라 다른 분이었다면? 그래서 그냥 '외고반에 가기엔 수학 점수가 조금 아깝긴 하지만 그래도 본인이 희망한다니까 뭐'라고 생각하며 나를 외고반에 보냈으면 어떻게 됐을까? 같은 상상을 가끔 해 본다. 물론 그래도 개발자가 됐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아닐 확률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아마 운이 좋다면 외고에 가서 경제학과 정도를 희망하고 현역으로 군대를 갔다 오고 대학을 나와선 증권사에 다녔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또 지금까지 학창 시절에 만났던 친구들과 선생님들, 대학 선후배 동기들과 교수님, 그 외 만났던 많은 사람들의 자리는 전부 다른 사람들로 채워졌을 것이다.

아무튼 간에 13살이라는 나이에 내 미래의 큰 줄기가 잡히고 나서는, 그 후에 별나게 튀는 사건 없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길을 보통 걸어왔던 것 같다. 이과 고등학교를 졸업해서 공대를 가고 전공과 관련된 직종에 종사하고 그 직업이 크게 불만족스럽지 않고...

제목에는 '누칼협' 운운해놓고 생뚱맞게 인생 썰을 푸는지 싶은 어느 독자도 있을 것 같아 이쯤에서 이 얘기를 정리하고자 한다. 이 얘기를 통해 결국 얘기하고자 했던 건 이거다. 고등학교 전공과 대학 전공이 이어지고, 대학 전공과 현재 직종이 이어지고, 내가 몸담은 직종이 크게 불만족스럽지 않다는 그 사실이 나에게는 엄청난 행운으로 느껴진다. 그냥 보통 다 그러지 않냐고, 자연스럽게 벌어지는 일이라고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행운이 내가 죽을 때까지 이어지리라는 생각도 결코 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내가 살면서 적지 않은 시간과 재화와 노력을 들인 일이 갑자기 물거품이 되는 일이 생길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세상에는 실제로 그런 상황에 처하는 사람도 있다. 그럴 때, 인생 살면서 몇 년동안 노력하고 돈도 투자해서 성취해 낸 것을 어떻게 손쉽게 단번에 버리고 다른 일을 할 수 있을까.

누칼협(누가 그거 하라고 칼 들고 협박했냐)은 아마 내가 기억하기로는, 초반에는 진짜 멍청한 선택을 해 놓고 피해를 봤다고 징징대는 사람을 놀리기 위해 생긴 말이었던 것 같다. 쉽게 예를 들어서 우유의 유통기한이 반 년이나 지난 걸 알고도 먹어놓고선 배탈이 나 설사를 했다고 징징대는 사람에게 하는 말의 느낌이었달까. 그런데 그 어감 자체가 찰지고 어디에나 쓸 수 있어서 그런지 여기저기서 남발되기 시작했고, 이제는 그냥 상황에 구분 없이 피해를 본 누군가를 조롱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인다. 전세사기를 당한 피해자한테 누가 그 집 전세 살라고 칼 들고 협박했냐고 한다든가, 빵 만드는 공장에서 기계에 끼어 숨진 사람에게 누가 그러게 공장에서 일하라고 칼 들고 협박했냐고 한다든가... 그냥 역겨워서 더 적기가 싫다.

내가 지금껏 비교적 순탄하게, 경제적으로도 부족하지 않고 크게 억울한 일도 없이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나의 노력도 있었겠지만 주변 사람들과 사회가 나를 돌봐준 덕도 컸다. 넉넉하지 못한 상황에서도 내게 사랑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부모님이 없었다면 지금 뭐 어떻게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국가장학금과 청년 전세자금 대출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도 소득의 상당수는 대출 상환으로 빠져나가고 있을 거였다. 좋은 동기들, 좋은 선생님들을 만나지 않았다면 잠깐 방황하던 시절 삐딱선을 타고 어쩌면 제대로 졸업도 못 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누구나가 살면서 필요한 보호와 도움과 돌봄을 적절한 때에 제공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복지에도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사랑으로 키워줄 부모가 없는 사람도 있다. 필수적으로 보장되어야 할 일터에서의 안전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곳에서도 누군가는 일을 해야만 한다. 법의 허점 때문일 수도 있고, 경영진의 편법적인 이익 추구 때문일 수도 있다. 재수 없이 사기꾼과 엮일 수도 있다. 내게도 일어날 수 있었던 이 모든 일을 나는 그냥 운이 좋게 지금까지 전부 피해 갔을 뿐이다.

그것들을 본인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피해 가지 못한 사람들에게 누칼협이라는 말을 쓰는 것 자체가 그냥 문제의 핀트를 이해할 지능도 의지도 없다는 인증일 뿐이다. 학교를 가고 직업을 갖고 집을 사는데 협박을 받아서 억지로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당연한 말이고 다 자기 선택이다. 그런데 인생 살면서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적어도 생존에는 문제가 없도록 갖춰져야 할 기본적인 안전, 그리고 법과 제도를 통한 보호가 미비해서 생긴 문제를 개인의 잘못된 선택 때문이라고 하는 건... 그러면 우리는 왜 함께 사는 것일까? 본인의 능력을 알아봐 주고 키워주고 알맞는 곳에서 발휘할 수 있게끔 주변 사람들이 도와준 덕을,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는 재수 없는 일을 피할 수 있었던 운을, 혹여나 재수 없는 일을 당했을 때 마침 꼭 맞는 법적 제도적 구제를 갖춰놓은 사회의 성숙을 모두 본인의 능력으로 가졌다는 착각과 오만을 배설하는 단어가 바로 '누칼협'인 것이다.

이 말을 즐겨 쓰는 젊은 사람들 중에선, 지금까지 인생이 순탄하게 굴러갔지만 누군가 언젠가는 피치 못할 수렁에 빠질 수도 있을 것이다. 개인이 얼마나 능력을 갖추고 부를 쌓았는지와는 상관 없이 말이다. 아마 그 수렁에 먼저 빠진 사람들을 본인들이 과거에 '누칼협'이란 단어로 능욕하며, 공동체가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안전망을 구축하도록 생산적인 담론을 끌어내는 대신 엉뚱하게 개인의 잘못과 능력 부족을 탓하는 배타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데 본인이 일조했을 것이다. 그로 인해 그 수렁을 막지 못하고 본인도 거기에 빠지게 되었을 때, 당연하게도 누군가는 본인에게 '누칼협'을 외치지 않을까. 누군가가 내 목에 날카로운 말로 된 칼을 들이밀 때에야, 내가 여유롭던 때에 다른 사람을 위하는 일이 곧 나를 돕는 일이 될 수 있었음을 깨닫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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