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2~3년 간 내 삶은 그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

내가 운전이란 걸 할 수 있을까 싶었을 때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 면허를 휘뚜루마뚜루 따 버리고 작은 오토바이를 하나 장만해 막차 걱정없이 새벽에도 외출을 나갈 수 있게 되었다. 벌써 일만 킬로미터를 다 타 간다.

취업 준비를 하던 시기는 내 인생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아니 제일 열심히 살았던 때였다. 저녁 5시에 일어나 첫 끼니를 먹고 24시간 카페에 가서 새벽 4시까지 공부를 한 다음 편의점에서 대충 허기를 때우고 집에 돌아온다. 이런저런 걱정과 스트레스로 잠 못 이루고 있노라면 어느새 부모님은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신다. 달그락거리는 그릇 소리와 행여 내가 잠을 깰까 작은 소리로 나누는 대화 소리는 시나브로 피곤에 몽롱해져 저 아득히 들리는 듯 희미해져가고 스르륵 잠이 든다. 그렇게 든 잠도 푹 자지 못한다. 언제 합격 불합격 이메일이 올 지 모르니까.. 한 두시간마다 일어나 메일 알람을 확인하고 다시 자기를 반복하면 다시 저녁이 된다. 부모님이 퇴근하시기 전 집을 나가야 하기에 지친 몸을 채근하며 일어난다. 이러한 생활의 반복.

그럼에도 결국 취직을 하고 나서 내 업무 하나 제대로 쳐내기도 힘들었던 때는 점점 언제였지 싶고 어느 새 우리 팀에 좋은 신입이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마 내가 보였던 어리숙한 모습을 그에게서 볼 때면 뭔가 속으로 슬며시 웃음지으며 "뭐가 문제에요?" 라고 운을 띄우지 않을까.

그리 넓지도 않은 본가에서, 내 방이긴 해도 뭔가 내가 편히 마음붙일 공간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점점 짙어질 때 쯤 왕십리의 5평짜리 작은 방을 얻어 독립을 하게 되었다. 내 몸뚱아리에 비해 작디작은 싱글 사이즈 매트리스에 누워 처음 잠을 청하며 보았던 내 방의 풍경과 그 때의 마음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방이라는 곳이 사랑스러워 보이는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공간적 독립 뿐만이 아닌, 월세도 내 힘으로 낼 정도가 되어 완전한 경제적 독립을 이루었단 생각에 더 그랬을 수 있다.

그러한 기쁜 마음은 몇 달만에 온데간데 없어졌다. 빨래 건조대를 세우기만 하면 오갈데가 없어지는 좁디좁은 넓이와, 옆 집 사람이 소변 보는 소리까지 들리는 답 없는 방음 덕에 그 사랑스러웠던 방을 뒤로 하고 집다운 집을 구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1년 계약이 끝나갈 때 즈음 부동산에 들러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내가 고른 곳은 어딜 둘러봐도 시멘트밖에 보이지 않는, 준공까지는 몇 달이 남은 공사 중인 집이었다. 이런 신축 집은 원래 구조와 넓이만 보고 계약하는 거라는 부동산 사장님에 말에, 그리 나쁘지 않아보여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 설명을 했다. 엄마는 갑자기 듣는 소식에 놀랐지만 '너라면 알아서 잘 했겠지' 라는 말씀으로 힘을 실어주셨다. 그리고 오로지 나의 의사로 반전세 1억 2천에 32만원이라는, 생애 최초로 억 단위가 적히는 계약을 하게 되었다. 심지어 보증금은 전부 내 명의로 대출을 받았다. 청년전세대출을 알아보기 위해 은행을 두루 다녀보고 집 공사 기일 문제로 부동산을 들락거릴 때에 정말 내가 어른이 되었나? 하는 알량한 생각이 들었다.

거의 두 배 정도로 넓어진 집 안에는 내가 좋아하는 물건들을 좋은 품질의 것들로 가득 채웠다. 65인치 올레드 티비, 제습기와 청소기, 스피커와 턴테이블, 시몬스 매트리스와 까사미아 이케아 가구들, 컴퓨터도 새로 맞췄다. 애매한 걸로 사서 금방 못 쓰게 되거나 고장나서 애 먹느니 돈 쓸 때 쓰고 결혼하기 전까지 뽕 뽑자는 생각으로 거금을 들였다. 집안일도 거의 하지 않았던 내가 습관같이 바닥에 머리카락이 있는지를 보며 청소기를 돌리고, 셔츠 다림질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마트에 가면 평생 거들떠도 안 보던 주방도구나 청소도구 코너를 보고, 여름철 전기세 때문에 갖은 스트레스를 받게 되었다.

2019년이 끝나갈 즈음의 나에게, 2년만 있으면 너의 삶이 이렇게 변한다고 말을 한다면 아마 그는 못 믿을 것 같다. 그 정도로 꽉 찬 고밀도의 시간들이었다. 내가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고, 아는 것이 많아지고, 나의 관심사가 넓어지고 또 변했다. 앞으로의 인생은 대체 어떻게 흘러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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