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도쿄에 가면 미술관에 꼭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미술에 크게 관심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가끔 국현미 같은 곳에서 재미있는 전시를 하면 가 보기도 하고, 인상파 그림도 좋아하는 편이라 내 취향에 맞을 만한 곳을 좀 찾아보았다. 일본 특히 도쿄에 있는 미술관의 컬렉션이나 공간 자체가 되게 좋은 곳이 많다길래... 그래서 국립서양미술관이란 곳을 가 보기로 했다.

진짜 속상해 죽겠다. 어떻게 도착한 다음날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서울로 돌아가는 전날까지도 계속 비가 온다. 심지어 이 날은 추적추적 수준이 아니라 말도 안 되게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산도 없어서 호텔에서 빌려갈까 했는데 이미 대여용 우산은 다 나가버리고... 호텔에서 나올 때만 해도 이 정도로 많이 오지는 않아서 우산을 안 샀었는데 지하철 타고 미술관 앞에 내리니 눈 앞이 캄캄해질 정도로 비가 왔다.

미술관 안에는 카메라를 안 들고 갔다. 이미 비 때문에 지칠대로 지쳐서 짐 하나도 없이 편한 마음으로 둘러보고 싶었다. 

상설전은 15~16세기 고전 작품들부터 인상파 작품까지 주욱 있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인상파 그림을 위주로 슥 둘러보고 나왔다. 사실 특별전이 진짜 기대가 됐었다.

이 특별전... 너무나도 기억에 남고 인상적인 전시였다. 기억을 위해 이 특별전에 관련된 정보를 이 곳에 좀 남겨보자면 -

Does the Future Sleep Here?
——Revisiting the museum’s response to contemporary art after 65 years
국립서양미술관(NMWA)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현대미술의 주요 전시인 이번 전시에서는 오늘날 일본에서 실험적인 예술 활동을 펼치고 있는 다양한 연령대의 작가 20여 명의 작품을 소개합니다.

국립서양미술관은 주로 20세기 중반까지의 서양 미술을 수집, 보존, 전시해 왔기 때문에 현대 미술은 소장하고 있지 않습니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먼 옛날 먼 나라에 살았던 죽은 사람들의 작품만을 모아놓은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1959년 개관 당시 NMWA의 핵심 컬렉션으로 자리 잡기까지 마쓰카타 컬렉션의 전반적인 역사를 돌아보면, 사실 이 미술관은 미래 미술의 창작을 자극하는 장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건립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지금까지 NMWA는 미래의 예술을 일으키고 육성하는 장소가 되지 못했습니다.

실제 '미술관' 시스템은 18세기 후반 서유럽에서 생겨났습니다. 당시 독일 작가 노발리스는 이렇게 썼습니다,
"갤러리는 미래 세계의 잠자는 방이다. 미래 세계의 역사가, 철학자, 예술가는 이곳에서 자신을 발전시키고 이 세계를 위해 살아간다"라고 말했습니다.

NMWA는 '미래 세계가 잠든 방'이 되었을까요? 우리는 이 다양한 예술가들에게 이 질문을 던졌고, 이번 전시에 전시된 그들의 작품이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할 것입니다.

이 특별전의 이름과 개요를 번역기 돌려 붙여보았다. 이 특별전이 기획된 계기 자체가, 이 미술관이 그저 '그 동안 모인 컬렉션을 전시' 하는 기능을 넘어 미래의 미술을 위한 요람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지 반추하고 반성하는 의미에서 출발했다는 사실 자체가 정말 좋았다. 이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던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이 지진으로 인하여 망가진 장면 그대로를 연출해 놓은 작품이나, 미술관 주변 공원의 노숙자들의 삶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라든가, 하나하나 눈여겨보며 너무 즐거운 경험을 했다.

여담으로 요즘에는 따로 한국어 해설이나 오디오 가이드가 없어도 작품들을 감상하는 데 별로 지장이 없다. 아이폰에 기본 내장된 번역 기능만 사용해도 이렇게나 퀄리티 나쁘지 않게 번역 결과를 확인할 수가 있다. 코로나 이후로 외국의 미술관에 가 보는 것이 처음인데 카메라로 찍기만 해도 바로바로 이렇게 결과가 나오니 참 좋은 세상이다,,

우산을 안 사고 버티고 버티다가 결국에는 편의점에서 우산을 사고 나서,, 배가 고파서 스시로에 가서 회전초밥 좀 위에 넣어주고.

내가 예전에 잠깐 듣던 밴드가 시부야에서 공연을 한다는 소식을 알게 되어서 이 날 저녁에는 시부야의 한 라이브하우스에 가서 공연을 봤다. 콘서트도 페스티벌도 좋지만 역시 라이브하우스에서 꽉 찬 사운드와 현장감을 느끼는 게 너무너무 좋다. 첫 타임으로 나온 밴드는 원래 몰랐던 밴드였는데 공연도 너무 재밌게 잘 하고.. 끝나고 티도 한 장 샀다. 자기네들 티가 한국에 처음으로 수출된다고 자기들끼리 신나서 얘기하는 데 어찌나 귀엽고 나까지 행복해지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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