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옆에 쇼팽 동상이 있는 와지엔키 공원이 있었다. 다시금 쇼팽탐지견 모드로 변한 나는 쇼팽의 흔적 냄새를 따라가기 위해 아무것도 모른 채 와지엔키 공원으로 향했다.

공원 입구에 들어서서 좀 걷다 보니, 갑자기 한복을 입은 외국인 여자와 태권도복을 입은 꼬마가 눈에 들어왔다. 한국을 떠난 지 한 달이 다 되어가니 이젠 정신병자마냥 별 허깨비가 다 보이는구나 했다. 그 순간 저 멀리 보이는 현대와 엘지 로고. 조금 더 다가가니 커다란 무대와 함께 그곳에 적혀 있는 '코리아 페스티벌' 현수막.

대체 이게 무언가? 사방에서 들리는 한국말과 밥도 없이 김치를 락앤락 통째 퍼먹는 노랑머리들, 하이트 병나발을 부는 할머니, 전국노래자랑 모자를 쓴 무대 앞 관중들, 등 뒤에 '슈퍼주니어', '김성규'가 적힌 티셔츠를 입은 여학생들... 아아.. 한 달 동안 한국인을 딱 한번 본 나에게 이곳은 혼돈의 카오스나 다름이 없었다.

아무리 한국이 그리웠다 한들 이건 너무나도 당황스러운 것... 마치 목이 마르다고 하니까 정수기 파란 물통을 입에 쑤셔넣어주는 듯한 바로 그 느낌이었다. 왜 나는 폴란드의 수도에서 딘 노래를 듣고 있는가..

사진 속의 저 한인회 부스에서는 대학교 축제 주점마냥 술과 안주들을 팔고 있었는데 소주를 7천원에 파는 것을 보고는 그래 그럼 그렇지 뭐.. 하며 학을 뗐다. 그 와중에 내 눈에 들어온 떡볶이.


그 순간 이성을 놓아버린 채 지갑을 열 수밖에 없었다. 3천원이라는 거금과 떡 7개, 어묵 2개를 교환한 나는 뭐라 더 달라는 말도 할 겨를이 없이 참담한 심정으로 접시를 받아들었지만... 걸신들린 거지마냥 소스를 한껏 묻혀 떡을 입에 넣는 순간 가슴속엔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차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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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차린 채 다시 축제장을 나와 와지엔키 공원을 거닐기 시작했다. 그냥 그냥 공원이었는데 중국식 정자가 있는 것은 눈에 좀 띄었다. 대체 이게 여기 왜 있는거지..

공원을 간단히 둘러보고 난 후 쇼팽 동상으로 향했다. 소련 시절 쇼팽의 음악도 듣지 못하게 하고, 이 동상의 얼굴 부분 빼고는 계속 파괴를 했다고 하는데 남은 얼굴이라도 소중히 지켜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을 했다고 한다. 폴란드인들이 얼마나 쇼팽을 사랑하는지, 그리고 옛것에 대한 자랑스러움과 아끼는 마음이 얼마나 큰지 또한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전쟁때 파괴된 건물도 복구하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하니까.

그렇게 공원을 돌아보고 난 후 해진 구시가를 둘러볼 겸 다시 그쪽으로 향했다. 그런데 전통 복장을 입은 사람이 한 두명도 아니고 한 무리가 있었다. 알고 보니 오늘이 무슨 댄스 페스티벌 같은 행사가 있다고 했다. 페스티벌 귀신이 졸졸 따라다니나? 어찌되었든 아빠 미소가 저절로 나오는 장면이었다. 사람들도 정말 행복해 보이고.


마리 퀴리의 생가도 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방사능따위는 있지 않겠지.. 하며 들어갔다. 사진 속 방에서 마리 퀴리가 돌아다니며 연구를 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쇼팽박물관 건물 앞에 다다랐을 때 들었던 그 시공간을 뛰어넘는 듯한 기분이 다시 들었다. 당신이 발견한 원소가 매우 무거워서 내가 외울 주기율표 30번까지의 안에 들어있지 않은 것에 감사하며 찬찬히 둘러보았다.

역시나 바르샤바에도 소련 시절에 세워진 '그' 건물이 있었다. 밤이 되니 조명을 받아서 멋있게 보였지만, 역시나 폴란드인들은 매우 싫어하는 건물 되시겠다.

이틀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돌아본 것도 많고, 처음으로 떠나기가 아쉬운 도시가 되었다. 정감가는 나라, 문화와 과학에서 찬란한 성과를 남긴 저력있는 나라. 언젠간 꼭 다시 느긋한 일정으로 다시 방문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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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1 226.9zł (방값, 음반 지름 포함)
6/12 78.04z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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