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초기에 우리 모두가 염원했던 것은 당연하게도 "코로나 종식"이었을 것이다. 하루에 확진자 수가 수십 수백 명이 나올 때, 역병이 돌던 특정 지역이나 특정 무리가 온 언론을 떠들썩하게 장식했을 때, 확진자에게 지역명과 숫자를 조합한 코드를 붙이고 지난 며칠간의 동선을 온 국민에게 낱낱이 공개할 때, 마스크를 사려고 새벽바람에 나와 수 시간씩 줄을 섰을 때, 상종 못 할 바이러스 취급을 받을까 죽을 힘을 다 해 헛기침을 참아야 했을 때. 그 때에는 그 힘든 시간을 모두가 견디면 "종식"이라는 것이 오지 않을까 기대했을 것이다.  마지막 확진자의 몸 안에 살아있던 바이러스가 죽는 순간, 더 이상 5천만명 중 바이러스를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어지는 그 마법같은 순간을 말이다. 마스크를 벗어제껴 하늘로 날려버리고 큐알코드 인식기와 얼굴 들이미는 체온계를 박살내는 바로 그 종식의 순간.

지금 돌아보면 얼마나 바보같은 상상이던가. 어느샌가 치명률은 낮아지고 전파력은 높아지는 여느 바이러스처럼 코로나도 변해가며 종식이란 단어 자체는 허무맹랑한 외침이 되었다. 우한폐렴으로 떠들썩하던 2020년 1월로부터 2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고 해외로 가는 하늘길도 열렸다. 이제는 쳐다보기도 싫은 마스크를 써야 하긴 하지만 그래도 나같은 여행 중독자에게 길이 열린 것만 해도 어디냐 하며 일주일 휴가 기간 때 방콕으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동남아는 이번이 첫 방문인데, 비행기에서 내려서 밖으로 나가자마자 후덥지근한 기운과 특유의 냄새가 확 느껴졌다. 혹자는 그 느낌이 좋아서 동남아를 계속 찾는다던데. 더위를 많이 타는 나는 그리 유쾌한 느낌은 아니었다만 그래도 오랜만의 해외여행이 시작되었다는 사실 자체에 기분이 계속 좋았다.

숙소에 짐을 놓고 나와서 저녁을 먹으려고 주위를 어슬렁거리다 찾은 식당에서 먹은 것들. 똠얌꿍과 게살볶음밥, 팟타이다. 똠얌꿍은 내가 기억하는 한 태어나서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었는데 저 곳에서 똠얌꿍을 먹은 뒤로 인생 음식이 되었다. 게살볶음밥은 우리나라의 그것과는 다르게 통살로 들어가 있어서 또 감동. 팟타이도 맛있었다. 전체적으로 가격이 좀 있었지만 노곤한 첫 날을 마무리하는 식사로는 훌륭했다. 인테리어도 분위기도 차분하니 좋았고.

다음 날 일어나서 아침에 본 숙소 창 밖 뷰. 여의도 느낌이 났다. 계속 앞으로 나오겠지만 방콕은 참 알 수 없는 도시다.

이 날이 8월 28일, 태국 우기의 거의 정 가운데 있는 날짜였다. 역에서 나오려니까 갑자기 비가 쏟아지길래 허겁지겁 들어간 어느 백화점. 여기가 방콕일까, 서울일까, 혹은 파리일까, 뉴욕일까? 이 지역을 겪어보지 못 한 한국 사람이 갖는 "동남아" 라는 단어에 대한 어쩔 수 없는 편견이 서서히 박살나기 시작했다. 편견은 맞는 경우가 대부분 없다.

비가 조금 멎고서 대표적 관광지 중 하나인 짐 톰슨의 집으로 갔다.

쿨쿨.

내부를 들어가지 않아서 그런가 모르겠지만 그렇게 볼 거리가 많지는 않았다. 그래도 미칠듯한 습기와 어울리는 거대한 초록 식물들을 보는 재미가... 온실에 들어간 느낌이었다. 이 때부터 내가 우기의 동남아를 정말 얕잡아봤구나, 눈물을 흘리고 싶을 만큼 습하고 덥고 고통스러운 날씨를 어떻게 견딜까 겁이 났다.

비가 10분 단위로 그쳤다 내렸다를 반복한다. 내렸다가 아니라 쏟아진다 라는 게 맞는 표현같다.

어쩌다 들어가게 된 로컬 식당에서 또 훌륭한 식사를 맛봤다. 시간이 애매했던지라 손님이 우리밖에 없었는데 주인 아주머니가 너무 살뜰히 우리를 챙겨주었다.

오후에는 유명한 짜뚜짝 시장에 갔다. 커피가 너무 마시고 싶어 시장 한 켠에 있는 카페에 들어갔는데 인테리어가 대단하다. 이때까지도 편견을 다 거두지 못한 모습이다.

유명한 곳이라 제대로 지나다니지도 못 할 정도로 사람이 미어터지면 어떡할까 걱정했었지만 그 정도로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외국인도 많이 보이고 적당히 활기찬 분위기.

똑같은 옷을 어디서는 200바트, 어디서는 300바트, 어디서는 150바트에 팔고 있다. 단위가 작다 보니까 별 거 아니게 느껴지는 거지 실제로는 많으면 2배 차이가 난다는 뜻이다. 애초에 그렇게 마음에 쏙 드는 옷이 있지도 않았지만 뭔가를 발견해도 '여기보다는 더 싼 집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구입을 망설이게 되었다. 흥정을 잘 하는 성격도 아니고... 결국 미로같은 시장을 한참 전전하다 아무 소득도 올리지 못 하고 나오게 되었다. 원래 여행하면서 막 입을 커다란 박스 티나 반바지 혹은 전통 의상같은 것이 있으면 하나 사려고 했었는데.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에 싸얌 스퀘어에서 본 충격적인 행사. 전에 유라시아 일주 때 폴란드에서 봤던 코리아 어쩌구 행사를 봤을 때 만큼의 충격이었다.

또 하나의 충격이었던 길거리에서의 스쿨밴드 공연. 아마 진로를 이 쪽으로 잡은 애들일런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숱한 스쿨밴드를 거쳤던 나로서는 도저히 믿겨지지가 않는 엄청난 실력이었다. 연주도 연주지만 쇼맨십이 대단했다.

저녁으로는 그냥 현지인들이 약속 장소나 데이트 장소로 많이 오는 것 같은 뭔가 건강한 음식들을 많이 파는 식당에 갔다. 태국에선 별로 실패한 식당이 없다. 계란맛 제대로 나는 꾸덕한 까르보나라 또 먹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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