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는 아니지만 글을 그래도 열심히 쓰다 보니 나도 티스토리 초대장이 몇 장 생겼다. 그래서 얼마 전에 초대장을 나눠준다고 글을 썼었다. 올린 지 하루도 되지 않아 초대장을 달라는 댓글이 40개가 달렸다. 그런데 개중에는 스팸 블로그를 만드려는 목적으로 매크로를 돌리는 사람도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스팸 댓글을 걸러내기 위해 만약 자신이 블로그를 만든다면 어떤 주제의 글을 쓰고 싶은지, 필명은 무엇으로 하고 싶은지 등의 기본적인 구상을 같이 써 달라고 했다. 구구절절한 사연들이 많았다. 여기서 자세히 이야기 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다들 블로그를 만들고 싶은 명확한 이유가 있었고 의욕도 있어 보였다. 하지만 모두에게 초대장을 보내줄 수는 없어 그 중에서도 마음이 끌리는 댓글을 몇 개 선정해 초대장을 보냈다.

티스토리에서 초대장을 보내면, 초대 관리 메뉴에 그 사람이 만든 블로그 링크가 뜬다. 아무래도 내가 초대한 사람의 블로그는 계속 들어가보게 된다. 정말 그 사람이 처음에 마음먹은 대로 잘 하고 있나 궁금하기 때문이다. 내 초대장이 헛되지 않게 쓰였으면 하는 마음도 있고.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접속하자마자 텅 빈 화면이 보여 바로 창을 끄게 된다. 간혹 블로그를 개설하고 며칠 안에 쓴 글이 한두 개 정도 올라와있는 곳도 있다. 하지만 그것도 그 때 뿐이고 금방 흥미가 식었는지 몇 달 동안 새 글은 보이지 않는다.

글 쓰는 거 많이 어렵다. 나도 블로그를 만든 지 2년이 다 되어가고 나름 많이 쓴 것 같지만 아직 100개도 채우지 못했다. 써야 될 글감들은 머릿속에 쌓여있는데, 글 쓰는 것보다 더 급한 이런저런 일들에 치이다 보면 키보드를 잡기가 쉽지 않다. 특히나 학기중이라면 더 그렇다. 독자 입장에선 글 하나 읽는 데 2분도 채 걸리지 않지만 그 글을 쓰는데는 적어도 2~3시간은 족히 걸린다. 그래서 불타는 열정으로 블로그를 만들었지만 금세 글쓰기에 시들해지는 대부분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주는 아닐지라도 꾸준히 글이 올라오는 블로그도 가끔 있다. 이런 분들의 초대장 요청 댓글이 다른 사람들보다 특별히 길거나 사연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 대체 누구에게나 어려운 이 글 쓰는 일을 왜 어떤 사람들은 꾸준히 할 수 있고 어떤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건지 궁금했다. 그 이유를 찾고 싶어 글과 댓글들을 자세히 읽어보았다. 역시나 답은 글 속에 있었다.

꾸준히 글을 쓰는 사람들은 보통 '자기를 위해서' 글을 쓰는 경향이 있었다. 주로 자기의 생각이나 감상을 정리한 글이라던가, 여행이나 제품의 후기를 올려도 남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자기의 느낌이 주가 되는 글을 썼다. 도움되는 정보가 많아서 내가 자주 찾는 블로그들도, 생각해 보면 자기가 공부한 것이나 자기가 겪은 시행착오를 그저 기록하는 블로그가 많았다. 반대로 꾸준히 글을 쓰지 않는 사람들은, 블로그를 만드려는 목적이 대부분 '남을 위해서'인 경우가 많았다. 자신이 가진 정보나 지식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싶다는 목적들 말이다.

타인에게 향하는 글을 쓰는 것은 내가 두고두고 편하게 읽을 글을 쓰는 것 보다 훨씬 어렵다. 자기의 이야기를 쓰려면 자기가 알고 있는 것과 느꼈던 것을 그대로 적으면 된다. 하지만 남들에게 보이는 것을 의식하고 글을 쓸 때는, 당연히 글의 퀄리티에 더욱 신경을 쓰게 되어 시간과 에너지를 더 많이 잡아먹는다. 또 자기의 개성이 드러나는 자기만의 문체와 흐름으로 글을 쓰기보다는 남들이 읽기 좋은 식으로 글을 쓰게 된다. 인기가 많은 포스팅도 참고하게 되고, 어딘가 과장된 수사라던가 문체도 사용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다 보면 어딘가는 부자연스러운 글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사실 이런 이유보다도 내가 생각하는 더 큰 이유는, 과연 우리가 불특정한 타인에게 도움을 줄 목적으로 글 하나당 3시간 가까운 시간을 기꺼이 내놓을 만큼 이타적인 존재인가 라는 물음에서 나온다. 자신의 일을 제쳐두고, 혹은 딱히 바쁘지 않더라도 자기가 쉴 수 있는 시간을 할애해서 내가 알고 있는 좋은 정보에 대해 글을 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정말 찾아보기 힘들 거라 단언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전문 작가가 아닌 이상, 글을 쓰는 일은 자기가 재미있어서 해야 한다. 일일 방문자수가 수천이 넘어가는 파워블로거를 보고 '나도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블로그를 만들어야지!' 하고 마음먹는 건 쉽다. 자기가 쓴 글을 많은 사람들이 읽고, 감사하다고 댓글을 다는 모습이 얼마나 멋있어 보이겠는가. 충분히 불타는 열정을 가질만 한 동기가 된다. 그러나 심지에 불을 붙인 양초가 계속 타기 위해서는 불에 탈 파라핀왁스가 계속 남아있어야 하듯이, 처음에 불을 붙인 기름라이터와는 성격이 조금 다른 연료가 계속 필요한 법이다. 나는 그 최초의 열정을 계속 태울 수 있는 파라핀왁스로 제일 좋은 것은 '자신을 위한 것, 자신이 느끼는 재미' 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쓰여진 글들이 글쓴이의 개성을 더 잘 드러낼 수 있고 감동을 줄 수 있으며 도움이 되는 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사실 글을 쓰는 일 말고도 모든 일이 그렇다. 공부가 되었든 어떤 다른 일이 되었든, 내 안에서 나오는 계기를 갖는 게 중요하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외부에 기인한 순간의 열정은 나를 착각하게 만들 수 있다. 파라핀왁스가 다 녹았는데 라이터 불만 계속 갖다대고 있으면서, 양초가 잘 타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은 사실 미련한 것이다. '시작이 반이다' 라는 말은, 반대로 생각해 보면 시작이 어려운 만큼 나머지 반을 이어가는 것도 어려운 일이라는 뜻은 아닐까. 꾸준한 사람이 되는 것, 그리고 나를 그런 사람으로 만드는 일을 찾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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