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여행을 좀 여유롭게 하는 걸 좋아하는 스타일이라서, 홍콩을 처음 방문하기도 하고 일정도 3박 정도라서 홍콩만 구석구석 둘러보기에도 시간이 부족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여행을 준비하며 유튜브 영상을 많이 찾아봤는데 많은 사람들이 마카오를 같이 방문하고 있었다. 홍콩과 마카오는 거의 세트메뉴처럼 묶이는 곳들이니 그럴만도 했다. 근데 마카오를 영상으로 보니 생각보다 되게 좋았다. 왔다갔다 하는거야 페리가 워낙 잘 되어있고 마카오가 예전에 포르투갈령이었다보니 길거리나 건물들이 포르투갈 식으로 되어 있는 것들이 꼭 내 취향이었다. 포르투갈에 대한 좋은 기억이 워낙 많은 탓에...

아무튼 그래서 홍콩 둘러보기를 좀 포기하더라도 세 번째 날에는 마카오에 가 보기로 결정을 했다. 

일단 숙소 근처에서 아침을 먹는다. 반숙 계란 스크램블과 토스트, 그리고 소고기가 들어간 토마토 마카로니탕이다. 대체 저게 무슨 음식이냐 할 수도 있는데 나도 반신반의하면서 시켰으나 생각보다 담백하고 슴슴한 맛이 아침으로 제격이었다. 동일한 메뉴로 다음 날 아침도 먹었다...

페리를 타러 홍콩 섬 페리 터미널로 갔다. 페리 터미널 안에 여러 쇼핑몰이 많아서 층수도 많고 길도 복잡한데 안내표지도  충분히 되어있지 않아서 처음에 찾는 데에 약간 애를 먹었다. 월요일이라 자리가 널널하게 남아있을 줄 알았는데 여기저기서 몰려온 중국 사람들이 뭐 그렇게 많은지 바로 가까운 시간에는 못 타고 30분인가 1시간 정도 기다려야 했다. 어쨌든 티켓을 구매하고 맥도날드에 가서 좀 대기를 했다.

페리 탑승을 대기할 때 자리 배정을 받아야 한다. 탑승구 앞에 가면 꼭 저런 테이블에 먼저 가서 자리 배정을 받자. 자리 번호가 적혀있는 스티커를 티켓에 붙여준다.

한 시간 정도 졸다가 유튜브 보다가 했더니 마카오에 도착했다. 페리 터미널 바로 앞에 각 호텔과 카지노에서 보낸 셔틀버스 터미널이 있다. 그냥 아무거나 골라서 탔다.

내가 고른 셔틀은 MGM 타이파 호텔에서 운영하는 셔틀이었다. 카지노 앞은 물론이고 로비 자체 크기도 엄청 크고 휘황찬란했다.

카지노에 들어가보고 싶었지만 나는 일단 도박을 하는 것이 법적으로 금지된 대한민국의 국민이기 때문에 들어가지 않았다. 근데 이 날 밤에 꿈을 하나 꿨는데, 꿈 속에서 바로 이 카지노에 들어가서 게임을 했다. 한 10만원 정도 가지고 들어가서 이 돈을 다 잃거나 두 배인 20만원이 되면 나오겠다는 마음을 먹고 들어갔다. 테이블이 펼쳐져 있는 딜러와 게임을 하는 거는 무서워서 가진 못 했고, 여기저기 띵 띵 소리를 내는 슬롯같은 머신 앞에 앉았다.

처음에는 무슨 규칙으로 돌아가는 게임인지도 이해를 못 했다. 보통 생각하는 방식인 슬롯을 땡겨서 777이 나오거나 하면 뭐가 막 터지는 그런걸 생각하겠지만 슬롯머신도 너무 첨단화가 된 탓인지 그림도 많고 규칙도 한두 게임으로는 이해가 안 됐었다. 그래도 한 판당 판돈을 몇 백원 정도로 설정해 놓고 버튼을 띡 띡 누르다 보니 대충 어떻게 돌아가는 게임인지 알 것 같았다.

돈을 계속 잃다가 갑자기 무슨 펑 펑 소리가 나더니 화면에 "더 큰 행운에 도전하시겠습니까? 아니면 그냥 공짜 게임을 몇 번 하시겠습니까?" 라는 말이 떴다. 뭔 소리야 당연히 더 큰 행운이지. 게임 속의 게임이 펼쳐졌다. 6번인가 룰렛을 또 돌려서 동그라미 안에 숫자가 막 나오더니 끝나고선 그 숫자가 다 더해져서 내가 딴 돈이 되었다. 순식간에 손해였던 게임머니가 플러스로 전환되었다. 아 이 맛에 하는 거구나~ 하고 계속 슬롯을 돌렸다.

그렇게 따다 잃다 따다 잃다를 반복하다가 7만원 쯤 잃었던 순간에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마카오에 오기로 한 것은 포르투갈 풍의 건물과 거리를 구경하기 위해서가 컸는데, 날씨 좋은 한낮에 여기에 틀어박혀 앉아 지금 뭐 하고 있는 건가? 시간이 너무 아깝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바로 그 자리에서 박차고 나왔다. 나오는 길에 한 구석에서 손님들을 위해 공짜 음료를 만들어주고 있었는데 거기서 버블티도 하나 가지고 나와서 쪽쪽 먹으면서 시내로 돌아갔다.

그런 꿈을 꿨다... 참 현실적이었다

그래서 카지노 문 앞에서 돌아나와서 타이파 구도심으로 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좁고 높은 건물들이 빽빽히 모여있는 홍콩과는 약간 다르게 옆으로도 시원시원하게 펼쳐져서 압도적인 스케일을 자랑하는 엄청난 크기의 호텔들이 눈을 돌릴 때마다 보였다.

말도 안 되는 크기의 건물이 황금빛으로 번쩍번쩍

로타리 크기도 스케일이 장난 아니다

그렇게 걷고 걸어서 타이파 구도심에 왔는데 와... 사람 무슨 일이야 이게

이 곳에 온 가장 큰 이유, 에그타르트를 먹기 위해서다. 나는 에그타르트라 하면 무조건 빵이 파이가 아닌 패스츄리여야 한다는 강경파다. 빵이 파이인 홍콩식 에그타르트는 인정할 수 없다. 나에게 에그타르트는 오로지 빵이 패스츄리인 포르투갈식 에그타르트만 에그타르트다. 마카오는 포르투갈령이었으니 당연히 여기서 만드는 에그타르트도 포르투갈식 패스츄리다.

진짜 뜨끈하니 갓 구워낸 것 같은 에그타르트를 우적우적 먹었다. 진짜 환상의 맛... 거의 본토 수준이다

유명한 침차이키 카페에 가서 쭈빠빠오도 먹었다. 생각보다 맛있었다. 고기가 좀 딱딱할 줄 알았는데 그냥 잘 익은 삼겹살 느낌이었다. 내 사랑 아이스밀크티도 사서 같이 먹으니까 너무 든든했다

아주 좁은 구도심에서 길 하나만 딱 건너니 현지인들이 생활하는 주택촌이 나왔다. 아파트 공원에서 쉬면서 산책하는 사람들이 여유로워보였다.

여기서 버스를 타고 타이파를 벗어나 마카오 반도로 건너갔다.

건너오자마자 보이는 건물... 대체 이게 뭐야? 밑에 사람 크기와 비교해 보면 알겠지만 크기도 엄청나게 큰데 건물 모양 자체가 너무 폭력적이다.

거리에는 마카오에서 거하게 한 탕 땡긴 졸부들을 위한 각종 시계와 보석 가게가 즐비하다.

걷고 걸어서 세나도 광장에 도착했다. 이름부터 포르투갈 식이어서 너무 좋은데 오자마자 진짜 포르투갈같이 형형색색의 파스텔톤 건물들이 반겨줘서 너무 좋다. 진짜 포르투갈에 온 것만 같다.

그러나 시선을 돌리니 이런 -중- 스러운 것이 있어서 짜게 식었다. 그냥 중르투갈이다

사람 또한 어마어마하게 많다.

걷고 걷고 걷다가 보니 지도를 보지도 않았는데 마카오 반도의 랜드마크인 세인트폴 성당 유적에 도착했다. 발이 너무 아팠지만 열심히 올라가서 둘러보니.. 약간 포르투갈 냄새가 나는 구도심 골목 너머로 폭력적인 건물이 그 자태를 드러내고 있어 참 이질적이면서도 이게 마카오구나 싶었다

근데 이 가로등을 보고 아... 여기 포르투갈령 맞았구나... 싶다. 영락없는 포르투갈의 거리다

세인트폴 성당 유적에서 내려와서 또 조금만 걸어가니 그 많은 관광객들은 어디로 갔는지 모두 사라지고 현지인들만 남아있었다. 한결 여유로워진 밤거리를 걸으며 저녁을 어디서 먹을지 찾기 시작했다. 완탕면을 아직 못 먹어서 완탕면 파는 곳을 찾아 들어갔다. 하루종일 뭘 주워먹었더니 배가 별로 고프지 않았는데 그에 딱 맞는 작은 크기의 완탕면이 나와서 세 입만에 시원하게 들이키고 홍콩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

돌아오는 페리도 항구에 가서 티켓을 사면 또 만석이 되어있을까봐 미리 인터넷으로 저녁 9시 표를 예매해 놓았었다. 그런데 돌아가기로 결심한 시간이랑 페리 시간이랑 애매하게 떠서, 버스로 가면 항구까지 10분이면 될 걸 마카오 항구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홍콩에 있던 이틀동안 많이 걸었고, 오늘도 많이 먹었는데 또 좀 걸어줘야지 하는 오기같은 것도 있었다. 그래서 걸어가는 동안 내가 대체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만 들었다. 중간에 버스정류장도 없고 가는 길에 볼 거리는 하나도 없고 어둑어둑한 밤거리를 계속 걷고 걷고 또 걸었다.

마참내 도착한 페리 터미널. 이미 발에는 물집이 잡혀서 체중을 바른 자세로 발에 실을 수가 없었다. 홍콩에 도착한 페리에서 내리고도 기진맥진하면서 숙소로 돌아가 기절하듯 잠을 잤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날이 밝았다. 비행기 시간이 4시라 12시~1시에는 홍콩에서 출발해야 돼서 시간이 애매해 별 다른 계획이 없었다. 어제와 같은 토마토쇠고기마카로니탕을 먹고 뭘 할지 고민하다가, 생각해 보니 홍콩의 유명한 2층 트램을 한 번도 타지 않아서 무작정 아무 트램을 잡아 탔다.

행선지는 홍콩 섬의 코즈웨이베이 쪽에 있는 빅토리아 파크. 일단 가면 공원이 있으니까 가서 산책 좀 하고 버블티 하나 사 먹고 돌아오면 되겠다는 계획을 짰다

센트럴에서 빅토리아 파크까지 약 40분동안 트램을 타고 원없이 2층에서 바깥 구경을 하며 느긋한 시간을 보냈다.

공원은 관광지라기보다 완전히 시민들의 휴식처같은 느낌이었다. 체조하는 아주머니 할머니들도 보이고 산책하는 할아버지와 조깅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한국인 입장에서 너무 신기하게 보이는 나무 줄기... 이런 것들을 구경하면서 찬찬히 공원을 둘러보고 나왔다.

마지막으로 겁나 큰 버블티 하나 사 먹고 공항으로 출발했다.

3.5일동안 7만 3천보를 넘게 걸었다. 근데 하필이면 예쁜 신발 신겠다고 반스를 신고 가서 발이 그냥 작살이 났다. 3일차부터는 발 중간에 물집이 잡혀서 발 바깥쪽 날로 몸을 지탱하느라 종아리에 너무 부담이 가고 하여튼 환장파티였다. 하지만 그렇게 많이 걸어다닌 것이 전혀 후회는 되지 않았다. 오랜만에 구석구석 발로 다니면서 느린 시선으로 가장 빠른 도시 중 하나인 홍콩을 흠뻑 느끼고 온 것 같아서 참 좋았다.

날씨가 제일 좋을 때 간 것도 신의 한 수였다. 서구룡 문화지구 쪽과 M+ 미술관,  딤섬 가게, 피크와 빅토리아 하버에서 본 야경, 그리고 위스키 바가 기억에 남는구만... 에그와플도 차찬텡에서 먹는 슴슴한 아침과 똥라이차(동냉차, 아이스 밀크티)도, 마카오 에그타르트도...... 홍콩을 예전부터 좋아했다는 혹자들은 최근의 홍콩에 너무 '그 나라' 색깔이 많이 스며들어 별로가 됐다는 의견도 많아 걱정을 했었다. 근데 나는 처음 와 보기도 하고 그렇게 많은 기대를 하지 않아서 그런지 의외로 생각보다 좋았던 게 많다. 언젠가는 꼭 다시 찾고 싶은 곳이다. 그 전까지 '그 나라'의 색깔이 제발 좀 천천히 스며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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