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 산타 루치아 역에서 나오자마자 기묘한 풍경이 펼쳐졌다. 20미터 앞에 물줄기가 있고 이곳저곳에 배가 떠다녔다. 한 번도 보지 못한 도시 풍경이었다.
이 곳에서 여행 중 유일하게 호스텔이 아닌 한인민박에 묵었다. 베니스의 숙소가 워낙 비싼 탓에 한인민박과 가격 차이가 없었고, 또 한식이 그리워 미칠 타이밍이었다. 베니스에 도착하기 며칠 전 호스텔 예약을 취소하고 한인민박에 예약을 넣었다. 자리가 없으니 빨리 예약금을 입금하고 예약을 확정지으라는 말을 했었는데, 막상 와 보니 나 말고는 사람이 한 명밖에 없었다.
역에서 숙소로 가는 길을 전달받았는데 수상버스인 바포레토를 타고 가는 방법만 적혀있었다. 바포레토는 1회권이 7.5유로, 1일권이 20유로로 도저히 시내 교통비로서는 쓸 수 없는 돈이었다. 걸어가면 얼마나 걸리냐고 물어보니 꽤 힘들거란다. 캐리어가 없어서 괜찮다고 했다. 실제로 걸어보니 바닥은 전부 울퉁불퉁한 돌로 되어있었고 자잘한 계단들이 많았다.
짐을 놓고서 민박 주인 아저씨가 알려준대로 본섬을 빙 둘러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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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봐도 신기한 광경이었다. 곤돌라와 모터보트가 쉴 새 없이 돌아다녔다. 또 건물들 색깔이 정말 알록달록하니 예뻤다. "빛은 곧 색채"라는 인상주의의 모토를 베니스에서 체감할 수 있었다. 분명 똑같은 곳인데도 오후 5시의 햇빛와 오후 8시의 햇빛을 받았을 때의 인상이 확연히 달랐다. 다양한 색깔을 가진 도시라서 그런지 그 대비가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길은 정말 골목골목 많이 나 있고 또 좁았다. 마치 미로 안에 있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 걷는 재미가 있는 도시였다. 길을 잃어도 대충의 방향만 알고 있으면 찾아갈 곳을 못 찾아가는 일은 없다. 오죽하면 베니스에선 한 번쯤 길을 잃어주는 것이 예의라는 말도 있다고 하니.
첫번째 날에는 돈을 한 푼도 쓰지 않았다. 돈을 아끼려고 아무리 노력을 해 봐도 1유로도 쓰지 않은 날은 없었는데 말이다. 아무래도 그 날은 굳이 음식을 먹지 않아도 여러가지 생각으로 배가 너무 불렀던 것 같다. 분노, 슬픔, 고뇌로 찬 그 날의 일기장을 바라보니 그럴 만도 했다. 어떤 음식이 그것들을 비집고 들어갈 수 있었을까.
오랫동안 여행하는 사람들의 얘기를 종종 들은 적이 있다. 나도 짧게 여행하는 편은 아니지만, 여행한 시간을 이야기하는 데 '달'이 아닌 '년'이라는 단위가 필요한 사람들 말이다. 수많은 독특한 경험들로 가득한 그런 여행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참 부럽다. 그렇게 오래 여행하면서도 즐거움이든, 힘듦이든, 어떠한 것이든 그렇게 마음에 꽉 차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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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마르코 광장에 들어섰을 때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아직 불이 켜지기 전이었지만 성당을 둘러싼 건물의 웅장함과 여기저기 바의 무대에서 울려퍼지는 현의 소리들이 해가 지는 저녁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 심지어 불이 켜지고 나니 이렇게 아름다운 광장이 또 있을까 싶었다. 장노출로 뭔가 느낌있는 사진을 담아보고 싶었지만 결국 찍힌 것은 심령사진이었다.
피렌체의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야경을 볼 때 옆의 한국인 여대생이 말하는 것을 엿들은 적이 있다. 그 분이 말하길 베니스는 너무 로맨틱한 도시라 혼자 오면 그 외로움을 도저히 참을 길이 없다고 했는데, 불이 켜진 아름다운 산 마르코 광장에서 그 말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다음날 조식으로 나온 쌀밥과 돼지두루치기, 오이소박이, 계란국을 먹고선 하마터면 눈물을 흘릴 뻔 했다. 익숙한 조미료 맛으로 감동에 찬 혀를 진정시키고 다시 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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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엔 고양이가 많이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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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돌아다닌 베니스 역시 저녁과는 다른 매력을 보여주었다. 한낮의 밝은 햇빛을 받으니 베니스가 가진 원래 색채를 눈부시게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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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만발한 거리도 아름답고, 건물 사이를 누비는 배가 가득한 운하도 아름다운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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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서 공짜 미술 전시를 하는 도시. 현대미술 전시를 무료로 볼 수 있는 곳만 돌아다니다 세군데나 찾았다.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더운 땡볕에 돌아다니다 잠시 쉬면서 감상하기 정말 좋았던 곳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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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멋있는 도시.
바포레토를 타고 무라노 부라노 섬에 갔으면 더 좋았을까? 했지만 역시나 내 취향은 아니다. 두 발로 본섬을 누비고 다녔던 것만 해도 베니스는 내 마음에 잔잔한 행복과 감동을 줬던 도시였다. 역시나 기대를 안 해서 더 좋았던 것일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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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40€ (방값 40€)
7/6 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