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하여 내 생에 다시는 없을 수도 있는 미주 퍼스트클래스를 타게 되었는지는 이전 글 https://jitwo.tistory.com/178 을 보시면 된다.

요코하마 구경을 마치고 다시 찾은 하네다공항에는 이렇게 나를 위한 퍼스트 비즈니스 전용 출입구도 있었는데 공항이 완전 텅~ 이라서 아무 메리트가 없었다. 좀 속상했다

일단은 먼저 전일본공수 퍼스트클래스 라운지로 직행. 맨날 PP카드로 갈 수 있는 시장바닥 허접한 라운지만 가 봤는데 대체 퍼스트 라운지는 어떤 모습일까.

디저트랑 핑거푸드부터 무슨 5성급 호텔 뷔페에 온 것 마냥 때깔이 장난 아니고

심지어 자리에 앉아서 QR코드로 시킬 수 있는 음식은 웬만한 식당에 견줄 수 있을 정도로 맛이나 생김새나 쩔었다

게다가 나를 위한 개인 샤워실까지... 요코하마에서 웬종일 걷느라 가을이라도 땀을 좀 흘렸는데 여기서 개운하게 씻고 밥도 먹고 비행을 할 수 있었다. 

아! 샤워하고 술도 먹었다 ㅋㅋㅋ 하겐다즈랑 초콜렛도 함께...

라운지에서 저 멀리 내가 탈 비행기가 보인다. 헐! 오늘 나 이브이제트 타는구나.

보안검색 우선줄은 아무런 메리트도 없었지만 그래도 그나마 타기 전에는 퍼스트 전용 탑승줄에 설 수 있었다. 아... 저 젊은 놈이 무슨 돈이 있어서 퍼스트를 타나- 하고 다른 사람이 쳐다봤으려나. 아마 개뿔도 신경 안 썼을텐데... 이 때 아니면 생각도 할 수 없는 이런 쥐콩만하고 알량한 우월감을 느끼다 스스로에 토가 나와서 금방 그만뒀다. 부모 마일 쓱싹한 불효자 주제에...

3번째로 기내에 들어가서 드디어 마주하게 된 내 자리. 아... 너무 크고 멋있다...

자리에 앉아서 1분 정도 뚝딱거리고 있으니까 승무원 분 중 한 분이 와서 오늘 나를 담당하게 됐다면서 소개를 하고, 오늘의 비행에 대한 브리핑을 해 주시고, 웰컴드링크는 뭘로 하겠냐고 물어본다. 하... 정말 내가 퍼스트에 탔다고? 심지어 파자마를 주면서 옷도 갈아입고 나오라고 한다. 내가 탈 때 입었던 옷은 그대로 가져갔다. 그동안은 상상도 못 했던 서비스가 이륙하기 전부터 펼쳐지고 있다.

크룩 한 잔을 홀짝이고 있으니 곧이어 이륙.

어메니티파우치는 그냥 그랬다. 전에 봤던 이 비행편 리뷰 영상에서는 글로브트로터에서 나온 조그만 캐리어 모양의 단단해보이는 어메니티파우치를 줬었는데 그게 훨씬 예쁜듯...

이륙한 지 얼마 안 되어 식사를 준비해주겠다고 한다. 나는 양식 일식 코스 중에 일식 코스를 먼저 골랐다.

전채와 ANA 시그니처 스틱, 그리고 무려 히비키 21년... 조금도 아니고 저 정도면 60ml는 될 것 같은데 진짜 양껏도 따랐다.

난 진짜 하늘 위에서 먹는 사시미가 이렇게 맛있을 지 몰랐다

진짜 무슨 일식 정식집에 온 것 같은 메인에 이어 팥으로 만든 푸딩같은 디저트까지 딸려나왔다. 비행기 위에서 사장님 의자보다도 더 큰 자리에 앉아서 다 쓰지도 못 할 만큼 넓은 밥상을 펴고 밥을 먹다니... 이렇게 풀코스로...

참고로 이 자리의 AVOD 화면 크기는 43인치다. 우리 집 모니터 두 개를 합친 거랑 거의 비슷한 크기다. ㅋㅋ 와..

밥을 먹고 영화를 좀 보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일본 항공사라 그런지 한국어 자막이 있는 컨텐츠는 많이 없었다. 그냥 서울의봄이나 킬링타임용으로 좀 보다가 위스키나 한 잔 더 해야겠다 싶어 위스키도 시키고 혹시 아까 받은 쪼꼬같은 거 또 있으면 한 조각만 좀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이렇게 귀여운 디저트 세트를 준다. 아 진짜 너무 좋다...

배부르게 먹고 술도 마시고 시간도 밤이라 슬슬 잠이 몰려온다. 사실 12시간 반 비행이라고 하면 이코노미라면 지옥같은 시간이었지만 무슨 왕 대접을 받고 있자니 흐르는 시간이 아까워서 자기도 좀 그랬다. 미국에서 시차적응 하려면 최대한 안 자야 하기도 하고... 그래도 잠깐 눈을 좀 붙이고 싶어서 승무원에게 옆자리에 베딩 좀 부탁드렸다.

이 비행기의 퍼스트클래스는 1-2-1 배열인데 가운뎃자리에 사람이 없으면 그 자리를 창가에 앉은 사람의 침대로 만들어준다. 아주 두 다리 뻗고 두 시간 정도를 푸욱 잤다.

자고 일어나니까 뭔가 또 먹고 싶어서 라멘을 시켜봤다. 여기서 라멘을 시키면 인스턴트 잇푸도 라멘을 끓여서 접시에 담아주는데 진짜 이것도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그렇게 또 라멘을 먹고 에어쇼나 보면서 시간을 죽이고 있으니까 두 번째 식사할 시간이 됐다고 한다. 진짜 갇혀서 사육당한다는 느낌이 이런 느낌이었구나 싶었다. 이번엔 양식 코스를 골랐다.

먼 스테이크도 이리 맛있냐... 

내릴 때가 되니까 승무원이 오더니 오늘 이브이제트 탑승 기념으로 이렇게 작은 기념품까지 준다. 진짜 너무너무 귀엽고 항덕 입장에서 너무 좋은 기념품이다. 그리고 아까 입고 왔던 옷까지 깨끗하게 개서 다시 돌려주고... 그리고 영어가 아니라 떠듬떠듬 일본어로 탑승 때부터 승무원과 얘기를 나눴었는데 이 때도 좀 스몰톡을 했다. 한국인인데 어떻게 일본어를 그렇게 잘 하냐, 일본에서 살고 있냐부터 시작해서 (으레 하는 일본인들 특유의 오바스러운 칭찬이겠지만) 뉴욕에는 무슨 일로 가냐, 한국 관광에 대한 얘기도 나누고... 승무원 분들 서비스도 너무 좋고 친절하고 마지막까지 좋은 기억을 남겨주셔서 참 감사한 일이다. 사실 전일본공수는 내가 옛날부터 좋아하던 항공사였다. 기무라 타쿠야가 나왔던 굿 럭! 이라는 드라마의 배경인 회사기도 하고 ANA의 브랜드 음악은 Another sky라는 곡도 좋고... 그런데 이렇게 좋은 기회에 퍼스트까지 탈 수 있었다니 너무너무 운이 좋았고 행복했다.

암튼 그렇게 미친듯이 사육만 당하다 보니 진짜 12시간 반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어느새 내릴 시간이 다 되어 널찍한 화면으로 기외카메라 영상을 보면서 착륙... 장거리 비행이 이렇게 시간가는 게 아까울 줄 생각도 못 했다. 내 인생에 퍼스트를 또 탈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

비행기에서는 내가 왕이었지만 미국 땅을 밟은 시점부터는 이코노미를 타고 온 사람들이나 나나 똑같은 여행자일 뿐이었다. 미국 입국이 다른 나라보다 깐깐한 편이기에 긴장을 좀 해서 영어도 잘 안나오고... 기억은 잘 안 나는데 진짜 너무 쉬운 질문도 잘 못 알아듣고 대답도 이상하게 했던 것 같다. 그래도 입국하는 데 무리는 없었다.

늦은 시간에 도착하는 비행편이라 우버를 쓸까 고민도 했었는데 그냥 한국에서 미리 픽업 택시를 예약하고 왔다. 뉴욕의 심장부 맨해튼의 한 가운데 있는 게스트하우스에 들어가 몸을 뉘였다. 내일부터 시작될 미국 여행은 어떨까 두근두근 설레다가 금세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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