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16 ~ 2022.12.18 오사카.

근 3년만의 일본 방문이었다. 못 해도 매년 한 번씩은 가고 싶었던 일본이었는데 어쩌다 세상이 이렇게 됐는지. 야속하리만치 많은 것들이 변한 3년이었다.

오랜만이라 들떠서 그런지 공항에서부터 우왕좌왕했던 여행이었다. 아침 일찍 비행기라 새벽같이 나갔는데도 사람이 많았던 공항 풍경을 찍고 싶어서 휴대폰을 꺼내려던 찰나... 휴대폰이 없었다. 공항버스에 놓고 내린 모양이다. 어떻게 하지? 친구 핸드폰을 빌려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고, 공항버스 회사 사무실도 새벽이라 그런지 받지 않는다. 인포메이션에 물어봐도 다른 회사 전화번호를 알려준다.

그러다 2터미널까지 갔던 버스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해서 1층의 도착층에 가서 공항버스 매표소에 갔다. 다행히 정류장에서 짐을 실어주는 분들이 버스 회사 직원이니 가서 물어보라는 말에 부리나케 가서 사정 설명을 했다. 바로 무전을 치신다. 일단은 찾을 수는 있겠구나... 출국장에 들어가기 전에 찾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다행히 자기 일처럼 도와주신 덕에 출국장에 들어가야 할 시간을 아슬아슬하게 맞춰 휴대폰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출국하면서 짐 검사를 받는데...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봐야 한단다. 다름 아닌 200ml짜리 스킨로션. 바로 압수당했다. 짧은 여행을 갈 때면 캐리어를 웬만하면 안 가지고 다니는 편인데, 이전 방콕 여행에서는 캐리어를 가져간 터라 액체류에 대한 아무 생각이 없었다. 얼마 쓰지도 못한 아까운 스킨로션을 버려달라고 하고 드디어 출국장에 들어왔다.

이제는 비행기를 타기만 하면 잠이 든다. 예전엔 이륙할 때까지 두근대는 마음으로 기다렸지만... 이제는 그런 거 없다. 이륙하는지도 모르고 눈을 뜨면 어느새 하늘이다.

보고 싶었던 일본의 거리. 아직도 전선 지중화가 되지 않아서 전봇대에 전선이 주렁주렁 달린 모습이 뭔가 좋다.

첫 끼니는 생각지도 못 한 치킨난반이었다. 원래 가려고 했던 규카츠집이 어느샌가부터 맛집으로 소문나 웨이팅을 한 시간이나 해야 하는 곳이 되어버렸단다. 그래서 구글 맵으로 아무데나 찾아서 가려고 했는데, 지도를 제대로 못 봐서 실제로 들어간 곳은 찾은 곳도 아닌 다른 곳이었다.

마치 기사식당마냥 파스타를 커다란 그릇에다 한 솥 삶아놓고 마음대로 가져다 먹어도 되는 곳이었다. 새벽같이 나와 점심 시간까지 아무것도 못 먹은 탓에 친구도 나도 정신없이 흡입을 했다. 똑같이 잘 먹는 모습이 비슷해 보였는지 안 그래도 닮은 친구와 나를 보면서 주인장이 쌍둥이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농담이나 한 번 할 걸 그랬다.

커피도 한 잔 하고 길거리 구경 좀 하다가 숙소 체크인 시간 맞춰 가서 한 숨 돌리고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다시 나온다. 해가 금방 진다는 사실을 알고는 원래 가려던 때보다 일찍 전망대로 향한다.

멋이가 있다. 전에 갔던 전망대는 높긴 높았지만 유리벽으로 막힌 실내라 탁 트인 느낌은 없었는데 여기는 실외로 나갈 수 있어서 더 좋았다.

저녁으로는 죽이는 철판구이집에 가서 하이볼과 맥주를. 숙소에 돌아올 때는 편의점에서 야끼소바 도시락과 캔 하이볼을 한가득. 이게 옳게 된 일본여행이지

다음 날은 라멘 한 사바리 흡입하고 교토에 간다. 둘 다 피곤했던 탓인지 늦잠을 잤다.

비가 와서 그런지 더 호젓하고 운치 있는 아라시야마. 사람이 많아도 고즈넉한 이 느낌..

아직 단풍이 다 지지 않았다. 조금만 더 빨리 올걸 하는 생각도, 다행이라는 생각도 동시에 든다.

중심가에 들어서면 시끌벅적하다. 

빗소리인지 대나무 잎이 흔들리는 소리인지. 기분 좋은 샤르륵 소리가 연신 울린다.

사진 찍느라 계속 친구보다 뒤떨어져 가는 덕분에 항상 뷰파인더 안엔 친구가. 내가 봐도 친구와 닮긴 했다

물감을 덧칠한 듯한 새빨간 단풍잎이 나는 나무가 집 앞에 있는 느낌은 어떨까

아재처럼 꽃 사진도 찍는다.

니조 성에 가려다가 가는 길에 입장 마감시간을 못 맞출 것 같아 그냥 포기하고 중간에 내려서 어느 카페에 들렀다.

이제 다 읽을 수 있다. 순공 3일로 N3 붙은 십덕력이 아직 가시지 않았다.

미친 비주얼의 디저트와 따듯한 커피. 나이 드신 부부가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여느 젊은 사람 못지 않은 식기 고르는 센스와 인테리어가 놀랍다.

내가 좋아하는 철학의 길. 어둑어둑하고 사람도 없어서 뭔가 스산했지만 좋기야 좋았는데... 문제는 길을 다 걷고 나서 가려고 했던 기요미즈데라 마감 시간이 원래 알고 있던 시간인 9시 반이 아니라 6시였다는 것. 11월만 라이트업 기간이라 야간개장을 한다고 하고 12월은 6시에 정상 마감한다고 한다. 이래서 블로그만 보고 여행 준비하면 안 된다.

저녁까지 추적추적 계속 비가 오던 교토. 결국 아쉬운 대로 기요미즈데라 앞의 니넨자카 산넨자카 구경만 했다. 그것도 기요미즈데라 오픈 시간이 끝나자 상점도 하나둘씩 닫고 있는데... 그래도 나름 운치가 있다. 매실 제품 파는 상점에 들어가서 뭘 좀 샀는데 비가 오니까 종이 쇼핑백에 손수 비닐까지 씌워 준다. 식당에서 일하는 친구는 계속 감탄을 연발한다. 이 나라 서비스업은 단순히 교육으로만 되지 않는 뭔가가 있는 것 같다고 .

결국 보려고 했던 건 아라시야마를 빼곤 아무것도 제대로 못 본 교토 방문이 되었다. 니조 성이고 은각사고 기요미즈데라고 후시미이나리고 뭐고 아무것도 못 봤다. 나야 와 본 적이 있으니 그나마 괜찮지만 오사카와 교토가 아예 처음이었던 친구에게는 정말 미안했던 날. 그래도 이게 추억이지, 아쉬움을 남기고 가야 나중에 또 오지 하고 정신승리를 해 본다.

교토에서 유학중인 친구의 지인을 만났다. 원래 기가 막히는 야키니쿠집이 있다고 해서 가려고 했는데 웨이팅이 2시간이란다. 발길을 돌려 회전초밥 집에 갔다.

27접시를 먹었다. 정말 맛있었던 새우 아보카도 초밥

오사카로 돌아와서는 한 이자카야를 찾아 들어갔다. 완전 로컬들이 가는 곳이고, 난바 근처긴 하지만 건물 깊이 숨겨져 찾기도 힘들다는데... 문짝도 우리나라 옛날 다방같은 느낌인 곳이었다. 뭔가 왁자지껄할 줄 알았는데 주인과 직원 단 둘이서 월드컵 준결승을 보고 있다가 우리가 문을 열고 들어가니 화들짝 놀라며 장사 준비를 한다. 바 테이블에 고작해야 7자리 정도 있는 아주 작은 공간이었다.

손님들끼리도 얘기하며 놀고 주인장과도 농담따먹기 하며 술 마시는 곳이니 일본어를 어느 정도 할 줄 알면 무조건 가 보라는 리뷰에 갔던 곳인데 의외로 내게 아무 얘기도 걸지 않는다. 일부러 술 추천 해 달라고, 이거랑 어울리는 안주도 추천해 달라고 나름 여행객 치고는 고급 일본어를 구사했는데도 딱히 말을 걸지 않는다. 어느 새 옆에는 다른 손님들이 앉아 자기들끼리 놀고 있다.

버터관자구이가 기가 막혔다. 완전 맥주 하이볼 안주

다 먹고 계산하고 일어날 때가 되어서야 주인장이 내게 말을 건다. 여행 중이냐고, 한국 사람이냐고 물어봐서 그렇다고 했다. 그랬더니 계속 옆에서 우리에게 말을 걸고 싶은 듯 힐끗거렸던 혼자 온 손님 하나가 에??? 여행중인 한국인?? 근데 왜 이 시간에 이런 곳에...? 하며 놀란다. 단골이어도 그 집에서 여행객을 보는 건 처음인 것 같았다. 주인장은 내게 일본어 죠즈라며 엄지를 세운다. 에이 아니라고 한국식 겸손 한 번 떨어주고 일본 드라마도 좋아하고 음악도 많이 들어서 그런 것 같다고 대답했다. 무슨 드라마를 봤냐는 말에 "음... 한자와 나오키?" 한 번 해줬더니 아~~ 얏빠리~~ 하며 자지러진다.

이것저것 몇 마디 더 나누고 그 옆 손님과도 인사를 나누고서 나왔다. 나중에 꼭 다시 가야지. 이상하게 여기는 후랑크소세지도 맛있었다. 이 나라는 맛 없는게 대체 뭘까.

다음 날 나와서 먹은 타르트. 차가워도 맛있었다. 우유 들어간 건 다 맛있다.

별로 볼 건 없었던 신세카이.

말도 안 되는 색감. 거의 한 층 정도 되는 외벽에다 새빨간 바탕에 가게 이름을 써 놓았는데 왜 촌스럽지가 않을까

죽여줬던 츠케멘.

생각해 보니 오사카를 와서 타코야끼도 못 먹었길래 조금 비싼 감이 있지만 한 입.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 어느 새 공항 가야 할 시간이 되었길래 빠르게 쇼핑을 마치고 마무리로 돈가스와 생맥도 한 사바리.

한국인 정말 많았는데 희한하게 3일동안 갔던 식당과 카페와 이자카야에서 한국인을 한 번도 못 봤다. 이것만 해도 은근히 기분이 좋은 여행이었다. 더구나 실패한 곳도 없었다. 다 맛있었다. 원래 이번 여행의 주 목적은 먹방 식도락이었기 때문에...

그럼에도 특히 교토에서 아무 구경도 못 한 것, 그리고 아무리 꽉 찬 2박 3일이라도 그 동안의 일본여행 갈증을 채우기에는 물리적으로 너무 시간이 짧았던 것이 아쉽다. 금방 또 손이 근질거려 티켓을 끊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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