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 와 보니 로마 일정을 과하게 많이 잡은 듯 했다. 로마 근교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아는게 없어 급하게 검색을 해 봤다. 알고 보니 로마 근교에도 가 볼 만한 곳이 매우 많았다. 그 중에 원조 슬로우시티라는 오르비에토와 그 곳에서 버스를 타면 갈 수 있는 치비타를 하루 다녀오기로 했다.

오르비에토에 도착해 푸니쿨라를 타고 마을로 올라갔다. 낡고 바랜 빛의 건물들이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사람이 그리 많지도 않고 한적하니 좋았다. 어딜 가나 사람들로 바글바글한 로마와는 영 딴판인 분위기였다.

오르비에토에서 파는 파스타가 대부분 트러플까지 뿌려주고 정말 맛있다고 해서 큰 마음을 먹고 레스토랑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런데 내가 간 레스토랑에는 트러플이 들어가는 파스타가 없는 것 같았다. 결국 다른 파스타를 시켰다. 그래도 와인이 유명한 곳이라 해서 와인은 한 잔 시켜 먹었다. 파스타는 그저 그랬지만 와인은 지금껏 마셔 본 와인 중에 가장 맛있는 것 같았다. 사실 와인을 그렇게 많이 마셔본 건 아니지만.

계산서를 들고 깜짝 놀랬다. 3유로의 자리세가 붙어나왔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에서 처음 레스토랑을 가 본 건데 정말이지 자리세라는 개념은 너무 황당했다. 핸드폰도 아닌데 기본료를 그것도 3유로씩이나 받다니 어이가 없었다. 생각보다 지출이 훨씬 커졌다.

고양이를 곳곳에서 봤다. 고양이를 찾는 벽보가 깜찍해서 담아보았다. 나는 깜찍하다고 담았지만 집사는 애타게 고양이를 찾고 있을 것이다. 과연 집사의 품으로 돌아갔을까.

오르비에토에서 치비타는 편도로 한 시간 정도로 걸리는 위치에 있다. 치비타는 지금은 사람이 열명 정도밖에 살지 않는 작은 성으로 된 마을이다. 원래는 사람이 더 많이 살았었지만 지진의 위험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다른 곳으로 이주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성이 정말 아름답다. 천공의 성 라퓨타의 모티브가 된 곳이라고 한다.

치비타에 내려서 성 까지는 걸어서 2-30분 정도가 걸린다. 걸어가는 길에 활짝 핀 수국 무리를 많이 볼 수 있었다. 어쩜 이렇게 색깔이 제각기 예쁜지.

한참 걸어 성이 보이는 곳에 다다르자 입이 쩍 벌어졌다. 엄청난 광경이었다. 움푹 파인 지형에 혼자 우뚝 솟은 언덕과 그 위에 위태로이 자리잡은 아름다운 성. 그림 그 자체였다.

길을 내려가 사진속에 보이는 저 길에 다다르자 높은 곳에 자리한 성이 더욱 가깝게 다가왔다.

거의 등산에 가까운 가파른 오르막길을 걸어 성 안에 도착하자 이곳저곳에 꽃들이 정말 아름답게 피어있었다. 햇빛이 강렬하게 비치는 날씨라 꽃의 본래 색깔이 극한까지 잘 살아났다. 작은 마을이었지만 오랜 시간 천천히 걸으며 기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성 외곽에서는 이렇게 성을 둘러싼 주변 풍경들을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성 주변으로 움푹 파여있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탁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급하게 결정한 근교행이었지만 전혀 후회하지 않았다. '역시 여행은 근교'라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왔다갔다 교통비에 기본료까지 받았던 레스토랑까지 지출은 꽤 많았지만 만족스럽게 여행했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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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에서의 일정을 모두 끝내고 두브로브니크에서 이탈리아 바리로 가는 배를 탔다. 두브로브니크에서 점점 멀어지며 한 눈에 들어오는 불빛 가득한 야경이 좋았다. 하지만 그보다 도시 가로등의 불빛에서 점점 멀어지면서 더욱 선명하게 보이는 하늘에 가득한 별들이 가슴 벅찼다. 살면서 그토록 많은 별을 본 적이 없었다. 목이 뻐근해져 오면서도 하늘로 솟은 고개를 숙일 생각은 한참동안 들지 않았다. 바람이 차갑게 불어도 이런저런 생각에 갑판에 오래 우두커니 서 있었다.

바리에 도착했는데 항구와 기차역까지는 거리가 꽤 있었다. 하지만 데이터도 터지지 않고 와이파이도 잡히지 않아 지도를 볼 수가 없었다. 관광도시가 아닌 탓인지 흔히 있을법한 큼지막한 시내 지도도 없었다. 왠지 모르게 행인에게 묻긴 싫었다. 어차피 시간도 많고, 감을 따라 무작정 걸었다. 가끔은 일부러 길을 잃어도 나쁘지 않다. 기대하지 않은 우연히 만나게 되는 것에서 큰 기쁨을 얻을 때가 많다.

그러나 나의 방향 감각은 정확했고 각종 명품 가게가 빼곡히 들어찬 길을 끝까지 걸어가자 정확히 기차역이 나왔다. 상점들이 문을 열 시간이 되어 유심칩을 사고 주변을 배회했다. 바리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다. 그저 앉아서 사람들 지나가는 것을 한참동안이고 구경했다.

로마에는 밤 10시가 넘은 시각에 도착했다. 테르미니 역의 악명은 출발하기 전부터 익히 들었어서 몸에 잔뜩 긴장을 한 채로 기차에서 내렸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캐리어도 없고 머리도 덥수룩한 거지꼴의 동양인에게 시비를 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음날부터 본격적으로 로마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먼저 콜로세움과 포로로마노를 먼저 가보기로 했다. 콜로세움과 포로로마노, 팔라티노 언덕은 입장권을 꼭 통합권으로 사야 하는데, 콜로세움에서 사면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고 해서 팔라티노 언덕에서 표를 샀다. 그래도 꽤 많이 기다렸다. 한 시간 정도는 줄을 섰다.

사진으로만 봤던 콜로세움. 역시 웅장했다. 사람도 정말 정말 많았다. 콜로세움은 나중에 들어가 보기로 하고 표를 산 곳인 팔라티노 언덕부터 먼저 입장했다.

얼마정도 가면 대전차 경기장이 나온다. 옛 로마에 대해선 아는 바가 많이 없어 가이드를 몰래 엿듣기도 하고 안내판은 유심히 읽어보았다. 그래도 가장 효과가 좋았던 방법은 '상상하기'였다. 대전차 경기장에서는 전차 경기를 하는 모습을 상상하고, 집터에서는 이 곳 집에서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러니 2천년의 시간동안 이 곳에 남아있는 이 유적들이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새삼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다.

팔라티노 언덕으로 입장해 계속 걸어가면 포로 로마노가 나온다. 자연스럽게 이어져 있다. 그런데 너무 목이 마르고 힘들어서 포로 로마노는 좀 쉬고서 보기로 하고 일단 출구를 찾아 나왔다.

이것이 얼마나 바보같은 짓이었는지는 다시 포로 로마노에 입장을 하려고 했을 때 알게 되었다. 당연히 세 곳의 입장권이 통합이 되어 있으니 각 세 곳의 입구에서 한번씩 입장이 가능한 줄 알고 있었지만 포로 로마노와 팔라티노 언덕은 안쪽이 이어져 있으니 둘 중 한 곳에서만 입장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사실이었다. 누굴 탓할 수도 없었다. 결국 포로 로마노는 자세히 보지 못하고 로마를 떠나야 했다.

한숨을 푹푹 내쉬며 콜로세움이나 보자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과연 밖에서 보던 대로 엄청난 규모를 자랑했다. 그냥 한바퀴 빙 둘러 걷고서 기념품점에 들어갔다. 정말 예쁜 엽서가 있어 두 장을 샀다.

느즈막히 둘러봤더니 시간이 늦고 지치기도 해 일찍 숙소에 들어갔다. 다음날에는 바티칸에 갔다. 숙소에서 한 시간을 열심히 걸어 도착한 바티칸에는 정말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사진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시스티나 대성당에 입장하려고 늘어선 줄이 옆으로 빼곡하게 차 있었다. 처음에는 무슨 줄인지도 모르고 냅다 가서 섰다. 전날 팔라티노 언덕에서 기다린 것보다 더 오랫동안 기다렸다.

원래 성당은 지금까지 하도 많이 봐서 별 관심이 없었지만 이 곳 시스티나 대성당은 정말이지 압도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들어서자마자 놀라움이 섞인 탄성을 질렀다. 넓기도 정말 넓었고, 황금으로 장식된 천장과 이곳저곳이 너무 화려했다. 사람도 정말이지 많았다. 이곳에서 미켈란젤로가 조각한 피에타를 보았다.

성당을 둘러보고 나와서 당연히 박물관과 이어진 길이 있을 줄 알고 이리저리 둘러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좀 더 공부를 해서 갔어야 했다. 결국 성당 구역을 빠져나와 바티칸을 빙 둘러 반바퀴를 걸은 후 박물관 티켓을 사기 위해 한참동안 줄을 또 서야 했다.

거의 티켓판매 마감 시간에 도착해서 여유롭게 관람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완벽한 오산이었다. 이 곳이 박물관인지 시장바닥인지 전혀 구분을 할 수가 없었다. 스무명 서른명씩 짝을 지은 가이드 투어 팀이 셀 수 없이 많았다. 원래 큰 관심이 없는 박물관이었지만 워낙 유명한 탓에 한번은 가볼까? 하고 간 곳이었지만 정말이지 그 어느것도 집중해서 볼 수가 없었다.

대실망이었다. 게다가 늦은 시간에 가니 반 가까이 되는 방은 문을 닫았다. 관람시간은 두시간 가량 남았는데도 말이다.

딱 하나 좋았던 것은 바로 이 나선형 계단이었다. 아름다운 디자인이었다. 계단 벽의 저 조각상들이 계단 위에서나 아래에서나 잘 보이는 것도 신기했다.

트레비 분수에 갔다. 분수도 크고 사람도 많아 마치 수영장을 보는 듯 싶었다. 가까이 갈 엄두도 나지 않아서 동전을 던지지는 못했다. 사실 별로 던지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까지 다시 오고 싶은 곳은 아니다. 로마에 대한 이 박한 평가만은 그나마 양심의 가책을 조금 덜고 말할 수 있다. 그동안 여행하면서 만난 사람 중 로마가 마음에 들었다고 말한 사람은 단 한명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숙소 덕분에 로마가 크게 나쁜 곳으로 기억되지는 않았다. 가격도 저렴한데다가 저녁 8시에 공짜로 파스타를 해 주는데, 덕분에 로마에서는 먹는데 거의 돈을 쓰지 않았다. 게다가 파스타를 먹는 동안 다른 사람들이랑 얘기도 많이 했다. 트럼프와 브렉시트 얘기를 할 때는 알아듣긴 알아듣는데 내 생각을 말을 못하겠어서 영어 공부의 필요성도 절감했다. 이탈리아와 독일의 유로2016 경기가 있던 날에는 '이탈리아를 응원하지 않으면 엉덩이를 걷어차 버린'다는 호스텔 직원들의 유머스런 성화에 신나게 응원을 했다. 승부차기까지 가는 대접전 끝에 결국 이탈리아가 져서 모두 풀이 죽었지만 재미있는 기억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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