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스에서 일어난 테러 소식에 작은 두려움을 안은 채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바로 뉴스를 확인해 보니 다행히 간밤에 파리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았다.

점심은 까르푸 익스프레스에서 파는 4유로짜리 파스타 세트로 때웠다. 파리에서 이것보다 값싸게 끼니를 해결할 방법은 아무래도 없는 것 같았다. 보통 다른 도시에서는 2-3유로짜리 케밥이면 한 끼를 든든하게 채울 수 있었는데, 여기는 케밥 하나도 6유로가 넘어가니 이런 마트의 싸구려 도시락 아니면 답이 없었다. 조금 차가워서 그렇지 맛은 그래도 그럭저럭 먹을 만 했다.

몽마르트 언덕에 가기 위해 구글맵을 찍고 출발했다. 가는 길에 홍등가는 아닌데 온갖 스트립 클럽과 성인용품점, 유흥업소가 가득한 거리를 지나가게 되었다. 호객꾼이 나를 부르는 소리도 종종 들렸다. 음악에 심취한 척 하며 들리지 않는다는 듯이 미동도 하지 않고 걸어갔다. 조금이라도 가게에 눈길을 주면 금방이라도 호객을 시작했기 때문에 앞만 보고 걸었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곳은 몽마르뜨 언덕이 아니었다. Cimetière de Montmartre, 몽마르트 묘지였다.


원래 이 곳에 오려고 한 건 아니었지만 찬찬히 둘러봤다. 우리나라 묘와는 많이 달랐다. 뜻은 모르지만 묘비명을 읽어보기도 하고, 간간히 보이는 망자의 사진도 유심히 보았다. 시간은 어긋났지만 한 때 내가 지금 서 있는 도시에 살았던, 알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명복을 빌며 묘지를 빠져나왔다.


묘지 앞의 벤치에 앉아 쉬고 있을 때 고양이를 만났다. 고양이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보며 땅바닥에 배를 깔고 한참을 있었다. 도도한 눈빛이 마치 프랑스인들을 닮은 것 같았다.


다시 와이파이를 잡고 몽마르트 언덕을 찾았다. 몽마르트로 검색하면 왠지 제대로 나오지를 않아서 언덕 위에 있는 사크레쾨르 대성당으로 검색을 했다.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 중턱에서는 뭔가 모르게 활기차고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다. 개인적으로는 이틀동안 파리를 돌아다니면서 어딘가 차갑고 뭔가 소외되는, 외로운 느낌을 받았었는데 여기엔 예쁜 가게들도 많고 관광객들도 많아서 그런지 북적이고 살짝 익숙한 기분이 들었다. 벽도 고개를 내밀고 내게 인사를 건네주었다.


올라가는 길 중간에 세계 100개가 넘는 언어로 '사랑해'라는 말이 써져있는 벽이 있다고 해서 먼저 들렀다. 파랗고 반짝이는 벽 위에 온갖 언어로 적힌 '사랑해'가 있었다.

한국어로도 당연히 '사랑해'가 적혀 있었다. 다른 관광객들을 보니 자기 나라 언어의 '사랑해' 앞에서 사진만 몇장 찍고 돌아가는데, 나는 왠지 이 곳을 빨리 뜨고싶지 않았다. 아마 이 벽 앞 벤치에서 한 시간 정도를 보냈던 것 같다. 내가 아는 말을 세 보았다. 한 열몇개 정도 되는 것 같았다. 잘 모르지만 왠지 비슷해보이는 언어도 찾아보았다. 세상 사람들은 사랑한다는 말을 어떻게 말할까 궁금해서 말이다.

그냥 생각도 좀 했다. 이렇게 많은 언어들이 모두 같은 뜻이라니. 하지만 진짜로 같을까, 같은 '사랑해' 라도 말하는 사람에 따라 그 속에 담긴 감정들, 느낌들, 사랑하는 이유,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런 것들은 모두 다를 것이라는. 말이 무슨 소용이고 언어가 무슨 소용인가 하는 뭐 그런 생각들. 그저 마음을 담는 그릇일 뿐인 '말'로는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생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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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라켄에서의 일정을 끝내고 파리로 출발하는 날이었다. 보통 스위스에서 프랑스로 가는 기차는 거의 바젤을 경유하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바젤에서 파리로 가는 기차만 미리 예약을 해 놓은 상태였다. 스위스 국내선 열차는 출발 약 한달 반 전부터 예약이 가능하기 때문에, 여행을 출발하고 나서야 인터라켄에서 바젤로 가는 티켓을 예약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귀신에 홀린 듯 한달 전에 예매한 티켓 시각을 확인해 보지도 않고 한시 출발 기차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출발하는 날 아침을 먹으면서 느긋하게 티켓을 확인해 보았는데, 아침 10시에 출발하는 기차를 예약했더랬다. 그 때의 시각은 이미 10시 반을 넘어가고 있었다.

어마어마한 표값을 자랑하는 스위스답게 한시간 남짓 걸리는 구간인데도 3만 5천원 돈을 다시 써야 했다. 뭐 하나 슈퍼에서 사 먹으려 해도 천원 차이에 갈등을 하는 나인데. 여행이 길어질수록 마음도 풀어지고 이런 실수도 점점 잦아진다.

파리에는 밤 10시에 가까워져서야 도착했다. 지하철을 타고 숙소로 갔는데, 분명히 조명으로 밝게 빛나야 할 숙소는 그 어디에도 불이 켜져있지 않았다. 심지어 리셉션에도 불이고 뭐고 모두 꺼져있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 두리번거리던 순간 숙소 가드가 와서 투숙객이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했더니 돌아온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건물 전체에 정전이 되어서 지금 체크인이 불가능하고, 아마 세 시간은 족히 기다려야 체크인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밤이라 어딜 갈 수도 없었고 리셉션 앞에 쪼그려 앉아 두 시간을 꼬박 기다려야 했다. 그러고 나서야 임시로 문을 열어 줄테니 불이 꺼진 방에 일단 들어가라고 하는 것이었다. 화를 낼 기운도 없고 너무 피곤해서 옷도 갈아입지 않고 그대로 잠이 들고 말았다.

다음날은 7월 14일, 프랑스의 혁명기념일이었다. 여행 계획을 짤 때부터 이 날은 꼭 파리에서 지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혁명기념일에 에펠탑에서 펼쳐지는 불꽃놀이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밤에는 불꽃놀이가 펼쳐지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아침에 샹젤리제 거리에서 퍼레이드를 한다는 건 까먹고 있었다. 결국 아침에 늑장을 부리는 바람에 퍼레이드는 아쉽게 놓치고 말았다.


퍼레이드가 끝난 샹젤리제 거리에는 사람이 매우 많았다. 소매치기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울 도시 파리에서, 게다가 혁명기념일의 샹젤리제 거리라니. 온 몸에 긴장을 빡 넣은 채로 거리를 돌아다녔다.

거리의 끝자락에는 통신사 매장이 있어 유심칩이나 살까 하고 들어가 보았다. Sfr 매장에 먼저 들어가 보았다. 5일동안 2~3기가 정도 쓸까 싶어 그 정도의 데이터 양이 들어 있는 유심을 찾는다고 말했더니 지금은 재고가 없어서 저녁이나 다음날에 오라고 했다. 그 다음엔 Orange 매장에 들어가서 10유로 전후로 2기가 정도 쓸 수 있는 유심을 달라고 했다. 그런데 여행자용으로 나온 29유로인가 39유로 짜리의 로밍 가능한 비싼 유심만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어떤 유심이 있는지 모르면 분명히 호구잡힐 가능성이 다분하기 때문에 유심을 사기 전 구글에서 프랑스 유심에 대한 정보를 알아가지고 갔다. 다른 상품 있다는 거 알고 있다고 돌직구를 날려도 무작정 잡아떼고 그 비싼 여행자 전용 요금제 유심만 살 수 있다고 했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냥 나왔다. 비싼 상품만 있다고 하면 그냥 다들 덥석덥석 사니 그것밖에 없다고 말하나보다. 그리고 태도도 매우 불친절했다. 만약 샹젤리제 거리에서 유심칩을 살 거면 Orange 매장은 안 가는게 낫다. Sfr 매장이 훨씬 친절했다.

이런 불친절한 나라에서는 유심을 사는것도 아까워서 그냥 5일동안 데이터 없이 돌아다니자고 결심했다. 밤에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서는 에펠탑 앞에 있는 마르스 광장에 4~5시부터 자리를 맡고 앉아있어야 했기 때문에, 그 시간이 되기 전까지 계획 없이 무작정 그냥 돌아다녔다.


샹젤리제 거리와 개선문을 지나 발 닿는대로 걸어다니다 보니 저 멀리 에펠탑이 보였다. 강을 건너서 에펠탑이 있는 쪽으로 가려고 했는데 몇몇 다리들은 불꽃놀이 행사를 준비하느라 통제를 하는 것 같았다. 빙 돌아서 마르스 광장 앞에 도착했다. 가다가 돗자리를 깔고 앉아있는 열 명이 넘는 한국인 무리들을 보았다. 반가워서 얘기하는 걸 몰래 엿들어봤는데, 나이는 서로 비슷해 보이는데 존댓말을 하는걸로 봐서는 아마 오늘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 번개로 모인 사람들 같았다. 나는 껴달라고 할 용기도 없었고 딱히 그러고 싶지도 않아서 그저 혼자 걸었다.

마르스 광장의 문 앞에서는 사람들이 가득 모여 있었다. 원래 4시쯤 문 개방을 한다고 들었는데, 5시가 지나도 문을 열지 않자 사람들이 항의를 하기 시작했다. 5시 반쯤 문이 열렸는데, 열리지마자 사람들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부리나케 달리기 시작했다. 나도 사람들이 뛰는 방향으로 같이 뛰어갔다. 그 순간 묘한 행복감이 느껴져 피식 웃었다. 사실 방구차를 본 적도 거의 없고 따라가본 적은 한 번도 없지만, 머나먼 타지에서 흙먼지를 날리며 같은 방향으로 같이 뛰어가니 꼭 어린 시절 친구들과 방구차를 따라가는 것 같았다.

거대한 에펠탑 앞에 넓게 펼쳐진 마르스 광장 앞에는 무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오케스트라와 성악가의 이런저런 공연을 보며 하염없이 앉아 시간을 때우니 어느덧 하늘은 어둑어둑해지고 에펠탑에는 조명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오른쪽 아래 두 사람이 없었다면 더욱 깔끔한 사진이 될 뻔했는데. 광장에 있는 거의 모두가 앉아있었지만 저 두사람은 용케도 꿋꿋하게 서 있었다. 에펠탑에 조명이 들어오자 많은 사람들이 카메라를 꺼내들고 저 아름다운 모습을 담으려고 했지만,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카메라 앵글에도 저 두 사람이 잡혔을 것이다. 뒤에 앉은 사람들이 저 둘에게 앉아! 앉아! 를 연호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저 남자는 쿨하게 엿을 날리며 앉지 않았다. 정말이지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이게 프랑스구나, 이게 프랑스인이구나. 하지만 어느 덩치 큰 흑형이 물병을 집어던지며 속사포 랩을 하니 그제서야 앉더랜다.

열한시가 다 되어갈 때쯤 라 마르세예즈(La Marseillaise) 가 흘러나오자 사람들이 기립해서 모두 따라부르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불꽃놀이가 시작되었다.


그저 불꽃만 터지는 것이 아니라 음악이 같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불꽃은 마치 각각의 음악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 마냥 음악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 맨 처음에는 여자 소프라노의 노래가 흘러나왔는데, 두 귀를 가득 채우는 음악과 에펠탑을 휘감으면서 터지는 불꽃이 얼마나 조화롭고 아름다운지 정말로 눈물이 맺혔다. 생애 그렇게 아름다운 불꽃놀이는 처음이었다.

한 시간 조금 안되게 진행된 불꽃놀이가 끝나고, 엄청난 인파를 헤쳐가며 숙소로 돌아갔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 상황에 도저히 메트로는 탈 수 없겠다 싶어 걸어서 한시간 반 거리인 숙소까지 터덜터덜 걸어갔다. 숙소에 도착해 와이파이를 연결하고 네이버에 들어가보니 프랑스 남부의 니스에서 벌어진 혁명기념일 행사에 테러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정말이지 소름이 끼쳤다. 사실 불꽃놀이를 보면서도 테러를 당하지는 않을까 걱정도 하고 그랬었는데, 파리에 일어나지 않았다 뿐이지 프랑스에 정말로 테러가 발생했다니.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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