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서 Y에게 받은 누룽지나 끓여먹으려고 주방에 내려갔는데 아침이 차려져 있었다. 원래 아침식사가 없는 호스텔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땡잡았다 생각하고 신나게 가져다 먹었다. 그런데 갑자기 직원으로 보이는 여자가 와서 방과 침대 번호를 묻더니 너 결제 안했다고 뭐라고 하는 것이다. 아니 그러면 Breakfast 얼마라고 좀 써붙여나 놓던가. 체크인할 때도 아침은 얼마이니 식권을 사서 이용하면 된다 라는 말은 없어서 그냥 먹어도 되는 건 줄 알았다. 예정에도 없는 4유로 지출이 생겼지만 그래도 엄청 든든하게 먹어서 손해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숙소 거의 바로 옆에 알카사르가 있었다. 사실 그라나다에서 알함브라를 가려다 만 이유 중에는 세비야에서 알카사르를 가기 때문에 그런것도 있었다. 알카사르에 대해 좀 찾아보니 알함브라에 있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어보였기 때문이다. 아무튼 알카사르 안에서는 물 같은 것을 살 곳이 없다고 해서 물을 사서 들어가려고 주변의 슈퍼를 찾았는데, 슈퍼에서 물 500ml 한 병을 1유로에 판다. 이런 양아치같은 놈들. 관광객 많은 구시가라고 슈퍼에서도 물을 이 가격에 팔고 있다. 웃긴 것은 파워에이드도 똑같이 1유로여서 차라리 그걸 사먹었다.

이런 흙빛 담벽을 지나 안의 건물로 들어가면

이렇게 멋있는 안뜰? 안채? 가 나온다. 양 옆에 조그맣게 심어져 있는 나무도 귀엽고 저 아치모양 주변에 있는 정말 정교하고 깨알같은 무늬들도 신기하다. 하지만 그 이상의 큰 감흥은 없었다. 아무래도 알함브라를 안 갔던 게 잘 한 일이 아니었나 싶었다. 건물 2층에 가면 이슬람식 유리 타일을 전시해 놓은 곳이 있었는데, 그것들은 예뻤다. 스페인은 보면 볼수록 참 알 수 없는 곳이다. 이런 것도 스페인같고, 저런 것도 스페인같다. 분명 저 이슬람식 유리 타일도 스페인 본연의 것은 아니지만 스페인의 향기가 났다.

알카사르에 딸린 이 정원이 엄청 크다고 해서 가 보고 싶긴 했는데 입장료가 9.5유로라는 말을 듣고 포기할 뻔 했다. 그런데 학생은 무려 2유로였다. 들어와 보니 한적하고 좋았다. 꽃이나 예쁜 식물들이 좀 많길 바랬었는데 그런 건 많이 없고, 공작새를 풀어놓아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희한한 광경을 보았다. 사람이 좀 가까이 다가가도 피하지 않는다. 키가 커서 거의 내 엉덩이 높이까지 오는데도 그냥 풀어놓다니. 동물원에서도 철장 안에 있는 것만 봐야하는데 참 특이한 경험이었다.

날씨도 너무 덥고 갑자기 커피가 너무 생각이 나서 폴란드에 이어 두 번째로 스타벅스에 갔다. 아메리카노를 시켜 야외 테라스에서 커피와 담배를 즐기며 릴랙스하고있던 찰나에 어떤 거지가 와서 '치노' 거리면서 컵을 내밀었다. 좋은 말로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해도 모자랄 판에 치노? 미쳤나.. 라고 나지막이 내뱉고서는 고개를 돌리니 나를 째려보며 내 발을 차고 간다. 이건 무슨 상황이지?? 정말 어이가 없었다. 이 동네 거지들은 다 이렇게 당당한건지 아님 내가 중국인같아서 우스워 보였던건지. 그냥 거지는 아니고 뭔가 집시처럼 보였는데 역시 집시들이 상전이었다.

그냥 동네 슈퍼 말고 스페인의 슈퍼마켓 체인점인 슈퍼에서 물을 사야했다. 침대 머리맡에 물 큰거 한 통 놓고 계속 마셔줘야 하는데 온통 관광객들에게 바가지 씌울 작은 물만 팔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슈퍼도 찾을 겸 세비야 이곳저곳을 다니기 시작했다.

세비야의 건물들은 빨간색, 노란색 등 따뜻한 원색의 색깔을 머금고 있었다. 골목은 역시 소문대로 좁고 미로같았다. 사람 두 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듯 한 골목을 그냥 지도 없이 떠돌아다녔다. 기념품점에선 다양한 종류의 엽서를 팔고 있었는데, 그 동안의 역대 '세비야의 이발사' 오페라의 포스터 같은 느낌의 엽서들을 많이 팔고 있었다. 너무 예뻐서 몇 장 샀다.

세비야 대성당도 숙소 바로 옆에 있었다. 종탑은 거의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그것과 높이가 비슷할 만큼 매우 높았고 웅장했다. 기독교와 성당에 딱히 큰 관심이 없는 나는 역시나 외관만 스윽 보고 지나쳐갔다.

세비야에는 마차가 많이 다녔다. 이 땡볕에서 죽도록 손님을 나르는 건 말이고 돈을 버는 건 마부이니 얼마나 억울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비야에서 가장 좋았던 것을 꼽으라면 아마도 숙소일 것이다. 스페인 광장도 멋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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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6 72.24€ (방값 43.2€, 버스 표 25.82€)
7/27 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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