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처없이 걷다가 집에 들어가기 전에 이유 없이 아파트 뒤에 있는 뒷산에 올라가고 싶어졌다. 안 그래도 경사가 높은데다가 차고 건조한 겨울이라 그런지 흙이 말라있고 또 푸석푸석해 길이 미끄러워 올라가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어느 정도 올라가 숨을 돌리며 뒤를 돌아봤더니 이미 14층 아파트 높이보다 조금 더 올라가 있었다. 별로 힘들지 않았지만, 만약 내가 아파트 1층에서부터 시작해 계단으로 14층까지 올라갔다면 "아직도 5층이네.. 아직도 8층이네.. 힘들고 지루해 죽겠다" 하며 분명 푸념을 내뱉었을지 모르는 일이다. 목표도 생각도 없이 땅바닥만 보고 걸어 올라왔지만 그냥 그렇게 올라와 보니 아파트 꼭대기보다 높이 올라왔듯이, 어쩌면 종종 어떤 것이든 목표도 생각도 없는 편이 나을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중요한 것은 아파트 14층 정도의 높이를 혼자 걸어 올라간다는 것 그 자체이지 아파트의 14층 명패를 보는 것이 아니니까. (물론 내가 뒷산에 올라가고 싶었으니까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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