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나와 같이 횡단열차를 탄 할아버지는 잘 때 빼고는 하루 종일 라디오를 틀어놓곤 했다. 나에게 아이스크림을 사 줬던 친절한 Kungurian 무리들과 같이 점심을 먹고 쉬고 있었는데, 라디오에서 어떤 뉴스를 듣더니 '까레야 까레야!' 하면서 나를 보고 웃는 것이었다. 한국에 대한 얘기가 나왔나보다 해서 어떤 뉴스냐고 물어보았다.

번역기에 뉴스 내용을 쳐서 나에게 보여줬는데, 'South Korea came from hangover ice cream' 이라고 번역되어 있었다. 번역기라 어법이 정확하지 않은 건 둘째 치고 대체 hangover ice cream이 뭔지 이해가 가지 않아서 그냥 하하 웃고 말았다.

두어시간 흐른 뒤 페이스북을 켜고 이것저것 뒤적이고 있는데, 한국에서 '견뎌바' 라는 숙취 해소 아이스크림이 나왔다는 기사를 보았다. 무슨 북한이 한국을 공습했다는 뉴스도 아니고, 숙취 해소 아이스크림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한국 매체에서보다 러시아에서 먼저 들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모르긴 몰라도 러시아인들은 이 정도로 음주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2.

들렀던 도시마다 뭔가 기록을 남기고 싶어, 도시마다 하나씩 내가 만났던 사람의 'Favorite Quotes' 를 받을까 했다. 결국 귀차니즘으로 인해 러시아에서 만났던 안나와 첸에게 받았던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었다.

브라질에서 온 안나에게 내 노트를 주며 Quote를 써달라니깐 뭘 한바닥 쓴다. "Quem bebe sem brindar, fica sete anos sem transar. (If you drink without toasting, you don't get laid for 7 years.)" 라는 미신을 쓰며 이걸 피하기 위한 Instructions 까지 상세하게 적었다. 이걸 알았으니까 이제 포르투갈어로 건배를 해야되는 건가.. 이미 안하고 꽤 마셨는데.

홍콩에서 온 첸은 "Always remember the people who love you and care about you." 라는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말을 써 주었다. "난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을 더 많이 생각하는 것 같은데..?" 라고 했더니 그것도 물론 좋다고 했다. 그렇지만 그 반대도 꼭 필요하다고 했다. 사실 말은 저렇게 했지만 두 방향 모두 별로 자신이 없다.


#3.

탈린에서 석양을 바라볼 때였다. 해가 수평선에 걸려 바다 뒤로 숨을 즈음엔 그리 눈이 부시지 않아 계속 쳐다보고 있었는데, 일몰 시간이 거의 다 되어선 30초만 지나도 해의 크기가 작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순간 영락없는 이과생은 지구의 자전을 실감할 수 있었다. 갈매기 말고는 아무것도 움직이는 것이 없어 보이는, 평화로운 바다와 하늘 속에서도 나는 주변의 모든 것과 함께 초속 400m가 넘는 속도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움직이지 않는다고,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정말로 그런 것인가.


#4.

로마에 있는 ATM에서 돈을 뽑으려고 했는데 통장에서 돈만 빠져나가고 현금은 나오지 않았다. 주말이라 은행도 문을 열지 않았다. 현지인의 도움을 받는 것을 매우 꺼려하는 내가 무려 두 사람에게나 도움을 요청하고 ATM에 써진 전화번호로 전화도 걸어 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더 문제가 된 것은 바로 그 일이 카드 복제의 빌미가 된 것 같다는 점이다. 바르셀로나에 있을 때 갑자기 카드 승인도 안 되고 인출도 안 되어 카드사에 연락을 했는데, 로마의 그 고장난 ATM에 카드복제기가 설치되어 있었다는 걸로 예상된다고 했다. 복제된 카드로는 400만원이 넘는 금액을 40번 넘게나 승인 요청을 했다고 한다. 아무리 조심해도 벌어질 일은 벌어진다.


#5.

피렌체 시내를 걷다가 목이 너무 말라서 물을 살 슈퍼마켓을 찾아보고 있었다. 구글 지도를 띄워놓고 핸드폰을 보면서 걷던 중에 땅에 그림을 늘어놓고 파는 잡상인의 그림을 밟았다. 핸드폰 너머로 형형색색의 그림들이 희미하게 보이자마자 '시발!' 외마디 욕을 뱉으며 팔짝 뛰어 걸음을 뗐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잡상인은 조용히 다가와 내가 밟은 그림 두 개를 집으며 '완, 투, 헌드레드 유로' 라고 나지막이 말했다. 1유로 쓰는 것도 고민하는 나에게 헌드레드 유로라니, 죽으라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쏘리... 아돈햅 머니 플리즈...' 라고 연신 사과를 했다. 돈을 내놓으라는 잡상인과 미안하긴 하지만 헌드레드는 너무 과하다는 나의 실갱이가 조금 이어지자, 잡상인은 한숨을 쉬며 나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았다.

한국인이라고 말 하는게 부끄러웠던 건지, 중국인이 그토록 싫었던 건지 무의식적으로 '차이나'가 튀어나왔다. 그 후로 조금 실갱이를 더 하다가 갑자기 농담이라며 그냥 가란다. 이 때가 여행 전체를 통틀어 가장 심장이 떨어질 뻔한 기억이었다.


#6.

돈이 점점 바닥이 나고 남은 날짜도 점점 줄어드는 요즘 자꾸 창 밖을 바라보면 종종 우울한 기분이 든다. 만약 슬픈 노래라도 한 곡 반복으로 듣고 있노라면 눈물까지 살짝 나오기 마련이다. 이 일기장을 만약 10년 뒤에 본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했다. 마음이 무뎌지고 무얼 봐도 감흥이 없다고 외치는 22살의 이 여름을 32살의 내가 바라본다면 과연 무슨 말을 할까.

'설령 파도가 치지는 않을지언정 네 마음의 호수에는 어두운 파란 빛의 물일지라도 무언가 차 있지 않니, 지금 내 가슴은 완전히 메말라 버렸어.'

익히 듣는 어른들의 사는 이야기는 이런 말을 상상하게 한다. 그렇게 어른이 되어가고 싶지는 않다. 그것은 내가 제일로 두려워하는 것이다. (7/13 일기 중)


#7.

스플리트에서 매우 무더운 날에 땀에 젖어 걷다가 정수리에 새똥을 맞은 적이 있다. 인터라켄 숙소에서 만난 친구와 여행 중 고생했던 얘기를 하는데, 당연히 이 새똥 얘기도 꺼냈다. 집에 갈까 심각하게 고민할 만큼 나에겐 너무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웠던 날이기 때문이었다.

그 친구는 놀라운 얘기를 꺼냈다. 땀을 흘리고 숙소로 샤워하러 돌아가는 길에 새똥을 맞아서 다행이지 않냐고. 만약에 미술관에 가는 중이었는데 새똥을 맞았다면 어쩔 뻔 했냐는 것이었다. 내 머리로는 정말로 이해가 되지 않으면서도, 세상을 이렇게 바라보는 사람도 있구나 하며 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살짝 부럽기도 했다. 많이는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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