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흑인 노예가 해방된 지 아직도 2백년이 채 지나지 않았다. 링컨이 노예 해방을 선언한 해가 1863년이다. 법적으로 노예제를 금지하는 수정헌법은 1865년에 통과되었지만 그 순간에도 모든 노예들이 실질적으로 자유를 얻은 것은 아니었다. 조선에서 고종이 즉위한 해가 1863년이니 조선왕조가 끝나갈 무렵에도 흑인들은 인간다운 대접을 받지 못하고 노예로 살았던 것이다.

노예라는 것은 소, 말, 닭 같은 가축과 같이 돈으로 거래가 가능한 일종의 재산으로 여겨졌다. 그런 노예들이 인간의 모습을 가졌고, 인간의 말을 알아듣고 할 줄 안다고 해서 주인들이 노예를 자신과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했을까? 반기를 든다면 오늘 저녁으로 먹을 닭을 잡듯이 그냥 죽이거나 패버리는데 말이다. 그렇게 노예는 말을 할 수 있지만 말을 할 수 없으니 그냥 소나 말과 다를 바가 없었겠다.

유명한 관광도시에서는 마차를 끄는 말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무더운 날씨에 눈 옆에 가리개를 한 채 주인의 돈벌이를 위해 앞만 보고 달리는 말들을 보면 왠지 모르게 측은한 마음이 든다.

사상의 변화로 흑인 노예들이 가축의 영역에서 인간의 영역으로 옮겨지고 인간 대 인간으로 소통할 수 있게 된 것처럼, 이번에는 만약 기술이 발달해서 동물의 감정이나 생각을 읽고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되면 어떨까 생각을 했다. 마차를 끄는 저 말들은 아마 듣도보도 못한 욕을 쏟아내지 않을까 싶다. 솔직히 말의 생각을 알지 못하는 지금도 명령에 의해 마차를 끄는 말들이 기분이 좋을 것이란 생각을 누가 하겠는가. 그저 일말의 저항도 안 하고 묵묵히 끌으라면 끌으니까 부려먹는 거겠지.

말의 머리에 달린 번역기를 통해 온갖 쌍욕이 섞인 말의 생각이 방송이 된다면 아마 관광도시에서는 더 이상 마차를 볼 수 없을 것이다. 만약 꽃을 꺾을 때 사람이 총에 맞아 죽을 때의 괴성이 들린다면 누구도 꽃을 꺾지 않을 것이다.

많은 진심과 진실은 들리지 않는 곳에 파묻혀 있다. 번역기가 없어도 말의 욕과 꽃의 괴성을 들을 줄 아는 사람이 되고싶다. 고기 먹을 땐 빼고. 이 가식적인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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