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지만 내 과거 경험으로 이 글을 시작하려 한다.

나는 2014년에 주식 투자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다. 1년 반이 넘는 시간동안 이익도 나고 손실도 나면서 딱히 많이 벌거나 잃은 것도 없는 상태였다. 그러던 2016년, 해외선물이라는 것에 대해 알게 되었고 외환 선물거래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선물거래는 주식거래에 비해 레버리지가 어마어마하게 높다. 주식거래에서는 (신용거래를 하지 않는 이상) 내가 250만원을 가지고 있으면 딱 250만원어치의 주식만 살 수 있다. 하지만 선물거래에는 증거금이라는 개념이 있어서, 내가 보증금 명목으로 250만원 정도를 가지고 있으면 약 1억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 그러니까 내가 가진 돈의 40배 가량 되는 돈을 베팅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거대한 레버리지가 주는 유혹을 나는 이겨낼 수 없었다. 조금만 선물 가격이 움직여도 몇 만원, 몇십 만원 이익을 보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때문에 나는 하루 종일 선물 가격의 변동을 확인하느라 내 할 일을 할 수가 없었다. 당시에는 회사에서 인턴을 할 때였는데, 들키지 않기 위해 핸드폰의 화면 밝기를 최소로 해 놓고 1분이 멀다하고 선물거래 화면을 확인하는 데 온 정신이 팔려 있었다. 거의 내 전 재산의 반절 가까이 되는 돈을 투자해놓고, 그 돈이 단 몇 시간, 아니 몇 분 만에 반토막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그런 위험은 '어쩌면 엄청나게 벌 수도 있지' 라는 환상 아래 금세 잊혀지게 되었다.

그렇게 해피엔딩으로 끝나면 좋았을 일이지만, 거대한 금융시장은 이 작은 초보 대학생 투자가가 쉽게 돈을 벌어가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소심하게 거래를 하다가 한번 크게 베팅한 지 이틀 쨰, 나는 250만원의 손실을 입고 더 이상 남이있는 증거금이 없어 마진콜을 당하게 되었다.

이 손실에 앞서 소소하게 번 10만원을 합쳐 내 계좌에 남은 것은 -240만원이라는 푸른 글씨 뿐이었다. 유라시아 횡단 여행을 앞두고, 조금이라도 풍족한 여행을 해보고자 도박을 걸었지만 결국 두 끼 먹을 돈이 한 끼 먹을 돈으로 줄어들게 되어버린 것이다. 돈을 벌기는 커녕 엄청난 수업료를 내고 시장에서 걷어차였다.

혹자는 이런 도박에선 50%의 확률로 벌거나 잃거나 할 수 있다고 말한다. 50%라고 말하면 왠지 확률이 커 보이고, 나도 조금의 운만 따라 준다면 큰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드는 것이 대부분 사람들의 심리일 것이다. 굳이 강원랜드에 가서 소주 병나발을 불고 들어가 거액의 돈을 칩으로 바꿔야만 도박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사람이라면, 그 정도는 조금씩 다르겠지만 왠지 이익을 볼 것 같은 도박에는 자연히 마음이 끌리게 되어 있다. 오르거나, 내리거나. 50%의 확률로 내가 돈을 벌 수 있는데 지금 2년 사이에 20배가 넘게 오른, 그리고 지금도 끝을 모르고 가격이 치솟고 있는 상품이 있다면, 누구나 한 번쯤 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까?

비트코인의 경우가 지금 딱 그런 모양새다. 1000만원을 돌파했다는 뉴스를 본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오늘은 장중 1300만원을 돌파했다고 한다. 내일도, 모레도, 다음 달도 오를 것만 같다. 없어져도 상관없는 소액을 넣어놓은 게 아니라면, 아니 혹시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내가 산 코인이 올라가는지 내려가는지 하루 종일 핸드폰 화면만 쳐다보게 되고, 마음이 쓰일 것이다. 이 도박에 빠진 사람들은 말이다. 내가 그 마음을 잘 안다.

하지만 비트코인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는 것 보다 이상한 점은, 비트코인 광풍에 빠져버린 정말 많은 사람들이 비트코인에 투자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주식을 한다고 해도 "나 주식해" 라고 말하고 다니는 사람도 얼마 안 되지만, 그 중에서도 등락폭이 기본 10%인 작전주, 동전주를 통해 돈을 벌었다고 자랑하는 사람은 거의 본 적이 없다. 혹시 주변에서 선물옵션 거래를 한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강원랜드에 갔다고, 불법 사설 토토를 한다고, 카지노에 가서 전 재산의 반을 걸어 도박을 하고 왔다고 자랑을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대부분은 그들을 인생 패배자, 도박 중독자로 보기 마련이다. 하지만 비트코인은 다르다. 학교 커뮤니티부터 심지어 주변 사람들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비트코인을 샀다고 곧 돈을 벌 것 마냥 떠벌리듯 말하곤 한다.

왜 그럴까? 선물옵션 거래를 한다고, 카지노에 간다고 말하면 대부분 '그거 위험해, 너 그러다 패가망신한다' 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아마도 사람들은 그 동안 선물옵션 거래로, 카지노 도박으로 재산을 모두 날리고 비극적으로 인생을 마치는 사례를 뉴스를 통해, 혹은 주변을 통해 많이 듣게 되었고, 그로 인해 이런 도박들의 위험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비트코인은 지금까지 거의 오르기만 했기 때문에, 주변에 비트코인에 투자하고 망한 사례를 아직 보지 못 했을 것이다. 다들 벌었다는 얘기만 있고, 앞으로도 계속 오를것만 같고, 내일 더 오르기 전에 지금 사야 이익을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허겁지겁 비트코인을 사게 되는 것이다. 비트코인은 오로지 사람의 이런 욕심을 먹고 자라는 투기상품이다.

기초자산도 없고, 오로지 투기적 심리에 의해서만 가격이 결정되는 이 비트코인이라는 잘난 '가상화폐'에 투자한다는 것은 사실 본질적으로는 돈놓고 돈먹기와 다를 바가 없는 합법적 도박인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도박의 위험성을 감지하지 못한다. 서점에선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에 대한 책이 쏟아져 나오고, IT 전문가들은 미래를 이끌 신기술이라며 극찬을 한다. 도박을 도박이라 하지 않고 그럴싸하게 포장하려 드는 분위기에 휩쓸려 모두가 이 합법적 도박에 경계심을 풀고 달려들고 있는 것이다. 

도쿄 버블이 그랬고, 닷컴 버블이 그랬고, 급등했다가 순식간에 휴지쪼가리가 되어버린 그 동안의 수많은 작전주가 그랬다. 버블이 끓어오를 땐 언제 꺼질 지 아무도 모른다.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은 언제까지고 위로 둥둥 떠오를 일만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버블 붕괴는 예고 없이 찾아온다. 지금까지는 운이 좋아 계속 오르기만 했지만, 과연 내일도 무조건 오를거라고, 다음 주도, 다음 달도 오를 거라고 분명히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1년 전 해외선물로 합법적 도박을 한 댓가를 호되게 치르고 나니, 지금 이 폭탄 돌리기와 다름 없는 도박 레이스가 과연 언제나 끝날 지 욕심 없이 멀리서 지켜볼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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