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절반을 넘도록 타지에 있었던 지난해와는 다르게, 이번 휴가철에는 아무데도 다녀오지 않았다. 새 학기가 시작될 때 까지 2주도 채 남지 않은 상황. 갑자기 무작정 떠나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어딘가 익숙하면서 새로운 곳으로 말이다. 너무 익숙한 곳이면 여행하는 기분이 잘 들지 않을테고, 그렇다고 완전히 새로운 곳으로 가기엔 조금 부담스러웠다.

이번 여행은 나의 첫 일본 여행이다. 익숙하면서 새로운 곳,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보다 이 말들에 어울리는 곳이 또 있을까? 출발 4일 전에 급하게 비행기표를 찾아도 18만원에 표를 살 수 있을 만큼 가까우면서도, 많은 것들이 우리나라와는 다른 일본, 이번 여름 여행지로 아주 제격이었다.

그 중에서도 내가 고른 도시는 후쿠오카. 일단 한국인이 너무 많은 곳은 피하고 싶었다. 그리고 너무 도시 느낌이 나는 곳도 피하고 싶었다. 빌딩과 쇼핑 센터가 늘어진 도시, 한적한 골목들이 뻗은 작은 동네, 제대로 시골 느낌 나는 교외를 모두 느끼고 싶었다. 그런 나에게 후쿠오카가 제격인 듯 했다.


저 멀리 보이는 부산. 후쿠오카는 부산에서 쾌속선으로 3시간이면 닿는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 비행기로도 딱 1시간이면 도착한다. 후쿠오카는 위도상 제주도보다도 아래에 있기 때문에, 8월의 끝자락일지라도 햇살이 만만치 않게 뜨거울 터였다. 비행기를 타고 점점 남하할수록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


후쿠오카 공항은 작지도 크지도 않은 어중간한 크기였지만 대합실에 있는 장수 모형만큼은 고개를 올려다봐야 할 정도로 거대했다. 공항을 나와 시내로 가는 공항철도를 탔다. 확실히 우리나라보단 대중교통비가 비싸고, 전철을 운영하는 회사에 따라 여러 노선이 있는데 운영 주체가 다르면 환승도 되지 않아서 조금 불편한 면이 있었다.


숙소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자전거를 빌렸다. 숙소는 시내 중심가와는 꽤 거리가 떨어진 곳에 위치해서 자전거를 타고도 중심가까지 가려면 40분은 족히 페달을 밟아야 했다. 그래도 상관 없었다. 낯선 도시를 자전거로 누비는 기분은 쉽게 느낄 수 없는 것이다. 뙤약볕 아래였지만 즐겁게 도심을 갈랐다.

한적한 곳에서 산책을 하고 싶었다. 마침 가이드북에서 오호리 공원이라는 이름의 도시에서 제일 큰 공원을 찾았다. 가운데 거대한 호수를 중심으로 산책로가 빙 둘러져 있는 공원이었다. 오늘은 먼저 그 곳으로 가야지 싶었다.

도심을 지나 공원으로 가는 길엔 이렇게 한적한 동네가 있었다. 낮고 오래된 집들과 하늘 위로 길게 늘어진 전선줄들이 정겨웠다. 저렇게 엄청나게 큰 연꽃잎이 있는 물가도 있었다.


가는 길에 고코쿠 신사가 있어 잠깐 들렀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일본의 신사'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이 있기 마련이리라. 그렇지만 대체 신사가 어떤 곳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사람도 두어 명 밖에 없어서 조용하다 못해 고요한 분위기 속에 자박자박 자갈길을 걸으며 신사를 찬찬히 둘러보았다. 깔끔하고 정갈하고 쓰레기 하나 없이 깨끗했다. 도심 속에 있다고는 전혀 믿기지 않을만큼 평화로운 분위기가 느껴지는 곳이었다.


신사에서 나와 오호리 공원으로 향했다. 오호리 공원은 후쿠오카 도심 조금 옆에 있는, 후쿠오카에서 제일 규모가 큰 공원이다. 중간에 넓디넓은 호수가 있고 그 주변을 산책로로 빙 둘러놓았다. 햇살도 뜨겁고 자전거를 계속 타다 보니 엉덩이가 아파서 앉아서 조금 쉬었다. 여유롭게 산책하고 운동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좋았다.


구름이 계속 끼었다가 밝았다가 했다.


호수 정가운데엔 이렇게 작은 섬과 정자가 있다. 귀엽다.


곳곳엔 많은 동물들이 있다. 거북이나 저런 새 같은 동물들은 몰라도 공원에서 양을 볼 수 있을줄은 상상도 못 했다. 미니 동물원? 같은 느낌이었는데, 어린 아이들이 있는 가족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저녁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 자전거도로를 따라 다시 한 시간 가까이를 열심히 밟았다. 전선주와 건널목, 철길을 천천히 건너는 기차. 서울에선 쉽게 보고 느낄 수 없는 옛것들이다.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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